설교와성경공부
전도서41-네 떡을 물 위에 던지라 2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라 2

전도서 11:1-6

 

전도서 강해 마흔한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도 지난주에 이어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라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합니다. 오늘도 전하는 말씀 가운데 여러분 각자에게 주시는 깨달음과 영적 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는 전도서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우리가 알지 못한다라는 것입니다. 네가 알지 못한다라는 전도자의 반복과 강조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을 줍니다. 무엇입니까? 인생이란 게 내 계획대로 내 예상대로 내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불확실성이야말로, 우리가 장래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일하며 가장 분명한 사실입니다.


11:2b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11:5a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11:5b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11:6b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인간은 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합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알 수 없는 미래를 대비하려고 갖은 노력을 하며 힘들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 어떤 노력과 준비로도 미래를 완전히 대비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장차 어떤 재앙이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11:2b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하지만 전도자는 장래의 불확실성과 이에 대한 인간의 한계와 무력함만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무지 알 수도 대비할 수도 없는 장래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권면하고 있습니다. 장차 어떤 재앙이 우리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우리를 위해 전도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지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 알 수 없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전도자가 가르쳐 주는 지혜가 무엇입니까?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 날 후에 찾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지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전도자가 전해주는 인생의 지혜입니다.


11: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여기서 떡은 양식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빵이었으며 지금 우리에게는 돈을 나타내는 메타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떡이든 빵이든 돈이든 이것은 모두 사람들에게 매우 소중한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떡을 던진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나누고 베풀라는 메타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떡을 던지라는 전도자의 권고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베풀고 나누며 살라는 것입니다. 내게 소중한 것이 시간이면 시간을 베푸는 것입니다. 내게 소중한 것이 돈이라면 돈으로 남을 구제하고 돕는 것입니다. 내게 소중한 것이 재능이라면 그 재능으로 남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자의 권면에서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물 위에 던지라는 말씀입니다. 전도자는 왜 하필 떡을 물 위에 던지라고 했을까요? 깊은 물 위에다 무엇이든 던져 보세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물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흐르는 물이라면 물과 함께 흘러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물 위에 떡을 던지라는 말씀은 무엇에 대한 메타포로 이해해야 할까요? 저는 크게 두 가지로 이 말씀을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자기가 먹을 양식인 소중한 떡을 남들에게 베풀고 나누는 것이 마치 물 위에다 떡을 던지는 것처럼, 무모하며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어리석은 일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나 혼자 먹고살기도 힘든 세상에서 자기 것을 남에게 베풀고 나누는 것을,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일로 여깁니다. 자기 혼자 살기도 힘든 세상에서 자기 것으로 남을 돕고 구제하는 것을 바다에 떡을 던지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도자는 사람들에게 어리석어 보이는 이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차 알 수 없는 재앙을 대비하는 지혜라고 가르칩니다.


물 위에 떡을 던지라는 전도서 말씀의 또 다른 의미로는 자신이 던진 것을 전혀 되돌려 받을 수 없는 곳이나 사람에게 베풀고 나누라는 것입니다. 물 위에 떡을 던지며 이것을 언젠가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전도자는 사람들이 다시 찾거나 돌려받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곳에다 자기의 소중한 것들을 나누고 베풀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16년 동안 월드비전을 통해 생면부지의 어린이들과 여러 나라들에서 일어난 재앙을 돕기 위해 대략 십오만 불 정도의 돈을 후원하였습니다. 규모가 큰 교회가 보기엔 적은 액수이겠지만 일 년 예산이 한 가정의 수입보다 작은 우리 교회로서는 적지 않은 돈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후원한 돈은 어떤 식으로든 다시 돌려받을 수 없는 돈입니다. 저는 이것이 물 위에 던진 떡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도자는 돌려받을 것을 단 1도 기대할 수 없는 물 위에 떡을 던지라고 하고는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여러 날 후에 도로 찾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여러 날은 문자 그대로 여러 날이라기보다는 아무도 기대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한 때를 나타내는 메타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날은 수년 후일 수도 있고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후일 수도 있습니다.


11: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얼마 전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일어난 대규모 지진으로 인해 지금까지 오만 명이 넘는 사망자와 엄청난 재산상의 피해가 났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돕기 위해 구조 인력과 물질 지원에 나섰습니다. 우리 교회도 지난주 드려진 $1,100불의 헌금에다 교회 재정에서 같은 금액을 매칭하여 총 $2,200불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구조 인력이나 물질로 튀르키예를 돕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튀르키예를 돕는 일에 가장 앞장서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합니다. 한국 국민이 튀르키예를 돕는 일에 다른 그 어떤 나라보다 앞장서는 이유가 있습니다. 튀르키예가 한국 전쟁 당시 다른 나라들 보다 앞장서서 대한민국을 도왔기 때문입니다.


한국 전쟁 당시 터키는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 큰 규모의 병력을 파병했으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에 군대를 상륙시켰다고 합니다. 물론 터키 정부가 한국 전쟁에 앞장서서 군대를 파병한 것은 정치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에 참여하여 소중한 목숨을 잃은 터키 군인들에게는 생판 모르는 나라였던 한국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마치 물 위에 떡을 던지는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들의 희생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즘 한국 튀르키예 대사관에는 한국 국민이 보내는 구호 물품이 너무 많아 더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합니다. 물론 생명을 바친 이들의 희생을 물질로 갚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들의 희생이 70년 후 예상치 못한 재앙을 겪는 자신들의 후손 튀르키예 국민을 돕는 손길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내 떡을 물 위에 던졌더니 여러 날 후에 도로 찾는다는 말씀에 담긴 뜻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던지면 언젠가는 세워집니다. 내가 베풀면 무엇인가가 세워집니다. 내가 나누면 누군가가 반드시 그 덕을 봅니다. 물론 나누고 베풀 때는 그것이 언제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게 열매를 맺을지 알지 못합니다. 아니 알 필요가 없습니다. 기대할 필요도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찾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물 위에 떡을 던질 수 있습니다. 물 위에 떡을 던지는 것은 철저하게 우리의 결단과 의지와 용기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하지만 그 떡을 언젠가 찾게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달린 우리에겐 철저한 믿음의 영역입니다.


저는 아무리 작게 여기지는 선한 일이라도 세상 사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선한 일이라도 그냥 사라져 없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믿습니다. 내가 가진 이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아직 가지고 있을 때 나누고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전도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장차 어떤 재앙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을 사는 지혜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일곱이나 여덟에게 자기의 떡을 나누라고 합니다. 여기서 일곱이나 여덟은 단순하게 여러 사람을 나타내는 메타포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숫자가 가진 상징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여기에는 좀 더 심오한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1:2a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이스라엘 종교 문화에서 일곱은 완전한 수로 일곱 번째 날을 안식일로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곱에서 하나를 더한 여덟은 이방인들을 의미하는 숫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곱이나 여덟에게 나누라고 한 것은, 하나님 백성들뿐만 아니라 이방 백성들에게도 도움을 베풀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전도자는 왜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주라고 합니까? 장차 어떤 재앙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재앙은 자국의 힘만으로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재앙은 이웃 나라의 도움이 없이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11:2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삼 년째 계속되고 있는 코비드19, 1년을 넘게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는 우크라이나 그리고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 재앙은 전 세계가 함께 도와야만 극복할 수 있는 재앙입니다. 이것은 우리 각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혼자의 힘과 능력으로는 장차 일어날 예측할 수도 없는 재앙을 대비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도자는 이것에 대해 물 위에 떡을 던지는 심정으로 아직 힘이 있을 때, 능력이 있을 때, 가진 것이 있을 때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다시 찾을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렇게 베푼 것을 다시 찾을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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