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불확실성 위에서 인생을 바라보라
전도서 11:1-6
전도서 강해 마흔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인생의 불확실성 위에서 인생을 바라보라”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합니다. 이것을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알지 못하는 것 위에서 인생을 바라보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세상을 보고 인생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이 있습니다. 이것을 세계관 또는 가치관이라고 합니다. 세상을 보고 인생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대부분 젊음과 아름다움, 성공, 경력, 자기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만 세상을 보고 인생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젊음이 최고이고, 성공이 최고고, 돈이 최고이고 행복이 최고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전도서는 세상이 가르치고 요구하는 세계관이나 가치관에 정면으로 반기를 듭니다. 세상은 땅에 발을 딛고 세상을 보라고 한다면 전도서는 해 위에서 해 아래 삶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지난 두 주간에 걸쳐 살펴보았던 전도서 11장 1절부터 6절까지의 말씀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알려고 해도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세상과 그리고 우리 인생에는 우리가 도무지 알지 못하는 게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도무지 알지 못하는 것을 대처하기 위한 세상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확실한 것 위에 서서 알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고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도 알아 갈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도서의 세상의 방식과는 정반대로 세상을 보고 인생을 보라고 권면합니다. 전도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위에 서서 우리가 아는 것을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전도자는 인생의 불확실성이라는 기초 위에 서서 인생에서 분명하고 확실한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전도자는 인생의 불확실성이 삶의 확실성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세상은 삶이라는 관점에서 죽음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전도서는 언제인지 알 수도 없는 불확실한 죽음이라는 관점에서 삶과 생명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사람은 무엇이 정말 우리 인생에서 소중하고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7:1b-2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전도서는 인생에는 우리가 알려고 해도 결코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세상과 인생을 보라고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세상과 인생을 보는 우리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바뀐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두 주간 살펴보았던 전도서 11장 1절로 6절의 말씀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크게 세 가지를 분류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우리는 우리의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이 전도서 11장 2절 후반부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그 장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전도서 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교훈입니다.
전11:2b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물론 우리는 징조를 읽을 수 있고, 삶은 대개 반복되는 패턴을 따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우리는 장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에 먹구름이 끼면 비가 내릴 것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지만, 홍수가 있을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얻기도 합니다. 오랜 질병 덕에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마트에 음료수를 사러 나가다가 끔찍한 재난을 당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도무지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미래는커녕 내일 일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에서 벌어지는 현상들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자연재해를 막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의 신비 또한 다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의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고치는 병보다 고치지 못하는 병이 훨씬 더 많은 것입니다.
전11:5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욥기 38장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욥에게 질문을 쏟아냅니다. 무려 100여 개가 넘는 질문을 욥에게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폭풍 같은 질문에 욥은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합니다. 자신을 찾아온 세 친구의 주장에는 한 번도 물러서지 않고 논쟁을 하였던 욥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욥은 하나님의 질문에 대해서 어느 것 하나도 답을 하지 못합니다.
욥38: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욥은 왜 하나님의 폭풍 같은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것일까요? 욥이 하나님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물으시는 질문에 욥이 아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욥이 아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 번째는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 어떤 것이 잘 될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하는 일에서 성공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주된 목적일 것입니다. 누구도 실패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이 형통하고 승승장구하며 성공하길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누구도 자신이 하는 일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전11:6b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노력만으로 성공하지 못합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사람의 노력이나 실력도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 성공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고 해도 성공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저 “기막히게 잘 짠 계획” 일 뿐입니다.
인생의 성공에는 사람의 노력이나 실력보다는 운이 더 크게 작용합니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이것을 가장 잘 나타내는 사자성어일 것입니다. 이것은 운이 7할이니 운만 바라고 아무런 노력이나 수고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만으로 인생의 성공이 보장되지 않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들보다 더 큰 노력을 했음에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실력과 능력만으로 성공한 것이 아님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운도 따라 주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하지 말고 자신의 성공에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 세 가지 사실을 붙들고 이 세 가지 사실 위에 서서 세상을 보고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 가지 사실을 붙잡고 세상과 인생을 바라볼 때 전도서가 가르치고 있는 인생을 사는 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인생의 불확실성 위에서 인생을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하게 깨닫게 되는 지혜로운 삶은 자신이 가진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실수 가운데 하나는, 마치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나 한 듯 자신의 인생이나 부, 재산에 대해 지나치게 연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재앙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우리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품고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라”라는 전도자의 권면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이 말씀이 주는 영적 도전이 새롭게 와닿을 것입니다.
인생의 불확실성 위에서 인생을 바라볼 때 깨닫게 되는 인생의 또 다른 지혜는 인생의 성공이나 실패가 인생의 최고 목표나 의미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의 성공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인생의 실패를 인생의 최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성공보다 더 나은 일, 출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인생의 성공이나 실패보다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성공과 실패에만 매여 사는 것입니다. 인생의 성공이나 실패가 결코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실패보다 더 인생의 최악은 인생의 성공과 실패에만 얽매여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단 한 번뿐인 인생의 최대 비극입니다.
인생은 성공과 실패라는 손익계산을 따질 수 있는 수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인생을 즐기며 살길 원한다면 수고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노력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누리며 살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길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지혜로운 삶은 주어진 인생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여기고 그 선물을 마음껏 즐기는 것입니다. 인생을 즐기는 것이 불가능할 날이 우리 모두에게 불현듯 다가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to do list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리스트는 bucket list입니다. to do list는 우리를 남들과 비슷한 일이나 똑같은 일만 하며 인생을 마감하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bucket list는 내 인생을 가장 소중하게 만들고 빛나게 하는 일을 하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한 번뿐입니다. 한 번뿐인 삶에 세상이 구분하는 성공이나 실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나 실패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단 한 번뿐인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