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전도서 12:1-8
전도서 강해 마흔네 번째 시간입니다. 드디어 전도서의 마지막 장인 12장에 들어섰습니다. 오늘은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합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 말씀도 전도자가 청년들을 향한 건네는 마지막 권면의 말씀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전도자가 말하는 청년은 우리가 생각하는 육체적으로 젊은 청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몇 살까지를 청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나이라는 게 지극히 상대적입니다. 시대에 따라 그리고 사람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지는 것이 사람의 나이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제일 어른이신 윤치영 권사님은 몇 살까지 청년처럼 여겨집니까? 우리 교회에서 제일 젊은 안혜미 집사님은 몇 살까지가 청년처럼 여겨집니까? 저는 청년의 때입니까? 중년의 때입니까? 노년의 때입니까?
전도자는 말하고 있는 젊을 때는 정확하게 말하면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가기 전까지가 전도자가 말하는 젊을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자는 젊을 때 다시 말해 아직 살아 숨 쉬며 움직일 수 있을 때 더는 사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할 나이가 되기 전에 “너는 너희 창조주를 기억하라”라고 권면합니다.
전12:1 젊을 때에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고생스러운 날들이 오고, 사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할 나이가 되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라는 전도자의 권면은 오늘 우리가 읽은 전도서 12장 1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에서 세 번이나 반복하여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전도서 말씀의 주제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강조하고 나타내기 위해 나머지 글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전12:6 은 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부서지고, 샘에서 물 뜨는 물동이가 깨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부서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전12:7 육체가 원래 왔던 흙으로 돌아가고, 숨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그런데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라는 전도자의 권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을 기억하라” 또는“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전도자는 굳이 세 번이나 “창조주를 기억하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전도자가 의도적으로 창조주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고 반복한 것입니다.
전도자는 왜 “하나님을 기억하라”라고 하지 않고 굳이 창조주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창조주를 기억하라”라고 했을까요? 전도자가 하나님도 여호와도 아닌 굳이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한 것은 창조주를 기억할 때만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선한 세상 아름다운 세상인 것 같습니까? 아니면 불의하고 불공정한 추하고 악한 세상 같습니까? 그렇다면, 전도자가 본 세상의 현실은 어떠했습니까? 전도자가 바라본 세상의 현실은 지극히 불의하고 불공정한 세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특정한 지역이나 나라만의 상황이 아니라 세상 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보편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전5:8a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그렇다면 전도자가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하지 않고 굳이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세 번이나 반복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도자는 비록 사람이 사는 세상이 불의하고 불공정한 악한 세상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하나님께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비록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악할지라도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세상은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이었음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라는 전도자의 권면에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망가뜨린 책임은 사람에게 있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있지 않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불의하고 불공정한 세상으로 인해 인생살이가 고달프고 힘든 것은 창조주의 뜻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인간이 만들어 낸 결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라는 전도자의 권면은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은 창세기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사건처럼 사람이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신이다”라는 착각은 사이비 교주들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지난주 살펴본 전도서의 말씀에서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서 기쁘고 즐거운 인생을 살라고 권면했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인생을 사는 것은 단순한 선택이나 권면이 아니라 긴급하고 심판이 따르는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인생을 기쁘고 즐겁게 살기 위해 근심과 걱정을 마음에서 떠나게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전11:10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
전11:10 네 마음의 걱정과 육체의 고통을 없애라. 혈기왕성한 청춘은 덧없이 지나가기 때문이다.(빠르게 지나간다)
근심과 염려는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가장 대표적인 증상입니다. 근심과 염려는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내가 통제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부터 비롯됩니다. 하지만 누구도 자기 인생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이나 예상치 못한 일들을 통제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개나리가 누런색을 띠지 않고 샛노란 색을 띠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개나리는 근심하지 않고 염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맨날 누렇게 뜬 얼굴로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맨날 근심과 염려에 억눌려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안색이 낯빛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복음성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실망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방황하십니까?” 복음성가의 가사처럼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이유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기도하지 않고 걱정하고 염려하며 살아갑니까? 피조물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걱정과 염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근심하고 염려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하나는 없습니다.
우리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한다면 근심하고 염려하지 말고 그냥 해결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하니까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람이 절대로 알 수 없는 내일에 대해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은, 자신이 장래에 벌어질 모든 일을 통제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라는 전도자의 권면은 내일에 대한 근심과 염려에서 벗어나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기뻐하고 즐기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전도자의 이러한 권면은 염려하지 말라는 산상수훈의 예수님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강조하셨습니다.
근심하고 염려하며 사는 것은 피조물이라는 자신의 존재를 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을 제외한 모든 하나님의 피조물은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의 질서와 원리를 따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고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제멋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마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전도자는 “너는 창조주를 기억하여라”라는 말씀을 강조하려고 의도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혹시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전에” 영어로는 “before”라는 단어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에 “전에”라는 단어가 무려 다섯 번이나 반복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12:1b 사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할 나이가 되기 전에
전12: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기 전에, 먹구름이 곧 비를 몰고 오기 전에,
전12:6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그릇이 부서지고, 샘에서 물 뜨는 물동이가 깨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부숴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전12:7 육체가 원래 왔던 흙으로 돌아가고, 숨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이것이 주는 영적 도전이 무엇입니까? “너는 창조주를 기억하여라”라는 전도자의 권면은 시기와 때가 제한된 권면이라는 것입니다. 너무 늦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창조주를 기억하며 살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때가 오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더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과 인생을 즐기지 못할 때가 오기 전에 창조주가 지으신 세상과 인생을 맘껏 즐기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 인간에 의해 망가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세상에는 창조주의 선함과 아름다움이 남아있습니다. 비록 인생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생명은 존귀하고 산다는 것을 아름다운 일입니다. 너무 늦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며 존귀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기뻐하고 즐기며 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