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2:8
전도서 강해 마흔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결국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전도서 12장 8절은 전도자가 인생을 살면서 자신이 보고 듣고 깨달은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난 다음 마지막 결론으로 남긴 말입니다.
전12:8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자의 마지막 결론으로 남긴 말씀은 전도자가 처음 전도서를 시작하였던 말씀과 똑같은 말씀입니다. 물론 전도서 12장 9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이 더 있습니다. 하지만 전도서 12장 9절 이하는 추가 사항 또는 부록의 형식으로 덧붙여진 말씀입니다. 따라서 전도자가 전하려고 했던 말씀은 12장 8절로 모두 끝이 났습니다.
전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로 시작한 전도자의 메시지는 마지막에도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로 마쳤습니다. 전도자는 처음과 마지막에 의도적으로 똑같은 문장을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비록 똑같은 표현이지만 전도서 1장에 나오는 “모든 것이 헛되도다”와 전도서 12장 8절에 나오는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전도서 1장에서 전도자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로 전도서의 말씀을 시작할 때는 인생과 세상에 대해 염세적이고 부정적이며 절망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전도자가 마지막 결론으로 강조한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말에는 처음과는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전도자가 1장에서 허무와 헛됨을 반복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도자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 삶의 덧없음, 곧 인생의 유한함과 일시성을 철저히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전도자의 마지막 결론은 단순히 인생과 세상에 대해 염세적인 절망을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전도자는 사람들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삶의 허무함 유한함 일시성과 같은 ‘부정성’을 피하지 않습니다. 그는 불의하고 비관적인 세상을 정직하고 적나라하게 들여다보지만, 세상을 혐오하는 염세주의자나 비관주의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전도자가 인생의 유한함과 일시성을 반복하여 강조하는 유일한 이유는 창조주를 기억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젊은이가 유대교 랍비를 찾아와서는 탈무드를 가르쳐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하지만 랍비는 젊은이가 아직 탈무드를 배울 자격이 없다며 거절합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자격을 얻기 위해 시험을 치르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랍비는 젊은이를 시험하기 위해 간단한 문제를 냅니다. 두 소년이 굴뚝을 청소하고 내려왔습니다. 한 소년은 얼굴이 검고, 다른 소년은 깨끗합니다. 당신은 어떤 소년이 얼굴을 씻을 것으로 생각합니까? 랍비의 질문에 젊은이가 자신 있다는 듯이 얼굴이 검은 소년이 얼굴을 씻는다고 대답했습니다.
랍비는 틀렸다고 대답합니다. 얼굴에 검은 그을음이 있는 소년은 얼굴이 깨끗한 소년을 보고 자신도 깨끗하다고 생각하여 얼굴을 씻지 않습니다. 하지만 얼굴이 깨끗한 소년은 더러워진 친구의 얼굴을 보고는 자기의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당신은 아직 탈무드를 공부할 자격이 없습니다.
젊은이가 물러가지 않고 랍비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랍비가 다시 한번 젊은이에게 기회를 줍니다. 랍비는 젊은이에게 처음 물었던 질문은 똑같이 반복하고는 어떤 소년이 얼굴을 씻을 것으로 생각하냐고 물었습니다. 젊은이는 똑같은 질문에 랍비가 가르쳐준 대로 이번에는 얼굴이 깨끗한 소년이 자기의 얼굴을 씻을 것이라 대답합니다.
랍비는 또다시 젊은이의 답이 틀렸다고 말합니다. 랍비는 설명하길 둘 다 자기의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깨끗한 얼굴을 한 소년이 먼저 자기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그러면 얼굴이 그을린 소년은 자기의 얼굴을 보고 깨끗한 얼굴을 씻는 친구를 보고는 자기 얼굴이 더러운 것을 알고는 얼굴을 씻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아직 탈무드를 공부할 자격이 없네요.
랍비의 질문에 두 번이나 틀린 답을 한 젊은이는 이제야 탈무드를 공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젊은이는 랍비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부탁합니다. 랍비가 또다시 처음 젊은이에게 물었던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는 누가 얼굴을 씻을 것으로 생각합니까? 그러자 젊은이가 또다시 랍비가 앞서 가르쳐준 답을 그대로 반복합니다.
젊은이는 두 소년은 모두 자기의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그러자 랍비는 또 틀렸다고 말합니다. 랍비는 둘 다 얼굴을 씻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얼굴이 더러운 소년은 얼굴이 깨끗한 친구를 보고 씻지 않을 것이고 얼굴이 깨끗한 소년은 얼굴이 검은 친구가 씻지 않으므로 자신도 씻지 않을 것입니다.
젊은이는 랍비의 설명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하면서 진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랍비가 또다시 처음에 했던 이야기와 질문을 그대로 반복했습니다. 젊은이는 또다시 조금 전에 들었던 랍비의 답을 반복하여 둘 다 씻지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랍비가 또다시 젊은이의 답이 틀렸다고 말합니다. 랍비는 덧붙여 설명하기를 “두 명의 소년이 같은 굴뚝을 같이 청소했는데, 어떻게 한 명은 깨끗하고 한 명은 더러울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은 처음부터 자체가 틀린 질문이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탈무드와 관련한 유명한 이 이야기는 전도서를 읽고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도움을 줍니다. 랍비의 질문은 애초부터 정답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랍비는 주어진 문제에 대해 아무런 의문이나 질문도 없이 랍비가 가르쳐준 답만 따라 하는 젊은이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젊은이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젊은이는 랍비의 답을 그대로 따라 하지 말고 도대체 왜 그런지 물었어야 했습니다. 전도서를 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서는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인생의 정답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전도서는 허무하고 헛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물으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인생과 세상을 보는 전도자의 시각은 대단히 비관적이며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전도서를 다 읽고 나면 이 말씀이 도대체 내게 어떤 위로를 줄 수 있냐며 답답하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인생의 허무함과 불의하고 부당한 현실에 대한 전도자의 적나라한 고발 때문에, 가뜩이나 힘든 세상살이가 더욱 힘들게만 여겨지기도 합니다.
전도자가 지나칠 정도로 인생의 허무와 헛됨에 대해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인생의 여정을 살았든 결국 모든 인간은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말 것입니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인간의 운명을 깨닫는 것은, 세상에 취하여 인생을 낭비하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을 깨우는 해독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죽음이라는 인생의 운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인생의 허무와 헛됨을 경험하고 깨닫는 사람만이 역설적이지만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해 아래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해 위라는 영원한 세계에 비로소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유한함과 허무함과 헛됨을 강조하는 전도서의 말씀은 마치 의사의 최종 경고와도 같은 말씀입니다. 건강 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은 사람에게 의사가 경고합니다. 당신에게는 심각한 당뇨병이 있다는 판정을 내립니다. 이미 심각한 혈당 수치이기에 즉각 조처하지 않으면 합병증으로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합병증으로 죽을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를 듣고 죽을 날만 기다리며 우울하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의사의 냉정한 경고를 듣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의사의 경고대로 몇 년을 지나지 않아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냉정하다 못해 부정적으로 들리는 의사의 경고는 이 사람이 죽기를 바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의사가 냉정하게 경고하는 이유는 만약 살고 싶으면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당장 체중을 감량하고 운동을 시작하고 식단을 관리하라는 최후의 통첩과도 같은 말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헛되고 헛되어 모든 것이 헛되다는 전도자의 말이 얼핏 듣기에는 지나치게 냉정하고 부정적이어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도자가 말하는 인생의 허무와 헛됨 그리고 죽음이라는 인간의 운명을 정면으로 대면할 때만 비로소 우리는 헛되고 허무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거대한 조각상을 만드는 예술가 앞에 놓인 것은 커다란 돌덩어리입니다. 이 돌덩어리를 예술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부분을 잘라내고 연마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전도자는 조각가와 같습니다. 소유, 권력, 탐욕, 지식, 성공, 업적 등의 허상들을 걷어 내고 인생의 본질적 가치를 보여주는 그런 조각가와 같습니다.
전도서는 보이지 않는 인생의 본질을 놓치고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집착하며 살기에는 인생은 너무나 짧고 허망함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인생은 아주 오래 지속될 것 같지만 실제 인생은 우리가 예상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고 덧없이 지나갑니다. 부질없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기엔 인생은 너무나 짧습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끊임없이 물으며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