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타이틀은 무엇입니까?
전도서 12:9
전도서 강해 마흔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로 전도서 강해를 마치려고 준비했는데 서론으로 준비한 말씀이 너무 길어져서 다음 주 한 번 더 전도서를 설교하는 것으로 전도서 강해를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타이틀은 무엇입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합니다.
전도서 12장 9절 이하의 말씀은 전도자가 남긴 모든 말과 글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일종의 에필로그(후기)와 같은 글입니다.(1인칭-3인칭) 전도자는 자신이 남기고 싶은 모든 글을 마치고는 어떻게 해서 이런 글을 남기게 되었으며,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그리고 전도자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전도자는 지금까지 자신이 남긴 글에 대해 에필로그를 남기며 가장 먼저 자신을 소개하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전도자가 자신의 모든 말을 마치고는 전도서를 기록한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전도자는 자신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주로 어떻게 자신을 소개합니까?
전12:9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얼핏 생각하면 자신을 지혜자라고 소개하는 것이 대단히 교만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도서 12장 9절 이하의 말씀이 후대에 첨가된 글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전도자의 교만이기보다는 전도자에 대한 후대 사람들의 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를 읽은 후대 사람들은 전도서를 기록한 전도자를 지혜자라고 평가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전도자가 직접 남긴 것이라고 해도 자신을 지혜자라고 소개하는 것이 결코 자신을 자랑하려는 교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도자는 지혜자를 자신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타이틀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도자는 지혜자라는 표현이 전도자 자기의 생각이든 후대의 평가이든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과 교훈을 주는 말씀입니다.
전도자는 전도서를 처음 시작하면서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였습니까? 전도자는 전도서를 시작하면서 자신을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전도자가 전도서를 시작하며 자신을 소개한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전도자가 얼마나 대단하고 엄청난 사람인가를 능히 짐작하게 하는 소개입니다.
전1: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물론 전도자가 사람들에게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이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이라는 말에는 이스라엘 최고의 가문 출신이며, 이스라엘 최고의 권력자이며, 가장 유명한 사람이자 최고의 부자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전도자가 전도서를 마칠 때는 자신을 뭐라고 소개하였습니까? 그냥 지혜자라고만 했습니다.
전도자를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으로 소개하며 시작하였던 전도서가 전도서를 마치면서는 전도자를 “지혜자”로 소개하며 전도서를 마무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여기에 전도서가 주는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과 교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도서는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한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이라는 타이틀보다 “지혜자”라는 타이틀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라 생각합니다.
패러독스 이솝우화라는 책에 나오는 여우와 포도나무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포도원에 매우 큰 포도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큰 포도나무에 열린 포도가 포도원에서 가장 맛있다는 소문에 여우들 사이에서 퍼졌습니다. 실제로도 큼직한 포도송이가 맛있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여우가 큰 포도나무에 몰려들었습니다.
수백 마리 여우들이 큰 포도나무에 먼저 올라가려고 경쟁을 하던 중 여우 한 마리가 힘들게 포도나무 꼭대기에 올라가는 데 성공했습니다. 포도나무에 가장 먼저 오른 여우는 큰 기대감으로 포도나무에 달린 포도를 따서 입에 넣었습니다. 하지만 여우가 먹은 포도는 맛이라곤 하나도 없는 신 포도였습니다.
큰 포도나무에 올라 포도를 입에 넣는 모습을 본 나무 아래 여우들이 묻습니다. “정말 소문대로 그렇게 맛있어!” 포도나무 꼭대기에서 포도를 맛본 여우가 나무 밑에 있는 여우들에게 뭐라고 말했을까요? 자신이 맛본 그대로 이 포도는 “너무 시어 못 먹어!”라고 말했을까요? 아니면 “이야 정말 소문대로 너무 맛있는 포도야!”라고 말했을까요?
포도나무 꼭대기에 가장 먼저 올라가서 신 포도를 먹은 여우는 이 포도는 시어서 못 먹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정말 맛있어! 먹어보지 않은 여우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맛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왜 여우는 이렇게 말했을까요?
시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억울했기 때문입니다. 겨우 신 포도나 먹으려고 고생해서 포도나무 꼭대기에 올라간 것이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게다가 고생하며 포도나무 꼭대기에 올라간 자기를 비웃을 여우들을 생각하니 사실대로 말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맛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걸 맛본 여우는 자기밖에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러자 밑에 있는 여우들이 한마디씩 합니다. “야 너는 정말 대단한 여우야” “너는 정말 성공한 여우야”라며 포도나무 꼭대기에 올라간 여우를 부러워했습니다. 하지만 포도나무 꼭대기에서 신 포도를 너무 많이 먹은 탓인지 포도나무 꼭대기에 올라간 여우가 위궤양에 걸렸는지 나무에서 동동거리다 떨어져 죽고 맙니다.
그러자 또 다른 여우가 자기도 맛있는 포도를 먹겠다고 목숨을 걸고 올라갑니다. 포도나무 오르기에 성공한 또 다른 여우는 포도를 먹어보곤 속으로 욕을 했습니다. “나쁜 여우 새끼, 이걸 맛있다 속여!” 그때 포도나무 꼭대기에서 포도를 먹는 여우를 본 나무 밑에 여우들이 또 묻습니다. 정말 맛있어?
새로 포도나무에 올라간 여우는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첫 번째 여우와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정말 그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맛있는 포도야!” “너희들이 지금까지 먹어 본 포도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는 맛있는 포도야” 그러자 밑에 있던 여우들이 포도나무 꼭대기에 올라간 여우를 부러워하며 한마디씩 합니다. “나는 언제 저기에 올라 저 맛있는 포도를 먹어볼 수 있을까? 너는 정말 좋겠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많은 것이 실제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하고 엄청난 것이 아닙니다. 손에 넣지 못했기에 대단하고 엄청난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손에 쥐고 나면 그렇고 그런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대단한 만족과 기쁨을 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거 그렇게 대단한 것 아니야라고 말하려니까 너무 억울한 거예요. 그래서 속으로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오르지 못한 사람들에게 아직 손에 쥐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정말 대단한데, 너희들도 목숨을 걸고 올라올 만해, 한 번 해봐.” 그러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도서는 다릅니다. 전도서는 누구라도 부러워하는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이라는 소개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전도서는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으로 누렸던 그 모든 명예, 권력, 부, 쾌락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헛되고 무익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전2: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전도자는 평생을 남들이 부러워하는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으로 살았지만, 이런 것들이 자기의 인생을 제대로 의미 있고 아름답게 살게 하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으로 평생을 산 자신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것들 뿐이었습니다.
전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지만 전도자는 허무하고 헛된 인생으로 자신의 인생을 마감하지 않았습니다. 전도자는 인생의 처절한 허무와 헛됨을 통해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참된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된 전도자에게 더는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이라는 타이틀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이라는 타이틀이 비록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얼마나 헛되고 부질없음을 깨달은 전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허무하고 헛되게 마무리할 뻔했던 인생을 제대로 살게 해준 지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를 마치며 전도자를 더는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이라 소개하지 않고 지혜자라고만 소개한 것입니다.
도대체 지혜가 무엇이기에 전도자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이라는 타이틀보다 “지혜자”라는 타이틀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까? 전도서는 지혜(히:호크마)에 대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반복하여 가르쳤습니다.
전5:7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전7:18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말씀을 마칩니다. 전도자가 전도서를 시작하면서 자신을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이라고 소개했다가 전도서를 마치면서는 자신을 “지혜자”라고 했던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저는 여기에 전도자가 전도서를 통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그래서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한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이라는 젊은 시절 전도자의 타이틀은 그의 인생을 허무하고 헛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자신이 배우고 경험하고 깨달은 지혜를 후대에 전하려는 전도자의 노년은 지혜자의 인생이었습니다.
전도자의 인생을 존귀하고 아름답게 만든 것은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이 아니라 “지혜자”였다는 것이 전도서를 읽는 우리 모두에게 귀한 영적 도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