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에 무너져버린 행복
전도서 2:3-11
오늘은 “어떻게 인생을 즐겁게 살 것인가?” 시리즈 세 번째 시간으로 “쾌락에 무너져버린 행복”이란 제목으로 말씀 전합니다. 오늘도 전하는 말씀 가운데 여러분 각자에게 주시는 깨달음과 영적 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는 것은 단지 사람의 기대나 소원만이 아니라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향해 사람이 돌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라고 믿습니다.
인류의 오랜 역사를 통해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다양한 삶의 자세와 태도를 만들고 살아왔습니다. 이것을 나누어 보며 크게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삶의 자세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바로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성공 주의입니다. 두 번째가 오늘 살펴보려는 쾌락주의입니다. 세 번째가 허무주의입니다.
아마도 성공 주의는 가장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믿는 행복의 최우선 조건일 것입니다. 인생의 성공이 사람의 행복을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돈이 되었든, 권력이 되었든, 명예가 되었든 자기가 원하고 목표하는 바를 성취하였을 때 인생은 비로소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공이라는 결과를 통해 누리게 되는 성취감 또는 안도감이 순간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한 번의 성공적인 결과만으로는 지속적인 행복을 누리며 살지 못합니다. 사람은 한 번의 성공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성공에 대한 집착은 이전보다 더 큰 성공을 추구하며 살게 만듭니다.
성공을 위해 사는 것이 잘못이라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우리 교회 교우들이 자신들이 하는 모든 일에서 성공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보다 더 간절한 것이 있다면 성공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성공이나 실패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삶 그 자체로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삶을 즐길 줄 알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전도서가 남긴 행복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비결입니다.
전3:12-13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우리 인생에는 좋아하는 일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같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가 일치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좋아하는 일은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하기 싫은 일 또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을 즐기는 것을 배우고 훈련하는 것만이 행복한 삶을 위한 비결입니다. 오죽하면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까지 나왔겠습니까!
성공주의 다음으로 행복한 인생을 위해 사람이 가장 많이 시도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전도서의 말씀은 이것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무엇입니까? 쾌락입니다. 쾌락이 무엇입니까? 쾌락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욕구(식욕, 수면욕, 성욕 등)를 충족하여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쾌락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때 가장 큰 쾌락을 느낍니까?
전2:8b 남녀 가수들도 거느려 보았으며, 남자들이 좋아하는 처첩도 많이 거느려 보았다.
전2:10a 원하던 것을 나는 다 얻었다. 누리고 싶은 낙은 무엇이든 삼가지 않았다.
많은 교인이 신앙이 좋은 것을 사람의 육체적 본성을 멀리하고 오직 영적인 일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금욕적인 것을 기독교 신앙의 경건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욕구를 멀리할수록 우리의 영성이 점점 더 깊어지는 거룩한 사람이 되는 줄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으로서의 욕구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사람의 욕구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가장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자연적인 본성인 육체의 욕구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문제는 이것만이 인생의 목적이 되고 목표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이것만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딤전4:3 이런 자들은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음식물은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과 진리를 아는 사람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게 하시려고 만드신 것입니다.
과유불급이라고 했습니다. 지나치는 것은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뜻입니다. 육체의 욕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것을 욕심내기 때문에 사람에게 주신 자연적인 본성인 욕구가 죄의 수단이 되고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의 욕구가 하나님의 은혜가 되지 않고 우리를 파멸과 죽음으로 인도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롬7:5 이전에 우리가 육신을 따라 살때에는 율법에 따른 죄의 정욕이 우리 몸의 지체 안에서 작용해서,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나친 절제나 금욕 역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영혼만 귀하고 인간의 육체나 물질이나 현실을 다 악하게 생각하는 것 역시 하나님께 죄가 됩니다. 이런 신앙을 금욕주의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기독교 신앙은 결코 영혼만 생각하며 사는 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하늘을 중요하게 여기시지만, 땅과 세상도 중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영혼도 중요하게 여기시지만, 육신도 중요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땅과 세상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땅과 세상을 만드신 후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하셨습니다.
쾌락이 죄입니까? 아니면 사람이 누려야 할 당연한 욕구입니까? 쾌락은 죄가 아니라 사람이 누리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당연한 욕구입니다. 하지만 이 욕구가 욕심으로 변질할 때 쾌락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사람을 타락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수단이 되고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의 즐거움만을 위해 필요 이상의 욕구를 추구할 때 이것을 괘락주의라고 합니다. 성공만을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성공주의와 성공을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다른 것처럼 하나님이 주신 자연스러운 욕구를 즐기는 것과 쾌락만을 목적으로 사는 쾌락주의는 엄연히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성공주의가 미래의 즐거움을 위해 현재의 기쁨을 포기하는 것이라면 쾌락주의는 현재의 쾌락을 위해서 미래에 다가올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쾌락주의자는 오로지 현재에 초점을 맞추므로 즉각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다면 나중에 일어날 수 있는 어떤 피해와 책임도 상관하지 않으려 합니다.
마약이 즐거운 기분을 주면 마약을 하고 정욕이 즐거운 기분을 주면 이것이 가져올 피해나 책임을 생각하지 않고 당장의 즐거움을 선택합니다. 결국 이런 태도는 마약, 약물, 도박, 알코올중독, 성중독 등 다양한 중독증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미래의 행복, 결과의 만족을 위해 현재의 행복, 과정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성공주의와 현재의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는 쾌락주의가 얼핏 전혀 다른 인생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혀 다르게 보이는 이 두 인생관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많은 성공 주의자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희생으로 이루어낸 성공이나 성과만으로 인생의 참된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성공 주의자는 자신의 성공을 통해 얻은 성취감 뒤에 밀물처럼 밀려오는 공허함과 허전함에 사로잡힙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당대 최고의 부와 명예와 권력을 이룬 성공한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이룬 성공으로 자신의 인생이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이룬 모든 성공으로도 자기 인생이 행복하지 않자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인생의 행복을 찾습니다. 그가 찾은 방법이 무엇입니까? 쾌락이었습니다.
전2:3 지혜를 갈망해 온 나는,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하고, 낙을 누려 보려고 마음먹은 적도 있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이렇게 사는 것이 짧은 한평생을 가장 보람있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쾌락에 집착하는 인생은 당장은 자신이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누리는 모든 쾌락은 결핍에서만 비롯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같은 것을 무한 반복한다고 계속 좋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결국 쾌락 역시 안정적이며 지속적인 행복을 주지 못함을 깨닫게 됩니다. 쾌락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필요 이상의 쾌락을 탐하는 순간 인생은 가장 비참하고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전2:17 그러니 산다는 것이 다 덧없는 것이다. 인생살이에 얽힌 일들이 나에게는 괴로움일 뿐이다.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될 뿐이다.
말씀을 마칩니다. 쾌락은 마땅히 사람이 누려야 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지만 쾌락만으로 인생은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육신의 쾌락을 인생의 한 부분으로 여겨야지 이것을 인생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순간 영혼은 죽어버리고 맙니다. 사람에게 영혼이 죽었다는 것은 짐승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짐승같이 살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참된 행복의 길은 현실의 고난과 역경을 피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고난과 역경이 고통스럽다고 쾌락에 빠져서는 현실의 역경을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삶을 살아서는 절대로 행복한 삶과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현실을 직면하여 누려야 할 즐거움은 즐기고 극복해야 할 고난과 역경이 있다면 믿음으로 극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뿐만 아니라 오늘이라는 하루하루가 만들어 갈 미래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이 깨달음이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반드시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