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어떻게 복된 삶을 살 것인가10-행복의 제로섬 게임과 윈윈게임

행복의 제로섬 게임과 윈윈게임

창세기 2:18

 

어떻게 인생을 복되게 살 것인가? 열 번째 시간으로 오늘은 행복의 제로섬 게임과 윈윈 게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합니다. 오늘도 전하는 말씀 가운데 여러분 각자에게 주시는 깨달음과 영적 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전하기 전에, 지난주 설교에 관한 질문이 있어 잠시 함께 나누고 시작하려고 합니다. 지난 주일 저녁 주바라기 속회에 참석했는데 지난주 설교에 대해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마음이 마음먹은 대로 된다고 그래서 당장이라도 바꿀 수 있다고 했는데 마음이 마음먹은 대로 되나요?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마음 아닌가요?”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음이 마음먹은 대로 되나요? 아니면 마음은 마음대로 안 되나요? 마음먹은 대로 되는 마음도 있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마음도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마음이 두 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생각을 의미하는 마음이 있다면 감정을 의미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을 뇌 과학자들은 우뇌와 좌뇌라고 합니다.


지난주에 설교했던, 마음먹은 대로 될 수 있는 마음은 무엇입니까? 생각을 의미하는 마음입니다. 생각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바꾸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의 생각이나 신념이라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 결정적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가 생각하고 믿는 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위험한 착각입니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생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생각을 바꿀 수 있어야 변화하는 세상에서 꼰대로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나님을 이전보다 더욱 깊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도 조금도 바뀌지 않는 사람은 자기는 항상 옳다고 착각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마음, 바꾸려고 해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 마음은 무엇입니까? 감정입니다. 감정을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감정이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에 감정을 마음먹은 대로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여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생각이라는 마음과 감정이라는 마음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생각과 감정이 대단히 다르게 보이지만 이 둘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감정이 생각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생각도 감정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따라서 내 감정이 달라지길 원한다면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지만 생각이 바뀌면 감정이라는 마음도 바뀌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의 행복을 외적인 조건이나 환경에서만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불행을 자기의 불우한 환경이나 형편 또는 잘못된 세상과 사회의 문제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그렇다면 완벽한 조건과 환경에 놓이면 사람은 행복할까요?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최초로 죄를 지은 곳은 가장 완벽한 낙원이었던 에덴동산이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물론 외부 조건이나 환경이 우리의 행복에 막대한 영향을 줍니다. 하다못해 날씨에 따라 사람의 행복이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주신 복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람에게 주어진 환경을 다스리는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환경을 다스리는 능력을 주셨기에 환경이 사람의 행복을 결정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비록 사람이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의 행복이 외부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혼여행 가서 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도 싸웁니다. 왜 그럴까요? 환경이 잘못돼서 싸웁니까? 아니요. 사람의 마음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마음의 불만 때문에 싸우는 겁니다.


이처럼 사람의 행복과 불행의 중심에는 언제나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마음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실낙원이란 책에서 존 밀턴은 마음은 천국을 지옥으로,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되기도 한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삶을 위해 지금까지 인류가 가장 많이 시도한 것은 마음의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돈입니다. 물론 더 많은 돈이 사람을 잠깐 행복하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고 기대한 것처럼 더 많은 돈이 가져다주는 행복도 그렇게 대단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만족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돈은 절대로 사람을 만족하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세계라고 하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 100명 중 20명은 영양실조이고 1명은 굶어 죽기 직전입니다. 하지만 15명은 비만입니다. 이 마을의 모든 돈은 6명이 59%를 가졌고 그들은 모두 미국 사람입니다. 74명이 39%20명이 겨우 2%만 나눠 가졌습니다. 이 마을의 모든 에너지 중 20명이 80%를 사용하고 있고 80명이 20%를 나누어 쓰고 있습니다.


세상의 물질은 무한정이 아니라 제한되어 있습니다. 물질이나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기에 많이 가진 사람이 있으면 그만큼 덜 가진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많이 가진 나라가 있으면 덜 가진 나라가 있기 마련입니다. 물질이나 돈은 항상 제로섬 게임과 같습니다. 플러스마이너스 하면 항상 제로가 되는 제로섬 게임입니다. 이런 이유로 돈은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과의 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지수가 높아진다고 내 행복지수가 낮아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내 행복지수가 높아진다고 다른 사람의 행복지수가 낮아지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할수록 내가 행복해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것을 윈윈 게임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행복 하려면 아내가 행복해야 하고 자녀들이 행복해야 합니다. 아내가 불행하고 자녀들이 불행한데 내가 행복해지기는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목사인 제가 행복 하려면 우리 교회 교인들이 행복해야 하고 여러분들이 행복 하려면 여러분을 섬기는 목사가 행복해야 합니다.


이것을 확장하고 확대해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소속된 교회나 공동체가 행복해야 합니다. 사회가 행복해야 합니다. 내가 속한 교회나 공동체의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야 나도 더불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가족이 불행한데 내가 속한 교회가 불행한데 내가 속한 사회가 불행한데 내가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이 있습니다. 내가 누리는 행복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매우 중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속한 교회나 공동체 또는 일터에서 주변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는 우리의 행복을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돈보다 우리의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인간관계입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철학자는 재산은 영원한 친구가 될 수 없지만, 친구는 영원한 재산이 될 수 있다.” 했습니다. 우리와 삶을 함께하며 인생의 대소사를 함께 나누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인생의 의미를 더욱 깊게 해주며 고통과 역경의 순간을 견디게 합니다. 그래서 친구와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습니다. 물론 요즘은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라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도무지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서 모든 것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하지만 오직 한 가지만 보시기에 좋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홀로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함께 살 사람을 붙여주셨습니다. 이처럼 사람과의 관계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이며 행복입니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 때 가장 행복할 수 있습니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면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사람과의 관계가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축복이라고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가 늘 기쁨과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기쁘기보다는 상처받는 일이 훨씬 더 많습니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의 기억과 아픔 때문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심지어 사람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더는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이럴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사람과 관계를 맺고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사람으로 인해 받는 기쁨과 행복이 훨씬 더 크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길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사랑에 배신당하여 상처 입은 사람이 어떻게 사랑의 상처를 치유합니까?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것만으로 사랑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받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실 때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 사람이 받은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사나 교인 때문에 상처를 입고 낙심한 사람에게는 좋은 목사나 성도를 만나게 하심으로 그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십니까? 사람과의 관계가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때론 상처가 된다고 해도 사람이 사람을 포기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신앙 공동체를 포기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목사이지만 저는 목사 때문에 그리고 교인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목회를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목회하는 이유는 목회만이 제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축복 가운데 하나는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축복으로 사람은 세상에서 겪는 인간관계의 모든 비극과 불신을 초월하게 하십니다. 에센바흐는 이것을 한 사람의 진실한 벗은 천명의 적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그 힘 이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람과의 관계가 많은 경우 상처와 아픔의 원인이 되는 것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가 나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었다 해도 단 한 사람의 좋은 관계만으로도 이 모든 상처와 아픔을 다 덮고도 남게 하는 것이 사람이 주는 행복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기쁨과 행복이 아니라 상처와 아픔의 원인이 되는 결정적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서로 돕는 관계로 만드셨는데 우리는 서로 도우려 하지 않고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상대방도 불행하게 만들지만 자기 자신도 형편없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사람이 사람을 도우며 사는 것보다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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