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나를 바로 세우기5-상한 감정을 치유하시는 하나님

상한 감정을 치유하시는 하나님

이사야 61:1-2, 잠언 4:23

 

오늘은 나를 바로 세우기(나를 사랑하기)” 시리즈 다섯 번째 시간으로 상한 감정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도 전하는 말씀 가운데 여러분 각자에게 주시는 깨달음과 영적 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Daniel Goleman은 사람의 마음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는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마음(Rational Mind)이라면, 다른 하나는 감정적인 마음(Emotional Mind)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마음이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성적인 마음과 감정적인 마음이 조화 균형을 이루며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마음보다는 감정적인 마음에 의해 주도된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살면서 겪게 되는 문제 대부분은 감정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조절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자존감은 물론이고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감정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력에 비해 많은 사람이 감정이라는 마음을 과소평가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은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대해 이성적인 판단에 따른 결정이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돌아보면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대부분 감정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에서 감정이 가장 중요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이 감정의 중요성을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감정을 억압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결과가 중요하고,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너무나 자주 그리고 너무나 많이 감정을 억누르며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순간마다 시시때때로 느끼는 감정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우리는 모두 감정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저 사람은 감정적이야!”라는 말은 그 사람에 대한 좋은 평가라기보다는 부정적인 평가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는 사람을 두고 변덕스러운 사람이나 인격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깁니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고 신뢰할 만한 사람일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말에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감정이란 자기 의지나 의식과는 상관없이 저절로 드는 기분이나 느낌입니다. 감정이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들어야 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기분이며 느낌입니다. 감정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고 하면 비정상적인 사람이지 결코,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감정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바른 생각이나 틀린 생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은 그렇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감정이란 우리가 의식할 수 없는 잠재의식(무의식)의 영향을 받아 본능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감정을 잘 다스리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타나거나 드는 감정에 대해 옳다 그르다를 나누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는 감정과 부정적 영향을 주는 감정으로는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감정이라도 심지어 부정적 감정이라도 감정 그 자체를 가지고 옳다 그르다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고 싶고, 졸리면 자고 싶은 것은 본능적이며 자동적인 신체의 반응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으며 기뻐하고 마음 아픈 일이 있으면 슬퍼하고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분노하고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보면 질투를 느끼는 것은 본능적이며 자동적인 감정의 반응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아무리 자기감정이라도 감정이 드는 것을 통제하거나 막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본능적이고 자동적인 반응인 감정에 대해 옳다 그르다를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감정을 왜곡하는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한 마디로 감정과 관련한 모든 문제는 감정 때문이기보다는 우리가 이성적이라고 여기는 감정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감정이 가치 중립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 선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악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감정을 잘 다루고 사용하면 사람에게 대단히 유익하고 좋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잘못 다루거나 함부로 드러내게 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남도 해치는 일이 생깁니다.


예를 들면 질투심이나 열등감은 대개 경쟁심에서 비롯됩니다. 실력이나 능력 또는 외모가 뛰어난 사람에게는 질투심을 느끼거나 열등감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본능적이며 자동적인 감정적 반응입니다. 그런데 질투심이나 열등감을 해결하고자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며 미워하게 되면 질투나 열등감을 나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질투심이나 열등감으로 인해 자신의 단점이나 부족함을 깨닫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질투심이나 열등감으로 자신의 단점이나 부족함을 깨달아 자기 발전의 기회로 삼는다면 질투나 열등감도 우리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감정에는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행동으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오해하거나 실수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습니다. 교인들이나 목사들 가운데 장례식장에 가면 이렇게 말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너무 슬퍼하면 안 됩니다. 그만 우세요.” 장례식장에서도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마치 성숙한 믿음의 사람인 양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크리스천인 우리는 천국을 믿고 부활을 믿기에 다시 만날 소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만날 소망이 있다고 당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상실의 슬픔마저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슬프면 슬픈 만큼 슬퍼하고 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고 다시 만날 소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슬픔의 감정보다 더 심각하게 잘못 배워 온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분을 내는 것입니다. 대부분 교인이 화를 내는 것을 경건하지 못한 잘못된 감정이라는 설교를 들으며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분노나 화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분노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은 가르치길 분을 내더라도 죄를 짓지 말라고 합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말씀은 무조건 하루 만에 분을 풀어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화를 풀지 않아서 복수하려는 마음으로 발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26-2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분노나 화도 올바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분노하는 것만 가지고 이것을 부정적 감정 또는 악한 감정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화를 내느냐 내지 않느냐가 아닙니다. 살면서 어떻게 한 번도 화가 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화가 나지 않는 것이 비정상이지 화가 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화가 날 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처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분은 무조건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필요할 때 적절하게 드러내는 것이 참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며 성경적입니다. 분을 적절하게 드러내지 못하면 마음 깊은 곳에 원통함과 비통함이 생기게 됩니다. 해결되지 않는 분노는 결코 그냥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남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분을 품는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품은 분노는 곪아버려 결국에는 터져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화를 드러낼 때는 다른 감정을 나타낼 때보다 특별히 주의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분노라는 감정은 사람의 다른 감정과는 달리 가장 강력하고 파괴적이어서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면 심각한 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희노애락을 느끼는 분이셨습니다. 기쁠 때 기뻐하시고 슬플 때 슬퍼하시고, 화날 때 화를 내시고, 즐거울 때 즐길 줄 아는 예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느끼셨던 감정 때문에 한 번도 일을 그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감정이라는 마음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으로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다른 사람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슬퍼하고 애통하고 분노하므로 마음이 상한 자를 도울 수 있습니다. 함께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마음이 상한 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이사야 611절과 2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나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말씀을 마칩니다. 성경은 사람이 지켜야 할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우선하여 지켜야 할 것을 마음이라고 가르칩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은 결국 감정을 잘 다스리고 선용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감정을 어떻게 드러내고 다스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자존감은 물론이고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반복하지만 감정은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닙니다. 선하거나 악한 것으로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감정은 우리의 생각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나타나는 지극히 가치 중립적인 사람의 반응이며 느낌이고 기분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자기의 감정을 잘 다스려 선용할 수 있느냐 아니며 자기의 인격을 무너뜨리고 죄를 짓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해야 감정을 잘 다스리고 선용할 수 있습니까? 자신의 감정을 속이거나 감추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억누르려고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아가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으로 해결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에 자신이 느끼는 감정으로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품어주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감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우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도구로 그래서 마음이 상한 자를 치유하는 선한 도구로 사용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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