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나를 바로 세우기11-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분노의 치유와 극복)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분노의 치유와 극복)

창세기 4:1-6

 

오늘은 나를 바로 세우기(나를 사랑하기)” 시리즈 열 번째 시간으로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라는 제목으로 분노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분노의 치유와 극복에 대해서는 오늘과 다음 주 두 주에 걸쳐 살펴볼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이 기록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었다는 말씀은 사람이 더 이상 하나님을 자기 생각의 기준으로 삼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메타포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기 이전에는 사람에게 선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악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선과 악의 유일한 기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음으로 하나님이란 기준을 거절한 것입니다. 대신이 자기가 스스로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자기의 생각과 판단을 선과 악,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자기에게 유리한 것은 선한 것이고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악한 것이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 살아갈 때 사람은 에덴동산이라는 하나님 나라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메타포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진 아담과 하와는 더 이상 에덴동산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저들을 에덴동산에서 쫓겨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한 인간이 하나님만이 주인이신 에덴동산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아들을 낳게 됩니다. 아들의 이름을 가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인의 동생 아벨도 낳았습니다. 동생 아벨은 양을 치는 자였고, 형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각자 자기의 노동을 통해 얻은 결실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습니다. 가인은 농사지은 농산물을 제물로 바쳤고 아벨을 기르던 양의 첫 새끼의 기름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형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고 동생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물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교인이 가장 먼저 가지게 되는 의문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의문이 듭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아벨의 제물만 받으시고 형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는가?”입니다.


창세기 4장에는 하나님께서 왜 아벨의 제물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거절하였는지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많은 설교자가 이 의문에 대해 다양한 설명을 시도하였습니다. 아벨은 가장 좋은 양의 첫 새끼를 드렸지만, 가인은 농사지은 것 가운데 질이 떨어지는 것을 드렸기에 하나님께서 받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설교자는 가인의 제사에는 피 흘림이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가인이 드린 제물이 아벨이 드린 제물보다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인이 드린 제물이 아벨이 드린 제물보다 더 좋은 것이었습니다. 가인은 곡식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하지만 아벨은 양 떼의 첫 번째 새끼 양을 잡아 기름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동물의 기름은 사람이 잘 먹지 않습니다.


4:3-4b 세월이 지난 뒤에, 가인은 땅에서 거둔 곡식을 주께 제물로 바치고, 아벨은 양 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을 바쳤다.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저들의 제사를 받으시거나 거절하셨는지를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왜곡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일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드리는 제물이 무엇이냐를 가지고 제사를 받아주시거나 거절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 이야기를 자세하게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가인과 아벨이 바친 제물로 판단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물보다는 제물을 바치는 가인과 아벨에 대해 주목하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는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4:4b-5a 주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드리는 제사는 단지 제물을 바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제사란 그 사람의 삶과 믿음을 드리는 것이며 제물은 그 사람의 삶과 믿음을 상징하는 일종의 도구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훌륭하고 값비싼 제물이라도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삶과 믿음이 뒤따르지 않는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삶과 믿음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제물로 드리는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나 많은 교인이 자기가 드리는 헌금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위험한 착각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우리가 드리는 헌금이 아닙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교회가 받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돈을 구별할 줄 아는 믿음, 드려진 헌금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할 줄 아는 믿음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둑질한 돈, 사기로 얻는 돈, 도박으로 딴 돈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빚내서 드리는 헌금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또한 자기 형편에 넘치는 헌금도 하나님께서는 원치 않으십니다. 물론 자기 형편에 턱없이 미치지 않는 헌금도 받지 않으십니다. 이런 것들은 헌금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구약시대에는 자신의 경제 형편에 맞게 제물을 바치게 하셨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수입에 따라 헌금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드려진 헌금으로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돕게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경제적 약자를 도와 경제적 차별을 극복해 가시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을 바치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인생 그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의 날들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값진 제물이며 제사입니다.


12:1b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하지만 가인과 아벨의 제사 이야기는 하나님께서는 왜 가인의 제물은 거부하시고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는지를 가르쳐주기 위한 말씀은 아닙니다. 만약 가인과 아벨의 제사 이야기가 가인의 제물은 거절하시고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는지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면 창세기는 그 이유를 좀 더 자세하게 기록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인과 아벨의 제사 이야기에서 창세기가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자신이 바친 제물을 거절당하자 가인이 보였던 반응과 가인의 반응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가인의 제물은 거절하시고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는지에 초점을 두면 창세기가 전하려는 진짜 메시지를 놓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만 받으시고 자기의 제물은 거절당하자 가인이 즉각적으로 보인 반응이 무엇이었습니다. 창세기는 가인이 몹시 화가 나서 얼굴색이 변하였다고 했습니다. 가인은 누구에게 화가 난 것일까요? 아벨입니까?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가인은 왜 하나님에게 화가 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의 제물만 받으시고 자기의 제물은 받아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가인은 분노한 것입니다.


4:5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그래서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얼굴색이 변하였다.


분노라는 감정은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열등감, 죄책감, 수치심 그리고 두려움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가지는 원초적이며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분노를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심지어 동물도 화를 냅니다. 아마도 두려움과 분노는 사람은 물론이고 동물들도 가지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일 것입니다.


사람은 주로 어떨 때 화를 자주 냅니까? 다른 사람이 자기 말을 듣지 않을 때 화가 납니다. 남편이나 아내 또는 자식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기가 말한 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 화가 납니다. 목사는 교인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을 때 화가 나고 교인은 목사가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화가 납니다. 사장은 직원들이 자기 말대로 하지 않을 때 화가 나고 직원은 사장이 제멋대로 할 때 화가 납니다.


사람에게 분노라는 감정이 드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져서 다른 사람을 자기의 잣대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 생각과 판단을 옳고 그름의 유일한 기준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고 여깁니다. 그러니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다 자기 기준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기준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화가 나는 것입니다.


가인의 분노는 얼핏 대단히 타당해 보입니다. 분명한 이유를 알 수 없이 자기의 제물만 거절당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연 가인의 분노가 타당한 것일까요?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러면 저들이 드린 제물을 받고 안 받고는 전적으로 누구에게 달린 일입니까? 오직 하나님께만 달린 일입니다. 자기의 제물을 받고 안 받고는 결코, 가인이나 아벨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드린 기도대로 이루어주시거나 이루어주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누구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달린 문제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인이 자기가 기도한 대로 응답해 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내 수호신이나 나를 돕는 요정쯤으로 여기는 불신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거절하신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만의 이유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반기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 내 판단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를 제멋대로 단정하는 것은 이미 자기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었다는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증거입니다.


가인이 왜 하나님께 화를 냈습니까? 가인은 자기의 제물을 받지 않는 하나님을 잘못했다 틀렸다 여겼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면서도 하나님께서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나누는 분이라 여긴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자기의 제물을 받아주는 것이 옳은 일이고 자기의 제물을 거절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 여긴 것입니다.


하나님께 화를 내는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묻습니다. 뭐라고 물으셨습니까?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가 어찌하여 화를 내느냐?”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화를 내는 가인을 책망하고 꾸짖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화를 내는 가인에게 네가 어찌하여 화를 내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4:6 주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색이 변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나님께 제물을 바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자신은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이 자기의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자 하나님께 화를 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분노라는 감정은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지만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는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원초적 감정입니다. 우리는 모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은 사람이기에 분노라는 감정이 드는 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노가 들 때마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 화를 내는 가인에게 물으셨던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라는 하나님의 질문을 떠올리셔야 합니다. 혹시 내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모든 것을 그리고 다른 사람을 내 맘대로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기에서부터 분노라는 원초적인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새글 0 / 341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공지 자유교회 주일예배 영상 Youtube 링크 2021.04.21 4786
341 십계명20-사람의 생명이 존엄한 이유 2025.07.20 132
340 십계명19-약속 있는 첫 계명 2025.07.19 129
339 십계명18-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 2025.07.19 128
338 십계명17-왜 부모 공경이 살인 금지보다 먼.. 2025.07.19 131
337 십계명16-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 2025.07.19 127
336 십계명15-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잘 지.. 2025.07.19 131
335 십계명14-안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2025.06.07 215
334 십계명13-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삶 2025.05.24 307
333 십계명12-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2025.05.24 319
332 십계명11-하나님의 이름에 담긴 의미 2025.05.24 316
331 십계명10-우리가 만들어내는 하나님 2025.05.24 366
330 십계명9-우리의 신앙, 믿음입니까? 미신입.. 2025.04.06 333
329 십계명8-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2025.04.06 322
328 십계명7-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제한하지 .. 2025.03.18 415
327 십계명6-코람데오(Coram Deo) 2025.03.18 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