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나를 바로 세우기15-모든 것은 내가 하기 나름

모든 것은 내가 하기 나름

빌립보서 4:9-13

 

오늘은 나를 바로 세우기(나를 사랑하기)” 시리즈 열다섯 번째 시간으로 모든 것은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합니다. 오늘도 나누는 말씀 가운데 여러분 각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하고 부드러운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타고난 팔자나 운명 때문에 자신이 인생이 불행하다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자기도 다른 사람들처럼 좀 더 나은 환경이나 배경을 가지고 태어났으면 자기의 인생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졌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환경이나 배경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도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인생을 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갖고 태어났느냐, 어떤 배경이나 환경에서 태어났느냐가 아닙니다. 내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며 사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현재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운명이나 과거의 트라우마가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생각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언제든 결심만 하면 인생을 지금과는 다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의 인생은 이미 결정됐다는 의미의 운명론에 의지합니다. 운명론은 구원은 이미 하나님에 의해 예정되었다는 예정론적 사고방식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이미 결정된 운명이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오면서 우리 각자가 내린 수십만, 수백만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만들어진 것입니다. 인생의 운명론이나 신앙의 예정론은 인간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 낸 비겁한 변명일 뿐입니다.


운명이라는 말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는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운명은 결코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운명의 운자는 옮기다’, ‘움직이다와 같은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운명은 우리의 선택과 결정으로 바꿀 수도 있고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 온 것은 자기 자신이며, 앞으로의 인생을 만드는 것도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지금의 직장이나 직업을 선택한 것도 여러분이고, 그 일을 지금까지 계속하기로 결심한 것도 여러분입니다. 지금의 배우자를 선택한 것도 여러분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자유교회를 다니는 것도 제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선택과 결정에 의한 것입니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이미 결정된 것이 우리 모두에게는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운명이 될 수 없습니다.


각자의 선택과 결정이 각자의 운명을 만드는 것이지 이미 결정된 운명 같은 것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에 대해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자기 인생에 대해서만큼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운명은 스스로 바꿀 수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말이 쉽지, 어떻게 불가능한 것이 없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다른 사람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한 예상치 못한 사고를 겪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 장애나 질병을 가지고 태어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나 상황에서도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까요?


유전적 질병이나 다른 사람에 의한 사고처럼 사람으로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사건이나 상황 자체를 바꿀 수는 없어도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말씀의 진짜 의미입니다.


아무리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아무리 열심히 기도한다고 해도 인생에는 내 힘과 능력으로는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불행한 상황이나 사건이 생길 수 있습니다. 믿음이나 기도로 자연재해나 재앙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내게 닥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고 극복해 갈 것인지는 믿음과 기도로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이라고 했습니다.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보낸 옥중서신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는 로마 감옥에 갇히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감옥에서 어떤 자세와 태도로 감옥 생활을 보내는 것은 전적으로 자기의 믿음에 달린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주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오히려 기쁘게 여겼으며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고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살 것을 권면할 수 있었습니다. 불치병에 걸렸을 때 하늘을 원망하며 눈물로 지새울지,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남은 인생을 후회 없이 살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무나 유명한 비유이지만 물이 반이 들어 있는 컵을 보고 고작 반밖에 없잖아!’라고 생각할지 아직 반이나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여길지는 전전으로 자신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서 의미를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모든 이가 괴로워하는 상황에서도 배울 점과 감사할 일을 찾아내는 사람입니다.


자기 인생에 대해 운명이라는 핑계를 대고 운명에 책임을 전가하면 당장은 마음이 편할 것입니다. “부모를 잘못 만나 태어났다. 상사를 잘못 만났다. 부하 직원을 잘못 만났다. 배우자를 잘못 선택했다. 사회가 이상하다. 그러니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운명이나 팔자를 한탄한다고 해도 자기의 인생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모든 상황에서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고 훈련하기 위해선 매우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과 내가 충분히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줄 아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결정적 문제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바꾸려고 하고 막상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타고난 유전이나 어린 시절 성장 배경 등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사건이나 경험이 지금의 나를 특별히 지금의 내 감정을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과거의 사건이나 경험은 지금의 나를 만든 원인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원인이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도 결정하게 할지 아니면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살아갈지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과거에 얽매일수록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더욱 힘들어집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과거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선택과 결정으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과거와 타인은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과 지금부터 시작하는 나의 현재와 미래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비난하는 데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기보다는 그 에너지를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합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이 명백하더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에너지를 쏟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과거를 불평하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동정을 구걸합니다. 하지만 막상 자신은 아무것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습니다. 동정으로 우리의 삶이 바뀌지 않습니다.


비슷한 사건이나 경험을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 다르게 반응합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에게 배신당하거나 상처받았을 때 사람마다 그 반응은 다 제각각입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 슬픔에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에 대해 실망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것을 거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사람은 만나는 기회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슷한 경험이지만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하고 대처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감정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사람에게 배신당해 삶의 의욕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배신당했을 때 발생하는 수많은 반응과 의미 부여 가운데 자신의 의지로 절망을 선택한 것이고 이것을 핑계 삼아 삶의 의욕을 포기한 것입니다. 물론 배신한 사람이 나쁘지만 그렇다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것까지 그 사람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선택지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결국 본인의 선택한 결과입니다.


한 살인범에게 왜 사람을 죽였냐고 묻자, 부모에게 버림받아서 그랬다고 대답했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아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기에 살인범이 된 것이니, 본인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았다고 모두가 살인범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보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통을 알기에 부모 없는 아이들을 입양하여 돕는 사람도 세상에는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라온 환경이나 타고난 유전적 영향을 극복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우리에게 주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록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라도 자신의 의지와 능력에 따라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무심결에 현재의 문제를 과거 탓으로 또는 부모 탓으로 돌립니다. “어릴 때 엄마가 나 혼자 두고 일 나가는 바람에 내 성격이 어두워진 거야 나에게는 잘못이 없어. 전부 엄마 탓이야.”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대학에 가지 못했어. 좀 더 여유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쯤 대학을 나와 더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을 텐데.”


타고난 유전과 과거의 불행한 사건이 만들어 낸 트라우마가 우리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타고난 유전이나 과거나 만들어 낸 트라우마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타고난 유전이나 트라우마에 얽매이는 것은 스스로 자기 마음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과거야 어떻든 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는 우리를 과거와 상관없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말씀을 마칩니다. 라인홀드 니버의 평온을 비는 기도에 보면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제가 여러 번 소개한 기도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차이를 분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하지만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바꿀 수 없는 것을 붙잡고는 신세 한탄만 하고 막상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타고난 유전이나 이미 지난 과거를 부정하거나 피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유전이나 트라우마에 얽매이게 됩니다. 과거의 실패나 불행한 기억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것을 과거의 경험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경험을 거울삼아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불행에 사로잡혀서 평생을 피해망상증 환자로 살아갈 것인가? 선택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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