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가짜 하나님 버리기3-하나님을 무서워하지 말고 경외하라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말고 경외하라

레위기 19:9-14

 

오늘은 가짜 하나님 버리기시리즈 세 번째 시간으로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말고 경외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우리가 버리려고 하는 가짜 하나님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한 우상적 형상은 공포의 우상입니다. 인간의 죄를 엄중히 심판하시고 벌주시는 공포의 우상은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교인들 사이에 가장 폭넓게 퍼져 있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일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믿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이것을 극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요즘은 예전처럼 심각하게 하나님을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돌연히 나타나서는 우리를 괴롭힙니다. 공포와 두려움은 인간 존재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언제든지 수면으로 떠오르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지극히 원초적인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두려움과 공포라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매우 중요한 본능입니다. 인류학자들은 인간에게 두려움과 공포라는 원초적 본능이 있기에 인간이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이 두려움이라는 본능을 가지게 된 데는 인간에 대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는 주인 같지만, 인간은 대단히 연약한 존재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은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을 질그릇과 같은 존재라고 비유하였습니다. 인간은 질그릇처럼 금 가기 쉽고 깨어지기 쉬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인간은 질그릇처럼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에도 영과 육이 너무나 쉽게 상처를 입고 깨어지는 대단히 연약한 존재입니다.


고후4:7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담고 있습니다.


인간이 두려움이라는 원초적 본능을 가지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인생의 불확실성입니다. 우리 인생은 온통 불확실성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인생의 불확실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내일 일은 난 몰라요일 것입니다. 내일 일은커녕 당장 1시간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11:2b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인간의 연약함과 인생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인간은 두려움이라는 원초적 본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늘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인간은 두려움이란 원초적 본능으로 인해 인간은 자신을 보호해주고 지켜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한다고 인류학자들은 주장합니다.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한 두려움은 강력한 힘에 대하여 의존적인 삶을 살아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클수록 더욱 강력한 힘과 권세에 대한 욕망이 더 커집니다. 따라서 두려움의 또 다른 면은 힘과 권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과 힘은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돈에 대해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이 물질적 부가 인간의 연약함을 극복하고 인생의 불확실성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불확실한 세상과 인생에서 돈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다고 믿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돈이 우상이 되어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신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가진 두려움이라는 원초적 본능은 자신의 연약함과 불확실성을 해결해주는 초월적 존재인 신을 믿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종교를 찾거나 의지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나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도무지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의 연약함과 국가나 문명의 힘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인생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질병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재앙에 대한 두려움, 종말에 대한 두려움 등등.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종류의 두려움, 하지만 인간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두려움으로 인해 사람은 종교를 찾게 됩니다.


왜냐하면 초월적 존재인 신을 믿는 종교야말로 인간이 가진 원초적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인간의 역사와 문화는 수없이 많은 신을 만들고는 그 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자신들의 두려움과 공포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구별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불확실성으로 인한 두려움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차원의 두려움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라면, 다른 하나는 우리 존재의 기원이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믿음과 종교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연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신앙은 어떤 것입니까? 자연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공포가 가득하게 되면 사람들은 심판과 멸망을 강조하는 사이비종교나 샤머니즘과 같은 무속신앙에 집착하게 됩니다. 인생의 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해 용하다는 무당을 찾거나 점쟁이를 찾습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 사이비종교나 무속신앙은 불확실하고 두려운 인생에 대한 즉각적인 답을 주기 때문입니다. 무속적인 종교일수록 인간의 두려움을 즉각적으로 해결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심지어 속는 줄 알면서도 당장 두려움이 너무 크다 보니 사이비 종교 지도자나 무당의 말에 의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 신앙 역시 인간이 가진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믿음이라 점에서는 사이비종교나 무속신앙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사람의 감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두려움입니다. 성경에 두려움은 무려 518번이나 나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람이 가장 많이 휩싸이는 감정은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백여 번이나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이비종교나 무속신앙을 찾게 만드는 두려움과 하나님을 찾게 만드는 두려움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사이비 신앙이나 무속신앙이 자연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면,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백여 번 반복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씀을 무려 171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경외라는 단어에는 물론 두려움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란 말씀에서 경외란 단순히 공포나 무서움으로 인해 가지는 두려움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할 때 경외는 존경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19:13-14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사람은 주로 무서운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정말 존경하거나 사랑하는 존재를 만나도 두려워합니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베드로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된 베드로가 어떻게 고백합니까? 자신은 죄인이니 나에게서 떠나 달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거룩하신 예수님에 대한 깊은 존경을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5:8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람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데 성경은 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는 것일까요? 성경이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반복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는 말씀을 더 많이 반복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용해야 하는 것일까요?


성경은 인간이 가진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가르친 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거룩한 존재에 대한 존경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기독교 신앙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곧 한 번뿐인 자기 인생에 대한 경외를 가지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경외를 가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의 역사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인간이 가진 공포와 두려움을 이용해 사람들을 하나님에게로 이끌려고 했습니다. 이것을 공포 목회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형상과 개념을 가지게 했습니다.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을 인류를 멸망하고 심판하는 공포의 신으로 믿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하나님에 대한 우상적 형상입니다.


하나님을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이 아닌 공포와 두려움을 주는 하나님이라고 믿거나 이런 믿음을 강요하는 사람은 가장 거룩한 존재를 가장 추하고 두려운 존재로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구호는 지옥에 대한 인간의 공포를 이용해 믿음을 강요하고 협박하는 매우 악한 선교 방식입니다. 이런 방식의 복음 전도를 예수님이 가르치신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복음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공포를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교인들이 제대로 된 믿음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공포와 저주를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과 자비와 용서와 은총 대신 형벌과 심판과 지옥이라는 공포를 이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드는 매우 악한 방식입니다. 공포 신앙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게 하지 못합니다.


공포의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지도 자유롭게 하지도 못합니다.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신앙 생활하는 종교 노예를 만들 뿐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는 신앙의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자발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이럴 때만 비로소 우리는 참된 자유와 구원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세상이 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살면서 온갖 것을 다 염려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노후도 두렵고, 병드는 것도 두렵고, 죽는 것도 두렵고, 경제 문제도 두렵고, 물가 오르는 것도 두렵고, 사람도 두렵고, 기후 문제도 두렵고,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세상이 주는 그 어떤 두려움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보다 더 나를 더 잘 아시고,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세상이 주는 모든 두려움을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세상이 주는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누리시며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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