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통해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현존과 뜻
마태복음 25:14-15, 34-45
“가짜 하나님 버리기”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사람을 통해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현존과 뜻””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계속되는 가짜 하나님 버리기 설교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우상적 형상을 극복하고 진짜 하나님을 찾아가는 믿음의 여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많은 목사와 교인이 세상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과 목적에 따라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런 일이 벌어진 데는 하나님의 특별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대한 믿음 때문일 것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세상만사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대단히 그럴듯하게 여겨지고 심지어 신실한 믿음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이런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면 많은 목사와 교인이 분노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무시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머리카락까지 다 세고 계신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다며 이와 같은 문제 제기를 믿음 없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정말 우리의 머리카락 개수까지 꼬치꼬치 간섭하시고 통제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가르쳐 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는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을 벌을 받는다는 인과응보, ⓢ모든 것은 결국 바르게 돌아간다는 사필귀정, ⓢ선한 사람에게 상을 주시고 악한 자에겐 벌을 주신다는 상선벌악은 인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고 방식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그런데 ⓢ정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착한 사람이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이 벌을 받는 인과응보나 상선벌악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세상일까요? ⓢ정말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국 모든 것이 올바르게 돌아가는 사필귀정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세상일까요? ⓢ정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 대로 심은 대로 거두는 세상일까요?
만약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인과응보, 상선벌악, 사필귀정, 심은 대로 거두는 정의로운 세상이라고 한다면 욥을 비롯하여 성경의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받은 고난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되고 맙니다. 의인이 세상에서 고통을 받고 반대로 악한 이들이 세상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이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이것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말씀이 성전 찬양대였던 아삽이라는 사람이 쓴 시편 73편의 말씀입니다. 그가 성전에서 본 세상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선한 자가 고통을 겪거나 손해를 보고 악한 자가 형통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양심의 가책도 없어 죽을 때에도 아무 고통도 없이 죽음을 맞으며 남들이 겪는 재앙도 이들에게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시고 선택하셨다는 이스라엘의 현실이었습니다.ⓢ
시73:3-5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과응보, 상선벌악, 사필귀정이 이루어지는 세상이기보다는 오히려 약육강식, 승자독식, 빈익빈 부익부가 더 많이 이루어지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한 사회나 한 나라에서만 발견하는 현상이 아닙니다. 전 세계 모든 나라 모든 사회에서 너무나 쉽게 발견되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약육강식, 승자독식, 빈익빈 부익부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인 건가요? 여러분은 여기에 동의할 수 있습니까? 만약에 약육강식, 승자독식, 빈익빈 부익부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한다면 세상만사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과 의도대로 이루어진다는 세상에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전쟁과 약탈과 살인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신 하나님의 뜻이고 의도라고 믿으십니까?
그래서 일부 목사와 교인 중에는 ⓢ욥이 그랬던 것처럼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통을 겪는 현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항변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세상의 불의한 현실을 보면 하나님의 부재를 말합니다. 어떤 교인은 왜 내게 이런 고난이나 고통을 주냐며 하나님께 항변하기도 합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이런 일도 하나 제대로 바로 잡지 못하시고 무엇하시냐며 따지고 묻습니다.
이들이 하나님께서 이렇게 따지고 묻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세상만사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가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겪는 고난이나 고통 또는 불행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 대부분이 겪는 고난이나 고통 또는 불행은 불의한 세상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도 하나님이 주신 것도 아닙니다.
복음서가 가르쳐 주고 있는 하나님은 세상만사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며, 인간의 삶과 행동에 꼬치꼬치 간섭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대신에 모든 것을 사람에게 맡기고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이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예수님 달란트 비유에 따르면 어떤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자기의 종들을 불러 어떻게 했습니까? ⓢ자신의 모든 소유를 종들에게 맡깁니다. 어떤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 어떤 종에게는 두 달란트, 어떤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깁니다. (예수님 비유에서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금액이고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따라서 한 달란트는 당시 노동자의 20년 치 품삯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의 전 재산을 종들에게 맡긴 주인은 누구를 상징합니까?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장차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시든 예수 그리스도이든 이 비유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사실은 주인이 자기의 모든 재산을 종들에게 맡기고는 타국으로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에 대한 메타포입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재산 즉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사람에게 맡기시고 사람들에게 이것을 관리하고 다스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직접 조종하거나 통제하지 않으십니다. 대신에 사람을 통해 세상을 관리하고 다스리게 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매우 중요한 메타포입니다.
따라서 달란트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이며 동시에 책임이라고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남들보다 더 가진 달란트 이것이 남들보다 더 가진 돈일 수도 있고 남들보다 더 가진 재능이나 능력일 수도 있는데 이것은 남들에게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더 큰 사명과 책임을 주신 것입니다. 더 많은 사명에는 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주인이 자신의 전 재산을 종들에게 맡기며 자기의 재산으로 무엇을 하라고 구체적으로 일일이 지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자신이 받은 한 달란트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달란트로 무엇을 하든 이것은 전적으로 종들에게 달린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사람에게 맡기시고 사람에게 전적인 자유를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달란트가 우리의 사명이고 책임이 되려면 하나님께서 완전한 자유를 주실 때만 가능합니다. 만약 주인이 자기의 달란트를 맡기면서 어떻게 하라고 꼬치꼬치 정해 주었다면 그 책임은 주인이 져야 하는 것이지 종들의 책임이 될 수 없습니다.
자유는 인간의 행위와 행동을 결정지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모든 자유에는 무엇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까? 모든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유를 누리는 사람으로 자신이 누리는 자유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자유가 없는 곳에는 사명도 없고 책임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기록된 달란트의 비유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사명과 책임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은 직접 다스리거나 돕지 않습니다. 대신에 사람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고 사람을 통해 사람을 섬기고 돕게 하셨습니다. 강제와 위협이 아닌 자발적인 믿음과 섬김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달란트의 비유가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과 방식에 대한 비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한 걸음 물러나 계신다고 하면 그렇다면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시는가 의문을 가집니다. 달란트 비유 바로 다음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최후 심판의 비유)는 세상에서 한걸음 물러나 계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에 현존하시는 가를 보여주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오른편으로 분류된 사람에게 복 받을 자라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합니다. 그러자 오른편으로 분류된 이들이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는 마시게 했습니까? 그러자 임금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여기서 임금을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마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반대로 왼편으로 분류된 사람에게는 너희는 내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지 않고 목마를 때 마실 것도 주지 않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지도 않았으니 장차 영원한 불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왼편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가 도대체 언제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도 외면하였단 말입니까? 그러자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마25: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누구를 의미한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하나님께 한 것이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하나님께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한 걸음 물러나 계신 하나님께서 세상에 어떻게 현존하고 계신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사는 인간 세상을 원하시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가도록 스스로 한걸음 물러나 계십니다. 그리고 인간의 손에 세상과 인생을 맡기시고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창조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자 섭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정해진 운명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운명을 만들어 갈 뿐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미 결정된 운명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우리에게 맡겨졌고,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하는 우리의 사명이며 책임입니다. 바라기는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썩어 없어질 세상 욕심을 위해 낭비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아니라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영적 가치를 위해 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자유교회가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