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가짜 하나님 버리기10-우리의 간구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방법

우리의 간구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방법

빌립보서 2:1-8

 

가짜 하나님 버리기열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우리의 간구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계속되는 가짜 하나님 버리기 설교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우상적 형상을 극복하고 진짜 하나님을 찾아가는 믿음의 여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막연한 믿음은 하나님을 제멋대로 오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예정하시어 인간사 모든 일에 꼬치꼬치 간섭하시며 일일이 사사건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과 의도대로 이끌어 가신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뜻이고 의도라고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매우 심각한 오해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신다는 믿음이 대단히 신실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유로운 존재로 만드시고 사람에게 하나님의 창조를 위임하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더 나아가 세상만사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이고 의도하신 것이라는 생각은 인간의 사명과 책임을 회피하려는 매우 불순한 믿음이기도 합니다. 지난주 달란트의 비유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람에게 맡기시고 사람이 다스리고 관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는 오히려 주인을 탓하고 주인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매우 불순한 태도이고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하나님은 세상과 인간사 모든 일에 꼬치꼬치 일일이 간섭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한 걸음 물러나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사람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고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세상과 인간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것이 하나님 창조의 질서이며 섭리입니다.


팔자 탓이나 신세타령이나 하며 남은 인생을 살지 않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내 인생을 바꾸며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세상과 인생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야 하는 미완의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물론 오랫동안 확신하고 있던, 믿어 왔던 하나님에 대한 형상이나 믿음을 바꾸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형상이나 믿음은 사람에 따라서는 아주 어렸을 때의 신앙생활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 인생의 전체 과정을 통하여 뼛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믿어 왔던 하나님에 대한 형상을 바꾸는 것이 지금까지 자신의 신앙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형상이나 믿음을 바꾸어 가는 것이 대단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형상을 극복하거나 믿음을 바꾸는 것은 결코 지금까지 자신의 신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더 나은 성숙한 신앙인으로 나아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홀로 일어나 걷게 되고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숱한 실수와 실패 그리고 시행착오를 거쳐야 합니다. 어떤 아이도 실수와 실패, 시행착오가 없이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가기 위해 어린 시절 거쳐야 했던 수많은 시행착오의 과정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마땅히 거쳐야 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실수나 실패 그리고 시행착오 없이 단번에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가져왔던 하나님에 대한 자기 확신이나 신념을 버리고 새로운 하나님에 대해 배우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내 믿음이 잘못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의 믿음에서 벗어나 성숙한 신앙인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고전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인간의 과학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우주의 크기조차 가늠하지 못합니다. 현재 인류가 알아낸 우주의 크기는 930억 광년 정도라고 합니다. ⓢⓢ말이 930억 광년이지 이것은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크기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현재 인류가 추측할 수 있는 크기일 뿐이지 실제 우주의 크기는 아니라고 합니다.


우주의 크기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인간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수박 겉핥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주 작은 부분에 그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어떤 종교의식보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형상이나 믿음을 극복하는 일에 최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에 의해 실추된 하나님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며 동시에 우리 자신의 영적 건강을 위한 일입니다.


세상과 인간의 모든 일에 꼬치꼬치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나 믿음을 극복하는 것은 분명 우리의 신앙을 이전보다 더 성숙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온전한 자유와 그 자유로 인해 우리가 가져야 하는 세상과 인생에 대한 책임감 발견하고 깨닫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나은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며 살도록 도울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시고 우리에게서 한걸음 물러나 계신 하나님에 대한 형상이나 믿음은 동시에 우리에게 새로운 의문을 가지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으신다면 과연 이런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필요가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인간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하나님이라면 우리에게 필요 없는 하나님이 아닐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으시고 그저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시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계속해서 믿어야 하는가? 라는 의문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주 특별한 계시를 인간에게 드러내실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접적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관만 하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현존하시고 사람을 통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얼핏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한다는 것이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힘들고 고통스럽고 참혹한 순간에 우리 곁에 있는 누군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인생에는 혼자서는 견디어 낼 수 없는 고난이나 고통이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견디지 못하는 고난이나 고통도 누군가 함께 하면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는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함께 하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시고 한 걸음 물러나 계신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자기를 비우시고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몸으로 세상에 오신 분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라고 믿습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의 자기비움 다시 말해 성육신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사람의 모습으로 현존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강도 만난 사람으로 현존하시고 가장 약한 자의 모습으로 현존하시고 이방인의 모습으로 현존하시고 차별받는 자의 모습으로 현존하시고 상처받은 자의 모습으로 현존하십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의 모습으로 현존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러한 하나님의 현존을 가장 잘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아침마다 묵상하고 있는 룻기의 말씀은 이것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와 늙은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룻의 삶 속에 현존하십니다. 나오미와 룻의 삶 속에 현존하신 하나님께서 이들을 어떻게 도우십니까? 보아스를 통해 나오미와 룻을 돕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와 룻을 돕는 보아스의 삶 속에도 현존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꼬치꼬치 간섭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우리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지 않으십니다. 대신에 함께 하는 사람을 붙여주십니다. 위로하는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돕는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우리가 함께 사랑하고 도우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우리가 고통을 견디어 낼 수 있도록 하십니다.


한 걸음 물러나 계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그를 통해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 누군가를 돕게 하시고 위로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섭리이며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사람을 통해 우리를 사랑하시고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고 믿는다면 기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도 바꾸어야 합니다. 많은 목사와 교인이 하나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로 당면한 현실을 기적처럼 바꾸어 주시길 바라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바꾸어야 하는 실재이지 하나님께서 바꾸시는 것이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앞에 두고 예수님은 할 수만 있으면 이 길을 피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겠다는 결단의 고백입니다.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맡기시고 한 걸음 물러나 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한 기도입니다. 물론 문제에 처해 있을 때, 혹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여러 가지 형태의 간구 기도로 가득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간구의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당연한 권리이자 마땅히 드려야 하는 기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현존하시고 우리를 어떻게 도우시는 가를 아는 사람은 막연하게 초자연적인 신비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울 사람을 붙여주실 것을 믿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기도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유지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깨닫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정말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순간이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변화시키십니다. 이것이 모든 기도의 본질이며 우리가 가져야 하는 기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사람의 말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현존하시고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교회라는 신앙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비록 아주 희미할지라도 하나님의 현존을 세상에 드러내는 믿음의 사람 되시길 축복합니다.

새글 0 / 341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공지 자유교회 주일예배 영상 Youtube 링크 2021.04.21 4741
341 십계명20-사람의 생명이 존엄한 이유 2025.07.20 127
340 십계명19-약속 있는 첫 계명 2025.07.19 124
339 십계명18-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 2025.07.19 122
338 십계명17-왜 부모 공경이 살인 금지보다 먼.. 2025.07.19 124
337 십계명16-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 2025.07.19 122
336 십계명15-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잘 지.. 2025.07.19 128
335 십계명14-안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2025.06.07 212
334 십계명13-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삶 2025.05.24 300
333 십계명12-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2025.05.24 315
332 십계명11-하나님의 이름에 담긴 의미 2025.05.24 313
331 십계명10-우리가 만들어내는 하나님 2025.05.24 359
330 십계명9-우리의 신앙, 믿음입니까? 미신입.. 2025.04.06 331
329 십계명8-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2025.04.06 317
328 십계명7-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제한하지 .. 2025.03.18 407
327 십계명6-코람데오(Coram Deo) 2025.03.18 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