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가짜 하나님 버리기12-왜 자유교회인가?

왜 자유교회인가?

갈라디아서 5:1,13

 

오늘은 가짜 하나님 버리기 열두 번째 시간으로 왜 자유교회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도 함께 나누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우상적 형상을 극복하고 진짜 하나님을 찾아가는 믿음의 여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이름은 자유교회입니다. 자유교회란 이름은 200686일 교회를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사용한 이름입니다. 교회를 시작하면서 교회 이름을 자유교회라고 이름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고 그 자유를 누리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얻는 최고의 은혜이며 구원의 은총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교인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사람에게 명령하고 강제하고 금지하고 막는 신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매우 심각한 오해이며 하나님에 대한 우상적 형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유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자유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통해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참된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랫동안 기독교인들에게 세뇌된 하나님의 모습은 자유의 하나님의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을 강제하고 억압하고 벌주고 저주해서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게 만드는 하나님이 오랫동안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퍼진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심지어 사람에게 강제당하는 걸 싫어하고 저항하는 사람도 하나님만은 강제로 해도 괜찮고 하나님에게만은 절대로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생각합니까?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이니까 강제하고 명령해도 되고 사람은 하나님의 강제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만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오랫동안 배워왔고 그렇게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배운 하나님은 뭔가를 못 하게 하는 분이며 금지하는 분이며 사람이 일정한 선을 넘으면 즉각 이를 저지하는 분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은 명령하는 하나님이고 강제하는 하나님이며 수많은 율법과 규범을 만들고는 이것을 어기면 벌주시는 무서운 하나님이었습니다. 강제의 복종을 요구하는 하나님은 곧 공포와 징벌의 하나님이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강제로 주입된 하나님에 대한 우상적 형상으로 인해 교인들에게 나타난 모습이 무엇입니까? 교회의 일이라며 목사의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하는 교인을 신앙이 좋은 사람으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교회의 일이나 목사의 말에 토를 달거나 질문하는 사람은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자식쯤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유 그 자체이시기에 강제나 강압적인 복종을 원하지 않습니다. 자유와 자발에 기초하지 않은 순종은 순종이 아니라 맹목적이며 강압적인 복종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사람 역시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그 어떤 부당하고 불의한 강제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자유를 빼앗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기계나 동물에 불과할 뿐입니다.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패트릭 헨리의 유명한 구호처럼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찾고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회복하는 것이 곧 기독교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복음은 세상이 강요하고 강제하고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참된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유와 구원의 하나님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가르치는 목사로서 저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복음이 주는 참된 자유를 회복하고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까지 우리 교회 교우들이 복음이 주는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전심을 다 해 노력해 왔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제가 우리 교회 교우들을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지금까지 18년 동안 자유교회를 목회하면서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교인들에게 봉사나 헌신을 강요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없었거나, 필요한 것이 없었기에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은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억지로 또는 강요함으로 해야 할 일을 하거나 필요한 것을 해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교인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헌신이나 봉사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성경을 이용해 교인들에게 순종을 가장한 복종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힘에 부치는 헌신이나 봉사를 하는 분이 있으며 그렇게 열심히 하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참고 견디고 지내려고 했습니다. 자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제가 하려고 했지, 원치 않는 일을 교우들에게 강제로 맡겨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이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저는 강제로 억지로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부목사로 사역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하거나 강제로 해야 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일에는 기쁨도 없고 보람도 없고 감사도 없습니다. 제가 이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다른 사람에게도 억지로 시키거나 강요하는 것을 잘하지도 못합니다.


물론 저도 닳고 닳은 목사이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고 성경 말씀을 이용해 교인들에게 순종을 가장한 복종을 강요하고 강제하는 것이 빠르고 쉬운 방법이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압니다. 하지만 이것이 교회를 성장시키고 목회를 쉽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고 수단이라고 해도 이렇게 하지는 않으려고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고 해도 여러분들에게 전도를 강요하거나 교회 출석이나 봉사를 강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 교회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놓인다고 해도 헌금을 강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제가 잘하는 일이라고 자랑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이것은 목사로서 매우 심각한 직무 유기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나 때에 따라 교회의 성장과 교인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억지로 또는 강제라도 교인들에게 강요할 수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런 강요가 없으니 오히려 신앙생활에 혼란을 느끼는 교인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강요받고 억압받을 땐 자유를 간절히 바라지만 막상 원하는 자유를 얻게 되면 강요받고 억압받을 때보다 더 심각한 불안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유롭게 신앙생활 하는 것보다 오히려 율법과 각종 종교 행위에 얽매이며 신앙 생활하는 것을 훨씬 더 편하게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인들의 이러한 이중적 태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는데 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고 하는 이들이 스스로 율법과 갖가지 종교 규범에 얽매여 이전과 똑같은 신앙생활을 반복하느냐고 경고합니다.


이것을 에리히 프롬이라는 유명한 사회심리학자는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규정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에게는 자유에 대한 본능과 자유를 추구하려는 강력한 욕구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토록 추구하고 원하던 자유를 얻는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유로부터 스스로 도피해 버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에리히 프롬이 주장한 자유로부터의 도피입니다.


자유를 추구하고 갈망하지만, 막상 자유를 얻으면 오히려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인간이 가진 역설적인 모습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독재자를 욕하면서도 독재자를 지지하고 의존하는 것입니다.(러시아 대선 결과) 그래서 교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복종을 강요하고 강제하는 목사를 욕하면서도 그런 목사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런 목사를 더욱 의존하고 의지하며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저도 목회에 짬밥이 있는 목사라 교인들의 이러한 이중적 모습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복종을 가장한 순종을 강요하거나 요구하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때문입니다. 순종을 가장한 복종이나 강요는 교인들에게 하나님을 매우 심각하게 오해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제 목회의 성공을 위해 하나님을 함부로 제멋대로 왜곡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죄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무서워서 또는 목사나 다른 교인들 눈치 보여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에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더 나아가 인간의 영혼과 내면을 다루는 기독교 신앙은 강제하고 강요함으로 성숙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은총이 임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헌신이나 희생을 강요하지 않았기에 우리 교회는 작은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부담 없이 다닐 수 있는 교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 교회가 부담 없이 다니실 수 있는 교회일까요? 만약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정말 잘못 생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 자유교회가 아무것도 강요하거나 요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부담도 없이 마냥 편하게 다닐 수 있는 만만한 교회는 아닙니다.


아마도 우리 교회를 몇 년 이상 출석하신 분들은 처음에는 아무런 부담도 없이 교회를 다니셨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자유로운 교회를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중에는 다니면 다닐수록 자유교회 다니는 것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느끼신 분들이 있다면 이분들은 지금까지 자유교회를 제대로 다니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비록 우리 교회는 그 어떤 강요나 강압적인 순종을 요구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종교 행위나 봉사로 신앙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했다고 여기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자기의 내면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입니다. 흉내 내는 신앙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변화되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강요와 강제와 복종의 하나님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주는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은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목회의 방향이자 목표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자유는 일부 교인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자기 맘대로 하는 자유가 아닙니다.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물 밖이 아니라 물 안에 있을 때 자유롭습니다. 물고기가 물에 제한받기 싫다고 물 밖으로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죽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새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는 하늘이라는 환경 안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반대로 물속으로 들어간 새는 얼마 가지 못하고 죽고 말 것입니다.


이처럼 자유란 단순히 어떠한 구속이나 제한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란 전능하신 존재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음으로, 더 큰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물론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추구하고 가르치는 자유는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자기 멋대로 자기 맘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이 추구하는 자유는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들을 누구의 강제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많은 사람이 자유를 자기 맘대로 제멋대로 하며 사는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이런 자유는 지금도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온갖 종류의 억압과 차별과 편견과 탐욕 불안 두려움으로부터 결코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합니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진정한 자유는 자원하여 이웃을 사랑하고 책임지려는 마음과 태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인간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때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진정한 자유는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길 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살아갈 때 참된 자유를 누리도록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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