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을 허물어라
요한복음 2:19-22
오늘은 가짜 하나님 버리기 열다섯 번째 시간으로 “성전을 허물어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도 계속되는 가짜 하나님 버리기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우상적 형상을 버리고 진짜 하나님을 찾아가는 믿음의 여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어떤 생각과 답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가지는 믿음이 달라집니다. ⓢ오랫동안 많은 교인이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외부의 세계 저 멀리 계신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와 멀리 떨어진 곳에 계신다는 믿음은 하나님의 형상이나 하나님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매우 심각한 왜곡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계신다고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 계신 하나님이시기에 가끔만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으로 여깁니다. 주로 우리가 예배할 때 기도할 때 또는 인생의 시련과 역경으로 절규할 때만 우리를 찾아와 주시는 분으로 믿습니다. 결과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모두 일시적인 순간과 만남으로만 제한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멀리 떨어진 곳에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와 아주 가까이 계시며 늘 우리와 동행하여 주시는 분으로 믿는다면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영성은 매우 다른 모습을 띠게 될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 기도할 때, 절규할 때만 저 멀리서 우리를 찾아와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많은 교인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란 성경의 가르침을 오해하였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오해가 무엇입니까? ⓢ하늘을 저 높은 곳에 있는 구름이 떠다니는 공중을 의미하는 Sky로 오해하였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늘 Heaven은 ⓢ모든 사람,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을 품어주는 하늘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극히 영적인 의미를 가진 영적 개념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 대한 오해보다 더 심각한 오해가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람이 지은 건물, 성전이라고 부르는 건물에 계신 분으로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 크고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을 완공하고 나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성전 중심으로 완전히 바뀌게 된 것입니다.
성전이 완공된 이후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성전이라는 건물이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크고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을 완공한 다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서 성전에 계신 하나님으로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만나려는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찾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성전에 계신 분으로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여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올리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방법이 되었습니다. 또한 성전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해 성전세를 내는 것이 신앙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신앙생활이 대부분이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성전에서 행하는 종교의식이 신앙생활의 전부라 여긴 것입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신 분으로 믿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성전에만 계신 분으로 만들고는 백성들에게는 성전 제사와 절기만 잘 지키면 그것으로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라고 믿게 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백성들은 성전을 찾을 때만 거룩하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신 분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성전에 계신 하나님으로 제한하여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로 바뀐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우 심각한 영적 타락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신 분이라 믿게 되면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밖 일상에서의 삶은 성적 타락과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최초로 성전을 지은 솔로몬 왕조차 수많은 이방의 처첩들과 우상들 속에서 살았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람이 만든 성전에 계신 분으로 제한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하나님에 대한 왜곡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게다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과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성전을 함부로 이용하는 것에 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타락한 성전을 정화하고 나오면서 유대인들에게 이 성전을 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사흘 만에 새로운 성전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무너뜨리라고 하신 성전은 헤롯 왕이 46년에 걸쳐 새로 지은 성전이었습니다. ⓢ헤롯 성전은 솔로몬이 지었던 성전보다도 훨씬 더 웅장하고 화려했던 성전이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헤롯 왕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은 당시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제국이 지었던 그 어떤 신전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웅장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헤롯이 지은 성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자랑으로 삼았던 헤롯 성전을 허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타락한 성전을 허물면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새로운 성전을 세우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놀라서 물었습니다. 이 성전을 짓는데 무려 46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는데 어떻게 사흘 만에 새로운 성전을 세우겠냐며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요2: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세우신다고 하신 성전은 건물로서의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세우신다고 하신 성전은 장차 죽음에서 부활하실 예수님의 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허물라, 그러면 사흘 만에 새로운 성전을 세우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성전 신앙의 종말을 선포하시는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요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사람이 만든 성전이라는 건물이 아님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예수님의 몸입니다. 이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계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건물에 계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의 몸에 계시는 분이심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성전을 허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성전 중심의 신앙에서 교회 중심의 신앙으로 바뀌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교회 중심의 신앙은 단순히 성전이라는 건물에서 교회라는 건물로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교인들이 성전이고 교회입니다.ⓢ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께서 성전을 허물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지은 건물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지은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사람이 지은 건물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람이 지은 건물에 가두어 둘 수 없기에 성전을 허물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허물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몸소 희생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성전에서의 제사가 필요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종교 예식이 무엇이었습니까? 동물을 죽여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더 이상 동물 제사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은 거룩한 산 제사라고 했습니다.ⓢ
롬12:1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허물라고 하신 성전을 오늘날 교회와 교인들이 다시 세우고 있습니다. ⓢ목사들은 예배당 건축을 성전 건축이라고 하며 더 크고 화려한 예배당을 짓는 것이 마치 하나님을 위한 최고의 헌신이며 사명이라고 교인들을 부추깁니다. ⓢ그리고 더 크고 화려한 교회 건물을 짓기 위해 교회가 가진 모든 재정과 에너지와 노력을 쏟아붓습니다. ⓢ교인들 또한 더 크고 아름다운 교회 건물을 짓고 그런 건물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마치 대단한 신앙이라고 착각합니다.
교회 건물을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곳으로 여기거나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럴 수도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를 성전이라고 여기거나 교회를 사람들의 모임이 아닌 특정한 건물로 여기는 것은 몰라서 저지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닙니다. 이것은 매우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신앙의 왜곡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세워진 교회를 구약의 성전 시대로 되돌려 놓는 신앙의 퇴행이며 매우 심각한 영적 타락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거룩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이 거하는 곳은 사람이 만든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람은 자신이 거룩해지는 것을 포기합니다. 대신에 자신들이 만든 건물이나 물건들만 거룩하게 여기려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 자신이 거룩해지고 경건해지는 것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거룩해지려면 희생하거나 포기해야 할 것이 많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여기는 교인들은 오로지 성전이라는 교회 건물에 들어왔을 때만 거룩해집니다. 교회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거나 교회의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동안만 거룩한 기분을 느낍니다. 그러다가 예배와 모든 프로그램의 참여를 마치고 예배당을 나서서 세상으로 진입하는 순간 교인들은 거룩함과 멀어집니다. 세상에 발을 딛는 순간 거룩함의 영성을 사라지고 지극히 세속화됩니다.
신앙생활은 교회에서 하는 예배나 봉사만이 신앙생활이고 가정과 직장에서 하는 것은 세속적인 삶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교회의 방식대로 행동하고, 세상은 세상 방식대로 사는 것이 마치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라고 믿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오늘날 대부분 교인은 교회 건물 안에서만 거룩하고 선합니다. 교회에서만 보면 그렇게 훌륭하고 거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만 나서는 순간 세상 사람들보다 더 세속적인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교회의 심각한 위기와 타락을 가져오게 만든 이유입니다.
ⓢ고대인들은 자신들이 믿는 전능하다는 신을 자신들이 만든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에 모실 수 있는 분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믿는 신이 다른 민족들의 신보다 더 위대하고 강력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신전을 다른 민족들의 신전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하게 짓는 것으로 자신들이 믿는 신이 다른 신보다 더 위대하고 강력하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교회와 교인들은 여전히 고대인들이 저질렀던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더 크고 화려하고 비싼 예배당을 지어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다른 교회보다 더 크고 화려한 예배당을 지으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다른 교회 교인들보다 더 크게 복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저잣거리의 우상 신과 다를 바 없는 잡신으로 만드는 신성모독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교회라는 특정한 장소나 건물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여기는 것은 성전을 허물라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교회라고 하면 건물이 아니라 먼저 교인들이 떠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그 교회가 진짜 교회입니다. 교인들보다 건물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교회가 여전히 성전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교회로 모이는 것은 이 건물에 이 장소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 된 교인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축복하고 함께 믿음의 길을 가기 위함입니다. ⓢ교회 건물이 성전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몸이 그리고 삶이 성전이고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모신 성전으로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존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