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하나님에서 우리의 하나님으로
마태복음 6:9-13
오늘은 가짜 하나님 버리기 열여섯 번째 시간으로 “나만의 하나님에서 우리의 하나님으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도 계속되는 가짜 하나님 버리기 시리즈 설교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우상적 형상을 버리고 진짜 하나님을 찾아가는 믿음의 여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물론 이런 신앙 고백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많은 기독교인의 신앙에는 매우 위험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의 하나님이라는 많은 이들의 신앙 고백은 ⓢ사실 나만의 하나님이라는 신앙 고백에 훨씬 더 가깝다는 것입니다.
나만의 하나님은 나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존재이며 나를 위협하거나 위험에 빠뜨리는 세상의 온갖 것들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하나님입니다. 더 나아가 나만의 하나님은 나를 남들보다 물질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더 나은 삶을 보장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나만을 지키고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으로 여기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한낱 수호신으로 전락시키는 매우 심각한 신앙의 왜곡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기도를 주기도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살펴보면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라는 단어입니다. 길지도 않은 주기도문에 자그마치 우리라는 단어가 여섯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영어 성경과 원어 성경에서는 여덟 번이나 반복됩니다.
게다가 주기도문의 시작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만 들으시는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라는 가르침은 창세기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창세기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지 만물이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 더 나아가 창조주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신앙 고백이 됩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을 나만을 위한 하나님에서 우리 모두의 하나님 되심을 회복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의 고백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을 사람만을 위한 하나님에서 생태계 모두를 위한 하나님 되심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기도할 때마다 우리라는 울타리가 갈수록 넓어지는 마음을 가지는 것,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나타나야 하는 영성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디까지를 우리라고 여겨야 할까요? 여러분에게 어디까지가 우리입니까? 우리 가족, 아니면 우리 교회, 아니면 최대한으로 여겨서 우리가 사는 미국이나 조국 한국까지가 대부분 교인이 생각하는 우리의 범위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어디까지가 우리일까요? 하나님을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세상의 모든 기독교인까지가 우리일까요?
저는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 봐도 하나님은 기독교인들만 우리라고 여기지 않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라고 여기시는 범위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이라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생각하시고 품으셨던 우리는 모든 민족, 모든 사람이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의 신이 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세상 모든 민족 모든 사람을 형제자매로 여길 줄 아는 인류애를 가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우리가 믿는 창조주 하나님을 모든 사람,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보다 인류애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인류애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국가주의나 민족주의가 의미가 있는 것이지 인류애를 해치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는 우리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내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라고 가르치신 것은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매우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자기만의 아버지로 생각하여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만 잘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동시에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내가 기도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피해가 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 자식 잘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지나쳐서 남의 자식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를 떠나 나 혼자 하나님 잘 믿겠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신앙생활은 본질적으로 하나님 나라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믿는 사람이 신앙 공동체를 떠나서도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도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라는 신앙 공동체를 포기한 사람은 자기 생각에는 아무리 신실하게 영성을 지키며 산다고 해도 이것은 가짜 믿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기 혼자서 예수 잘 믿겠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이루시고자 하셨던 하나님 나라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힘들고 문제가 많다고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를 포기하고 떠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포기한 사람은 자기 혼자 아무리 경건해 보이는 삶을 산다고 해도 이것은 짝퉁 믿음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 역시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된 사람들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나타내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에는 주목해야 할 매우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라는 단어입니다.
새번역 성경은 일용할 양식을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영어 성경도 our daily bread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단순히 나만을 위한 일용할 양식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만을 위한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기도는 내 가족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드리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 믿음의 사람이 어떻게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받은 복을 나 혼자 독식하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 나눔으로 하나님의 복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마태복음 14장에 기록된 오병이어의 기적이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많은 무리가 저녁 먹을 시간까지 예수님 주변에 모여서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모여든 무리를 더 늦기 전에 마을로 보내어 각자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14: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그러자 제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은 겨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제자들과 예수님의 일용할 양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저들이 가지고 있는 일용할 양식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져온 일용할 양식을 앞에 두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가지고 온 일용할 양식을 들판에 모인 오천 명에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이 시작된 것입니다.ⓢ
마14: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오병이어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은 신비한 기적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가져온 일용할 양식을 이웃과 함께 나누었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함께 나눈 결과가 무엇입니까? 들판에 있던 굶주린 사람 오천 명이 배부르도록 먹을 수 있었습니다. ⓢ
마14:20-21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일용할 양식을 기꺼이 자발적으로 우리의 이웃과 함께 나누겠다는 믿음을 고백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기도하는 것은 일용할 양식이 오직 나만을 위한 양식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임을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이웃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진심으로 드리는 사람은 우리 주변의 굶주리는 사람이나 신체적으로 또는 정신적, 영적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우리를 생각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명적인 기도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나만을 위한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마음에서 벗어나 이웃을 돌아보는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할수록 우리는 세상을 품기 시작할 것이며 더 나아가 지구 공동체를 전체를 생각하게 합니다.
용서에 관한 기도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단어는 우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구해야 할 죄는 단지 개인이 지은 죄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나의 죄는 내 문제이며 나의 책임이고 다른 사람의 죄는 그 사람의 문제이며 그 사람의 책임이라고만 여깁니다. ⓢ하지만 세상과 사회 그리고 여기에 사는 우리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의 삶에 대해 관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한 사람의 문제는 단지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문제는 그 사람이 속한 가정의 문제이며, 그 사람이 속한 교회와 사회의 문제가 되며 나아가 우리 전체의 문제가 됩니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지금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끔찍한 사건은 단지 어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교회가 저지르는 가장 악한 일 중의 하나는 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불의와 악행을 하나님의 뜻으로 넘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와 교인들을 세상의 악한 권력자와 악마의 편에 서게 만드는 불신앙입니다. 우리는 곳곳에서 벌어지는 교회의 타락과 부패를 보면서도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처럼 신앙생활 합니다. 우리는 매일 일어나는 세상과 사람들의 죄를 보면서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얼마나 긴밀하게 그리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안다면 침묵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죄 사함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을 나만의 하나님으로 여기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매우 심각한 왜곡이자 우상적 형상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제한하려는 신앙에서 벗어나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뿐만 아니라 자연 생태계를 이루는 모든 자연의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 더 나아가 창조주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을 때 우리의 믿음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믿음의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을 나만의 하나님 수호신으로 전락시키는 우상적 믿음에서 벗어나 우리의 하나님 더 나아가 창조주 하나님이심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