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시험을 이겨낼 수 있나?
누가복음 4:1-13
오늘은 인생의 시험 네 번째 시간으로 “어떻게 시험을 이겨낼 수 있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계속되는 시험 시리즈 설교를 통해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시험들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깨달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성숙해가는 영적 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에 앞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사건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이 공통으로 기록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복음서는 예수님을 시험으로 이끄신 분은 다름 아닌 성령이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매우 중요한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예수님조차 시험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통해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 역시 시험과 유혹을 피할 수 없음을 가르쳐줍니다. 두 번째는 시험을 피할 수 없는 우리에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시험을 이기며 살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이끄시어 시험받게 하신 것처럼 성령께서는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시험받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신 것처럼 우리 역시 끊임없는 시험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언제까지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할 때까지 시험은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시험은 우리가 죽는 그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험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내 인생에서 시험이나 유혹이 없을 것을 기대하는 요행이나 행운이 아닙니다. 믿음을 포기할 때까지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계속될 시험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마땅한 자세와 태도는 어떻게 해야 계속되는 시험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는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셨고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는 누가복음의 말씀에서 분명하게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칫 성령께서 예수님을 마귀에게로 이끄신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예수님을 이끄신 곳은 마귀가 아니라 광야였습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이끄신 것이지 악마에게 이끄신 것이 아닙니다.
눅4:1-2a 예수께서 성령이 충만해서, 요단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의 시험으로 인도하신 것이지 악마에게 시험받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의 시험을 받으실 때 악마가 나타나 예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가 성령이 인도하신 광야의 시험이라면, 다른 하나는 악마의 시험입니다. 이 두 가지를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을 때 시험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왜냐하면 시험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시험이 Test를 의미한다면, 마귀의 시험은 Temptation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는 왜 우리를 시험하십니까? 우리가 이전보다 더 성숙한 사람이 되도록 연단하고 훈련하여 예수님을 닮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반면에 마귀가 우리를 시험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유혹하여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유혹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유혹해서 넘어뜨리고 무너지게 만들어 우리를 멸망으로 이끌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시험받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하고 분별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받는 시험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시험인지 악한 마귀가 주는 시험인지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받는 시험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시험이냐 아니면 악한 마귀가 주는 시험이냐에 따라 시험을 대처하고 극복하는 방법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시험받을 때 대부분 교인이 너무나 쉽게 시험에 들어 넘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무나 많은 교인이 자신이 받는 시험이 성령이 주시는 훈련과 연단인지 마귀의 유혹인지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많은 교인이 우리를 연단하는 성령의 시험에도 넘어지고 우리를 유혹하는 마귀에 시험에도 걸려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 가운데 성령으로 말미암은 시험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기록하기를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이끄셨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성령께서 예수님께서 주신 시험은 광야였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성령의 시험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까? 성령께서 예수님을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셨습니다. 성령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의 방법은 순종이었습니다.
유대 지역에서 광야는 사막을 뜻하는 곳으로 사람이 살기 힘든 곳입니다. 먹을 것이 없고 마실 물을 찾기 어려우며 편히 잘 수 있는 곳이 없는 황량한 곳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광야로 이끄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그대로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영적 원리입니다.
어떻게 해야 성령께서 주시는 시험을 통과할 수 있습니까?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광야에서 40일을 보내며 밤낮으로 금식하셨다는 성경의 기록은 예수님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철저하게 순종하셨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내가 받는 시험이 성령께서 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이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광야로 가시어 광야에서 40일을 참고 견디고 인내하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참고 견디고 인내하면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처럼 40일을 금식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40일을 금식하라고 명하신 말씀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목사나 교인들 가운데 무리하게 목숨을 걸고 40일 금식 기도하다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귀의 유혹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물론 특별한 경우에는 성령께서 우리를 40일 금식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신 것은 우리에게는 일종의 메타포이지 그대로 따라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훈련과 연단 그리고 심판을 의미하는 매우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창세기 7장에 의하면 노아 홍수 때 40일 밤낮을 비가 내렸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궁궐에서 40년의 생활을 하였고,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으며, 시내 산에 올라가서 40일 동안 금식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돌에 기록하였습니다. 모세가 보낸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기간이 40일이었으며,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순종으로 인해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과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은 각각 40년이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에서 40일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셨으며,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신 날까지의 기간이 40일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성경에는 40과 연관된 사건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40이라는 숫자와 연관된 사건들에는 매우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40이라는 숫자와 연관된 사건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연단이나 훈련 또는 심판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것은 공생애 사역을 준비하기 위한 연단과 훈련의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연단이나 훈련을 의미하는 Test라는 시험을 받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Test라는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까? 여기에는 그 어떤 다른 비결이 있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다른 비법은 없습니다. 오직 참고 견디고 인내하며 순종함으로만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받으신 마귀의 시험은 성령이 이끄신 광야의 시험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께서 이끄신 광야의 시험을 마치자 마귀가 득달같이 달려들어서는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마귀의 시험은 성령께서 이끄신 시험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넘어뜨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훼방하기 위해 마귀가 달려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마귀의 시험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40일 동안 금식하신 예수님에게 돌덩이를 떡 덩이로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눅4: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둘째는 높은 곳에서 천하만국을 보여주고는 자기에게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눅4:5-7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마지막 세 번째는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것입니다.
눅4: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받으신 세 가지 시험에는 매우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마귀가 예수님에게 제안한 것을 그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제안한 것을 그대로 하는 순간 마귀에게 걸려 넘어지고 맙니다. 이런 시험을 유혹이라고 합니다.
유혹이 무엇입니까?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게끔 만들어 우리를 넘어지게 만드는 것이 유혹입니다. 유혹이 무서운 이유는 유혹을 걸려 넘어지고도 자기가 유혹에 빠진 줄도 모릅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마귀의 시험인 유혹은 마귀가 시키는 대로 안 하는 것이 유혹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다시 맨 처음 문제로 되돌아갑시다. 인생은 끊임없는 시험의 연속입니다. 이 시험은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평생토록 계속되는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까?
시험을 이기는 첫걸음은 내가 받는 시험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Test인지 마귀에게서 온 Temptation인지를 구별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연단과 훈련이라면 참고 견디고 인내하며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하지만 마귀에게서 온 유혹이라면 유혹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훈련은 거절하지 않고 인내하며 그대로 지켜야만 우리의 인격과 성품과 신앙이 자라납니다. 반대로 마귀가 하는 유혹은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내 믿음과 인격과 성품이 자라납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반대로 행동합니다. 훈련은 싫고 힘들어서 멀리하려고 하고 유혹은 좋아서 가까이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늘 시험에 들고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단숨에 한 번에 이루어지는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평생을 계속해서 이루어가야 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죽는 순간까지 시험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시험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그러니 시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시험을 기회로 삼을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감당해 낸 시험만큼 성숙할 것이고 내가 물리친 유혹만큼 더욱 단단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