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동안 떠나갔다
누가복음 4:1-13
인생의 시험 열다섯 번째 시간이자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늘은 “얼마 동안 떠나갔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함께 나누는 말씀 가운데 여러분 각자에게 들려주시는 세미하고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받으신 세 가지 시험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은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셔서 굶주리셨던 예수님에게 광야에 널브러진 돌멩이로 빵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생존을 위해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한 시험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광야의 널브러진 돌멩이로 빵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마귀의 시험은 단순히 돌을 빵으로 만드는 기적을 행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돌은 하나님께서 양식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살지 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네가 원하는 대로 살라는 마귀의 교묘한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을 인용하시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굶주림의 문제나 먹고 사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돌멩이를 빵으로 만드는 기적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용할 양식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것으로 데려가서는 세상 권세의 화려함과 영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합니다. 마귀가 약속한 세상의 권세와 영광은 세상에서의 부귀영화, 성공에 대한 메타포라 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보여주고는 이것을 얻기를 원한다면 자신에게 엎으려 절하라 유혹합니다.
마귀에게 엎드려 절하라는 것은 자신을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마귀를 경배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방식 대신 마귀의 방식을 따라 세상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탐욕을 따라 세상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세상의 부귀영화나 성공에 대한 욕심을 이용해 사람들의 마음과 눈을 멀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방식과 말씀 대신 마귀의 방식을 따라 살게 합니다.
인간의 탐욕을 이용하여 인간을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한 마귀의 방식이 무엇입니까? 약육강식, 승자독식,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그 과정은 상관하지 않는 결과주의가 세속의 방식이며 마귀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힘이 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권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 없는 사람을, 함부로 무시하고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을 물리치셨습니까? 눅4: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힘이 있는 자는 약한 자를 돕고, 부유한 자는 가난한 자를 나누어주며, 권세를 가진 자는 그 권세를 약한 자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는 거기서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시편 91편의 말씀을 이용하여 하나님께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예수를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보호해 줏실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해 보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마지막 세 번째 시험이 하나님이 계신다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성경 말씀을 이용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교회는 마귀의 시험이 없는 청정구역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는 세상의 그 어떤 곳보다 더 치열한 시험과 영적 싸움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또한 성경 말씀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생명의 말씀이기에 잘못 사용하면 사람을 죽이는 죽음의 말씀도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종교 지도자가 자신들이 바라고 원하는 목적이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성경을 함부로 남용하거나 제멋대로 오용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의 본질은 신비한 이적을 보여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놀랄만한 이적이나 신비한 기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세상이 조롱하고 세상이 멸시하고, 세상이 저주하는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세상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보다 더 성공해야 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지금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성공하거나 부자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보다 더 겸손하면 되고, 지금보다 더 낮아지려고 하면 되고, 지금보다 더 욕심을 버리면 됩니다.
누가복음은 세 번에 걸친 시험으로도 예수님을 유혹하는 데 실패한 마귀가 잠시 떠나갔다고 기록합니다.눅4: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마귀가 얼마 동안 떠나갔다는 말씀에는 매우 중요한 교훈과 영적 도전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지금이 비록 유혹에 실패하여 잠시 떠나가지만, 우리를 시험하여 넘어뜨리려는 마귀는 언젠가 또다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반복하지만,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 받으신 세 가지 시험을 제대로 이해하고 적용하기 위해선 마귀를 단순히 악한 귀신 정도로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마귀 또는 사탄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또는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권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회 구조나 인간 내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자기중심적 욕망이야말로 성경이 말씀하는 마귀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귀가 얼마 동안 떠났다는 말씀은 우리를 유혹하여 넘어뜨리려는 시험은 또다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험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우리가 시험에 빠져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한두 번의 시험을 물리쳤다고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시험이 또다시 반복한다고 실망하거나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시험이 반복된다는 것은 여전히 내가 시험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한두 번 시험에 빠져 넘어졌다고 실망하거나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실망하고 좌절하여 더는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악한 권세와 영적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지 한두 번의 실수나 실패로 사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 번이나 배신한 베드로도 다시 쓰셨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신앙생활이란 우리를 지배하고 다스리려는 죄와 악의 권세가 영영 사라지는 완벽한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과 끊임없이 씨름하고 싸우는 과정을 통해 죄악된 권세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마귀가 잠시 물러간 시기일수록, 우리는 더욱 깨어서 기도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전쟁은 가장 평화로울 때 준비하는 것이지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 준비하면 늦습니다.
마태복음 12장을 보면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쫓겨난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마12:43-45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사람에게서 쫓겨난 더러운 귀신이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자기가 머물 곳을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마귀가 찾아다닌 물 없는 곳이란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 영적으로 메마른 영역을 나타내는 메타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다녀도 마땅히 거할 곳을 찾지 못한 더러운 귀신이 어떻게 했습니까?
자신이 쫓겨난 사람을 다시 찾아간 것입니다. 다시 찾아간 사람을 보니 깨끗하게 청소되고 수리되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빈집과 같은 상태였습니다. 이 사실을 발견한 더러운 귀신이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그 사람에게 들어갔습니다. 그 사람은 더러운 귀신을 내쫓을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서 쫓겨난 더러운 귀신이 여기저기 다니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자신이 가진 취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겐 돈이기도 하고, 성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겐 도박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고 자랑하려는 과시 욕구나 인정욕구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취약한 부분은 한 번 유혹이나 시험을 물리쳤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취약한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마귀는 우리의 취약한 부분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물고 늘어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경우 반복되는 마귀의 유혹에 결국 넘어지고 맙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받으신 세 가지 시험은 예수님에게만 해당하는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받게 되는 시험과 유혹에 관한 말씀입니다. “마귀가 얼마 동안 떠났다”라는 마지막 말씀은 우리의 신앙이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기나긴 여정임을 상징합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시험과 유혹은 우리가 넘어질 때까지 우리가 무너질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능히 시험을 물리치신 것처럼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는 능히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기의 내면을 성찰하며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살 때 악의 힘은 끝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세 가지 시험을 통해 우리 인생에서 계속되는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지혜와 말씀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인생의 시험과 유혹 앞에서 늘 깨어 있게 하시고, 무엇보다 주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시험을 이겨 나가도록 도와주소서. 세상의 방식이 아닌, 낮아짐과 겸손과 사랑의 길을 선택하게 하시며, 우리 안에 자리 잡으려는 악한 생각과 탐욕을 몰아내고, 날마다 주의 은혜로 채워지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