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십계명1-십계명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이유

십계명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이유

마태복음 22:35-40

 

오늘부터 십계명에 대한 시리즈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십계명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이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십계명이라고 하면 어떤 이들에게는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도덕 명령으로, 어떤 이들에게는 영화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오래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에게 십계명은 외면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는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십계명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성품과 뜻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말씀이며,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장 확실하고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십계명은 구약 성경에서 두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출애굽기 20장이고 다른 하나는 신명기 5장입니다.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기록된 십계명에는 약간의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따라서 두 개의 십계명의 말씀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살펴야 할 것은 십계명이 주어질 때의 상황이 주는 메시지입니다.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된 십계명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으로부터 두 돌판에 직접 받은 계명입니다. 출애굽기에 기록된 십계명은 이제 막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 생활을 시작한 이스라엘 공동체에 주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공동체에 십계명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앞으로 오랜 세월 광야를 떠돌아다녀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말씀이 십계명입니다.


신명기 5장에 기록된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직전, 모세가 유언으로 다시 선포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이 단지 광야 생활에서만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 정착해서도 반드시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십계명을 제대로 지키며 살지 못했습니다. 구약 시대, 선지자들의 경고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들을 죽이고 거짓말하고 음행에 빠졌으며 우상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외면하고 무시한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이스라엘의 완전한 멸망이었습니다.


7:9 너희는 모두 도둑질을 하고, 사람을 죽이고, 음행을 하고, 거짓으로 맹세를 하고, 바알에게 분향을 하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섬긴다.


그렇다면 복음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십계명은 더 이상 필요 없는 계명일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의 말씀에서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5: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과 예언자의 말은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제대로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규범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십계명은 오늘날 헌법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오늘날 무엇과 같습니까? 각종 법률과 같습니다. 헌법의 정신과 뜻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읽은 마태복음 22장의 말씀을 보면,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율법 가운데 어떤 계명이 가장 크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십계명을 살펴보면, 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 사랑에 관한 계명이며,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이웃 사랑에 관한 계명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야말로 십계명의 본질이자 십계명을 통해 이루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우리에게 십계명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 그중에서도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를 율법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로마서 104절에서 예수님이 율법의 마침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라 바울의 선언이 무슨 뜻입니까? 구원을 위한 율법의 기능이나 효력은 완전히 끝났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계명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율법은 폐기처분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러한 의문에 대해 단호하고 분명하게 계명과 율법은 여전히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고 선언합니다.7:12 그러므로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고 해서 율법의 본질이 변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율법이 아닌 복음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율법에 대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은 율법에 대한 우리의 신분, 율법에 대한 우리의 위치가 바뀐 것이지 율법이 더 이상 불필요한 신앙의 유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계명과 율법은 여전히 의롭고 선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바울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합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키는 자신의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로마서에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바울의 설명처럼 십계명과 율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기준을 채우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함과 한계를 발견하고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를 죄책감에 빠지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노력이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복음의 시대에 십계명과 율법은 우리를 억압하고 속박하는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자로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삶의 기준이며 방식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은 그 어떤 계명보다 엄격한 처벌이 따르는 무시무시한 계명이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안식일을 어긴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반드시 죽이라고 했습니다.


31:15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율법의 영향으로 인해 한국 교회도 오랫동안 주일 성수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금과옥조처럼 여겼습니다. 주일 성수를 해야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교인들을 세뇌했습니다. 하지만 주일 성수를 해야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율법의 방식 구약의 방식이지 복음의 방식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복음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주일 성수는 구원을 얻기 위한 도구나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으로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전히 주일을 구별하여 지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의은총을 누리는 사람이 마땅히 그리고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가장 좋은 신앙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하는 칭의라는 구원은 단번에 이루어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라는 구원은 지속적인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십계명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삶의 기준이 됩니다. 복음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십계명을 지키는 것은 강압적인 의무나 명령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자연스럽게 따르는 삶의 방식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만, 이 자유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명과 책임이 함께 합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말씀입니다.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어떻게 하는 게 사랑으로 종 노릇하는 것입니까? 명령이니까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힘입어 우리는 율법에 얽매여 사는 종이 아니라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아무렇게 막살아도 되는 방종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자기가 감당해야 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책임을 자발적으로 자원해서 기쁨으로 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십계명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나 율법주의의 상징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율법의 시대와 복음의 시대의 차이는, 우리가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율법을 무시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의 본질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정리해 주셨습니다. 신약의 시대를 사는 우리도 여전히 십계명의 정신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율법의 속박 아래서가 아니라, 은혜 안에서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가 십계명을 통해 종교적 규율이나 도덕적 규율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 하나님과 더욱 사랑하고, 이웃을 더욱 많이 알아 이웃을 사랑하여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때때로 십계명을 단순한 규율이나 과거의 유물처럼 여기고, 우리의 삶과 무관한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십계명은 그 어떤 말씀보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게 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매우 중요한 교훈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의 신앙이 율법적 행위에 머무르지 않게 하시고, 은혜 안에서 기쁨으로 순종하는 신앙이 되게 하옵소서. 십계명을 의무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감격하여 자발적으로 따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십계명의 정신을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게 하시고, 율법의 속박이 아닌 자유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교회를 축복하셔서 이웃을 섬기는 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우리 가정을 보호하셔서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평안이 넘치게 하옵소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삶으로 실천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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