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를 섬기며 살고 있는가?
출애굽기 20:1-3
십계명 강해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도 지난주에 이어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인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말씀을 가지고 “우리는 누구를 섬기며 살고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여러분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아마도 많은 교인이 이 계명을 엄격한 종교 규율이나 무서운 경고로 받아들일지도 모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독선적이고 억압적인 명령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우상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사랑의 선언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첫 번째 계명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선 십계명이 주어진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막상 이집트의 오랜 노예 생활에서 벗어났지만, 막상 광야라는 낯설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십계명은 단순한 종교적 율법이 아니라, 노예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하나님이 주신 기준입니다. 십계명은 억압과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인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사람과는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노예로 살던 이집트 사회는 수많은 신들이 존재하는 다신교 사회였습니다. 태양의 신, 나일강의 신, 풍요의 신 등 온갖 종류의 신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이런 신들을 두려워하며 살아애 했습니다. 물론 신들이 직접 사람들을 억압하고 지배한 것은 아닙니다. 권력자들이 사람들이 가진 신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신의 이름을 앞세워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했습니다.
사람을 지배하고 억압하고 착취하는 신들은 이집트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야 했던 광야에도 그리고 저들이 장차 정착해서 살아야 했던 가나안 땅에도 온갖 종류의 신이 있었습니다. 바알, 아세라, 다곤 등 여러 신들을 섬기는 문화가 만연했습니다. 사람들은 풍요를 위해 바알 신을 섬겼고, 생육과 출산을 위해 아세라 신을 찾았으며, 농사를 위해서 다곤에게 제물을 바쳤습니다.
물론 이런 신들은 진짜 신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진 불안과 두려움이나 탐욕이 만들어 낸 가짜 신이거나, 권력자들이나 자신들의 지배와 통치를 쉽게 하려고 만들어 낸 가짜, 짝퉁 신들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신들을 만들어 내고 섬겼지만, 오히려 신들의 분노를 피하려고 더 큰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불안과 두려움이 만들어 낸 신이나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지배와 통치를 위해 만들어 낸 신을 뭐라고 합니까? 이것을 성경은 우상이라고 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우상을 만들고는 자신들이 만든 우상에 얽매여서는 우상을 분노를 사지 않아야 한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노예였던 히브리인들을 구원하신 출애굽의 하나님은 이집트의 신들과는 달랐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나’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사람의 생각, 상상을 초월하시는 분으로 사람이 함부로 규정할 수 없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있는 나라고 하신 야웨 하나님은 오랜 노예 생활로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는 저들을 이집트의 압제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기에 사람들이 다른 신을 섬기면 벌을 주시기 위해서 이런 계명을 주신 것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출20:5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질투하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독점하려는 배타적 욕심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질투하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인간을 사랑하고 보호하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열정과 인간의 충성을 요구하는 것이지, 자기의 소유를 빼앗길까 봐 안달하는 이기적인 시기나 집착이 아닙니다.
따라서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라는 계명은 독점이나 독선도, 강압이나 강제도, 징계나 징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불안과 공포, 압제와 억압에 시달렸던 이스라엘이 또다시 가나안 땅의 우상과 거짓 권력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려는 사랑의 계명입니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계명입니다. 사람은 우상에 얽매여 살 때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다움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시대에는 ‘다른 신들’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요? 고대 사회에서 우상은 주로 자연의 힘을 신격화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해를 섬기고 달을 섬기고 힘센 동물들이나 인간에게 필요한 동물들을 신격화했습니다. 물론 이런 식의 신격화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나라들 사이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많은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다른 신’은 바로 돈입니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돈은 우리 삶에 필요한 도구이지만, 돈 자체가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될 때,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물질주의라는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건강을 해치고, 인간관계를 망가뜨리며, 심지어 자신의 신앙이나 양심까지 내팽개치는 경우를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탐욕(탐심) 역시 우리 시대의 강력한 ‘다른 신’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욕구 즉 식욕, 성욕, 수면욕 안전욕구 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욕구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존을 위해 주신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욕구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해를 끼치는 것은 탐욕이 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러한 탐욕을 우상 숭배라고 경고합니다.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명예와 인기에 집착하는 것,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사는 것, 역시 오늘날 우리를 사로잡는 가장 강력한 ‘다른 신’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사람에게 자랑하기 위해 SNS에 자기의 삶을 포장하고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 쓰며 살 때, 우리는 인정욕구라는 우상에 갇히게 됩니다. 사람에게 받은 인기과 칭찬은 너무나 쉽게 변하고 사라지는 덧없는 것입니다. 결코 우리에게 진정한 자존감과 내면의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또한 특정한 철학이나 정치적 이념 역시 강력한 ‘다른 신’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은 세상의 사상과 이념을 뛰어넘는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특정한 이념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골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까? 탐욕스러운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권력자들의 선전 선동에 빠져 거짓 사상과 이념이라는 우상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보면 사람의 힘이나 권력, 재물, 그리고 탐심과 같은 것이 우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많은 교인이 우상 숭배라고 하면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 자리에 놓는 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상을 숭배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도 좋고 돈도 좋아할 때입니다. 하나님도 좋고 세상 권세와 명예도 좋아할 때입니다. 하나님도 좋고 자신의 정치적 이념이나 사상도 좋아할 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우상 숭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계명의 핵심 정신은 ‘관계의 회복’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회복되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 십계명이며, 그중에서도 첫 번째 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대신 사람이 만들어 낸 우상을 좇기 시작하면, 우리는 물질적 욕심과 권력 탐닉 그리고 차별적이고 배타적 이념 등에 의해 끊임없이 분열되고 갈등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서게 되면, 이웃과의 관계도 더불어 회복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더 이상 불안이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이것은 협박이나 억압, 강요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억지로 마지못해 복종함으로 이루어지는 평화도 아닙니다. 오직 사랑과 신뢰의 관계에서 피어나는 자유로운 결실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해야 합니까? 갈수록 너무나 많은 교회가 세상의 힘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권력과 결탁하고, 물질적 성공과 번영을 사로잡혀서는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셨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치와 이상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첫 번째 계명 앞에서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살아가는가?” “교회는 정말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를 우선하고 있는가, 아니면 수적 성장이나 물질의 풍요를 ‘다른 신’처럼 섬기고 있는가?” 이런 반성과 성찰을 통해, 교회는 우리를 탐욕과 거짓과 억압과 차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교회로 거듭나야 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계명은 우리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무서운 겁박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를 노예로 삼으려는 그 어떤 우상에게도 휘둘리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자유를 누리라는 하나님의 애틋한 초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삶에서 하나님보다 우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며 우리 시대의 강력한 우상인 돈, 명예, 인정, 이념 등에 휩쓸리지 않도록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와 함께 서로의 믿음을 위해 기도하고 연대해야 합니다.전4:12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바라기는 모든 억압과 속박으로부터 자유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초대에 기쁨으로 응답하여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거짓된 신과 우상으로부터 지키시고 참된 생명으로 초대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우상을 좇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돈과 권력, 사람의 인정과 세상의 이념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시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세상의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세상과 사람이 만들어 내는 거짓된 신들을 물리치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