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삶
출애굽기 20:7 마태복음 6:9
십계명 강해 열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라는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에 대한 마지막 설교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삶”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지금까지 두 번의 설교를 통해 우리는 성경에서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에 담긴 의미와 그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헛되게 그리고 제멋대로 사용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함부로 여기는 것이며, 이것은 심각한 죄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했습니까? 성경에 하나님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하나님의 이름 대신 주님이란 뜻을 가진 단어 ‘아도나이’로 대체해서 발음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얼마나 철저히 지켰는지 지금까지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야훼’나 개신교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이름에 대한 정확한 발음이 아닙니다. 후대의 학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만들어 낸 이름입니다. 따라서 ‘야훼’가 맞다, ‘여호와’가 맞다 또는 ‘하느님’이 맞다, ‘하나님’이 맞다 논쟁할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개인적인 주장일지 모르지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이름을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계명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힘들고 어려운 때, 좌절과 절망에 사로잡혔을 때, 그리고 기쁘고 감사할 때 부르라고 주신 거룩한 이름, 힘과 소망을 주는 거룩한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금지 계명을 긍정적 계명으로 바꾼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라 또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라는 계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며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여기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거룩하게 만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와 상관없이 스스로 거룩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는 이미 스스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 이름의 영광과 거룩이 드러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고, 존경받으며,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이 돌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세상에서 감당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를 통해 거룩히 여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것은 종교 예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에서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과 공의, 자비와 용서를 실천할 때, 세상은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보게 되며, 그분의 이름을 높이게 됩니다. 우리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정직을 택할 때, 세상은 하나님이 정직하신 분임을 봅니다. 우리가 바쁜 와중에도 이웃의 아픔에 귀 기울일 때, 세상은 하나님의 자비를 느낍니다. 우리가 용서받을 자격 없는 이를 끌어안을 때, 세상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목격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말로는 하나님을 부르면서 삶으로는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거스르며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을 차별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는 분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용서보다 보복하기를 좋아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은 복수하기를 좋아하는 분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이간질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는 분으로 여길 것입니다.
성도의 말과 행동은 세상 사람들이 읽는 "성경"이란 사실을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신앙고백과 행동 사이에 괴리가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잘못 나타내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이름을 맡기셨습니다. 우리의 삶과 말과 행동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도 있고 땅에 떨어뜨릴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세 번째 계명을 적극적으로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헛되이 사용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즉 우리의 말과 생각, 행동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고 그분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삶을 살고자 할 때, 그 능력과 통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에 그 비밀이 있습니다. 많은 교인이 마치 습관적으로 또는 주문을 외듯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기도를 마칩니다. 하지만 예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고백은 아무 의미 없이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주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나의 공로나 자격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권위와 공로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중요한 시작점이자 원동력이 됩니다. 각자의 간절한 소원과 간구를 기도했지만, 기도의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고백이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능력이 되는 것일까요?
기도는 일방적으로 우리의 소원을 부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내 마음, 예수님의 가르침과 내 뜻을 맞추어가는 '조율(tuning)'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의 기도를 예수님의 뜻과 일치하기 어려울 때가 훨씬 많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이기심 또는 나만을 위한 간절한 소원을 앞세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우리의 뜻을 내려놓고 그분의 뜻을 구하기 시작할 때, 놀라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미움이 있던 자리에 용서의 마음이 싹트고, 절망이 있던 곳에 소망의 빛이 비치며, 우리의 좁은 시야가 하나님의 넓은 계획을 향해 열리는 것입니다. 이 조율을 통해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과 공의, 자비를 실천할 힘과 지혜를 얻게 되며, 점점 더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분의 뜻을 구하고, 그 뜻을 살아낼 힘을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과 뜻에 맞는 것을 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믿음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기를 바라는 것이며, 그분의 뜻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의 이름이 가장 거룩하게 드러남을 믿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라는 것은 단순히 기도를 마치는 형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믿음의 고백이자 능력입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중요하고 강력한 방법이며 수단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살아갈 용기와 능력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골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야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가장 완전한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 공의와 거룩하심을 온전히 보여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하는 것이며, 그분의 뜻을 우리 삶 속에서 실천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단순히 기도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신앙과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드려지고, 그 기도를 통해 얻은 힘과 지혜로 우리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세 번째 계명을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라는 세 번째 계명은 우리를 억압하고 속박하는 율법이 아닙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깊고 거룩한 관계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길을 예수님께서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열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며, 모든 간구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삶의 비밀과 능력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기도가 더욱 깊어지고, 우리의 삶이 더욱 거룩해져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든 순간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입술의 고백과 삶의 실천이 하나가 되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거룩하심을 증거 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함께 나누는 말씀 가운데 세미하고 부드러운 음성을 듣게 하시고 주님의 깊은 뜻을 조금이라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따라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간구가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게 하시고, 모든 순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그 이름의 권능을 힘입어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날마다 예수님을 닮아가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백성,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의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각기 다른 모습과 재능으로, 때로는 연약함 속에서라도 주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믿음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시간을 구별하여 예배의 자리로 모인 성도들과 물질을 구별하여 봉헌한 손길 위에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여, 우리의 삶이 주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산 제물이 되기를 바라며 이 모든 간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