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인가?
신명기 5:12-15 이사야 58:13-14
십계명 강해 열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라는 네 번째 계명을 가지고 “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안식일에 관하여 아주 오래된 경험이지만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한국 음성이라는 지역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을 때, 지방 목사님들과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라는 명목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정확하게 1995년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무려 30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는데 두 개의 엘리베이터가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여러 사람이 몰려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도 없이 사람들이 없는 엘리베이터에 탔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은 닫혔고 제가 가려고 하는 층수를 눌렀지만 아무런 버튼도 눌러지지 않는 것입니다. 순간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층을 올라간 엘리베이터가 저절로 문이 열렸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저절로 문이 열린 것입니다. 저절로 문이 닫히더니 또 한 층을 올라가서는 또다시 저절로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입니다. 이러기를 제가 묵었던 12층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어떻게 된 영문인지 호텔직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호텔직원이 설명해 주시기를 제가 탄 엘리베이터는 안식일에만 사용하는 엘리베이터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은 일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일하지 말라는 안식일 규정을 지키기 위해 저절로 열리고 닫히고 안식일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라 가르쳐 주셨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종교에서도 찾을 수 없는 대단히 파격적이며 놀라운 명령입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도 일하는 것을 멈추고 쉬라는 것을 신의 명령으로 강조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려 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시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을 안식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라 말씀하신 것일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선 하나님께서 이 계명을 주신 대상과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막 해방된 ‘출애굽 공동체’에 주셨습니다. 그들은 사회 최하층민으로서 늘 강제 노역에 시달렸고, ‘쉼’이란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들어갈 새로운 땅에서는 반드시 ‘쉴 줄 알아야 한다’라고 강력하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우리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지만 이 명령은 우리를 종교적 굴레에 옭아매는 강압적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정한 배려이며 사랑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을 가장 잘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즐기며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교회가 주일을 하나님이 주신 안식을 누리는 날이 아니라, 또 다른 일과 봉사로 분주한 날로 변질시켰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마치 Stop 사인과 같습니다. 신호등의 빨간불과 같습니다. 달력에 주일이 빨간색으로 되어 있는 것도 Stop 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Stop 사인을 만나거나 신호등의 빨간불이 켜지면 달리던 모든 차는 멈추어 서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빨간 날짜에는 멈추어서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가는 방향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방향을 찾아가야 합니다.
주일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매일같이 하던 일을 중단하고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일할 때는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져서 하나님에 대해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어야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깊이 그리고 제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님을 깊이 생각할 때만 우리는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막 목회를 시작했을 때 선배 목사님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목회에 대한 비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인들을 느슨하게 하면 딴생각을 하니까 딴생각하지 못하도록 많은 예배와 여러 가지 봉사로 교인들을 일주일 내내 달달 볶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교인들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고 목사와 교회에 충성하고 교회가 부흥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배 목사들의 충고에 하나도 동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목회를 하면 목회를 하는 저도 행복하지 못할 것이고 이런 목회자에게 달달 볶이며 신앙 생활하는 교인들도 행복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까? 교회에 대한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이루시려는 것은, 일이나 사역이 아니라 안식이고 은혜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안식과 은혜는 뒷전이고 일만 하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안식과 은혜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일이나 사역은 금방 눈에 드러나 보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은 의무적인 봉사로 지치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함께 모여 삶의 기쁨과 아픔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는 복된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가능한 불필요한 집회나 모임을 하지 않으려고 애써왔습니다. 우리 교회가 개척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소위 부흥회라는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불필요한 사역이나 봉사를 줄이고 안식을 누리는 것에다 목회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안식일 지키라는 말씀은 생존을 위한 일을 멈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내 삶과 내 일을 뒤 돌아보고 내가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잘살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의 복을 누리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필요한 인생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멈춰서 안식할 줄 알아야 내 가족만 위해서 살던 삶에서 벗어나 이웃의 아픔과 신음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웃의 아픔과 신음을 듣고 그들을 섬김으로 우리의 행복의 크기를 더 넓혀가야 합니다. 나만 위해 살면 한 사람의 행복만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이고 내 가족만 위해 살면 내 가족의 크기만큼만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살아간다면 우리가 누리는 행복의 크기는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안식이란 편안하게 숨을 쉬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호흡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과 타인에게 예민해지고, 때론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좀 쉬어도 괜찮아'라고 허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붙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강압적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너그러울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역시 조급하고 비판적이며 강압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자체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 많이 일하고 성과를 내라'고 다그친다는 점입니다. 사회 전체가 우리를 쉬지 못하도록 몰아가는 구조입니다. '이 정도 차는 타야지', '이 정도 저택은 있어야지' 하는 사회적 기준과 압력 속에서, 우리는 만족과 행복을 유보한 채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일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과사회의 모습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늘 피곤합니다.
성과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은, 마치 향기 없는 꽃과 같습니다. 본래 우리의 삶은 향기로 가득해야 하는데, 너무 압축되고 효율성만 강조되다 보니 그 향기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안식일 계명은 단순히 과거 히브리 노예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과와 실적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오늘날 피로한 우리 모두에게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안식일의 정신을 확장하여 '안식년'과 '희년' 제도까지 명령합니다. 7년째 되는 안식년에는 땅도 쉬게 하고, 빚을 탕감해 주어야 했습니다. 50년째 되는 희년에는 종들이 해방되고, 팔았던 땅을 원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 제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정의롭고 공평한 세상, 모든 존재가 참된 쉼과 자유, 평화(샬롬)를 누리는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58장 13-14절은 안식일에 참된 즐거움을 얻는 비결을 알려줍니다. 사58:13-14a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이사야 말씀처럼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주일 아침, 잠시 창문을 열고 하나님의 지으신 세상을 깊이 호흡하는 것입니다. 한 주간 감사했던 일들을 가족과 교우들과 식탁의 교제를 나누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배하는 것들이 모두 주님이 주시는 안식의 즐거움입니다.
분주함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이 시대에, 우리는 안식을 잃어버린 채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물론 우리 중에는 주일에도 생업을 위해 일해야만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율법적인 형식보다, 최소한 일주일의 하루는 의도적으로 '멈춤'의 시간을 만들어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이 주시는 쉼을 누리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여 잠시 세상의 분주함을 멈추고 하나님의 창조 리듬으로 깊이 들어가는 즐거움을 맛보기 시작할 때, 우리의 삶은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모든 안식의 약속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오늘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진정한 안식은 단순히 일을 멈추는 휴식이 아닙니다. 우리를 고단하고 지친 삶에서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예배할 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따라서 주일을 구별하여 지키는 것은 참된 안식으로 초대하시는 주님의 초대에 자발적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안식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창조의 리듬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창조의 리듬을 회복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일을 멈추는 안식을 통해 깊은 쉼과 회복, 기쁨을 경험한 사람이라야, 일상을 의미 있고 거룩하게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주님이 주시는 안식 가운데 평안과 생명이 충만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