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모 공경이 살인 금지보다 먼저인가?
출애굽기 20:12 에베소서 6:1-3
십계명 강해 열일곱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다섯 번째 계명을 가지고 “왜 부모 공경이 살인 금지보다 먼저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계속되는 십계명 강해 설교가 고리타분한 옛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에 생명과 자유를 주는 살아 있는 말씀으로 다가오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은 두 돌판에 새겨졌습니다. 첫 번째 돌판에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네 가지 계명이, 두 번째 돌판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여섯 가지 계명이 기록되었습니다. 두 번째 돌판을 여는 첫 번째 계명,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두 번째 돌판에 새겨진 첫 번째 계명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의 질문에 부딪히게 됩니다. 왜 하필 ‘부모 공경’이 이웃에 관한 모든 계명의 시작이 되는 것일까요? 얼핏 생각하면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살인하지 말라’라는 여섯 번째 계명이나, 가정과 부부 관계를 지키게 하는 ‘간음하지 말라’라는 일곱 번째 계명이 훨씬 더 중요하고 심각해 보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왜 살인 금지보다, 부모 공경의 계명을 앞세우신 것일까요? 물론 여기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는 오늘날과 같이 국가가 개인의 노후를 책임져주는 연금과 같은 사회보장제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나이 들어 더 이상 스스로 땅을 경작할 수 없게 된 부모님들은 전적으로 자녀들의 보살핌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단순히 마음으로 존경만 하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늙고 병드신 부모님께 먹을 것, 입을 것, 주무실 곳을 책임지고, 돌아가셨을 때 장례까지 치러드리라는 아주 구체적인 책임이며 의무였습니다. 이것을 통해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통해 생명과 가업을 이어가게 하는, 그야말로 공동체를 지탱하게 하는 가장 기초적이며 기본적인 계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모 공경의 계명이 살인 금지의 계명보다 앞서는 이유를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이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네 부모를 공경하는 다섯 번째 계명은 그저 괜찮은 사회 규범 정도에 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십계명은 단순히 인간 사회를 유지를 위한 사회 규범을 넘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기에, 여기에는 좀 더 깊은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 공경에 관한 다섯 번째 계명을 부모님을 위한 계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계명을 주신 하나님 말씀을 따르면, 다섯 번째 계명을 지켰을 때 가장 큰 유익을 받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자녀의 공경을 ‘받는’ 부모가 아닙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나님께서는 왜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네 생명이 길 것이라는 축복을 주신 것일까요? 사람은 자기를 나은 부모를 공경할 수 있을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경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 때 비로소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온전히 누리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왜 부모 공경에 관한 계명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배우게 하신 것일까요? 성경은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자만’이란 뿌리 깊은 죄가 있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자만’이란 단순히 상대방에게 거만하게 군다는 의미의 교만이 아닙니다. ‘자만’은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를 타락으로 이끈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죄입니다.
'자만'은 단순히 잘난 척하는 교만이 아니라, 내 삶의 운전대를 내가 잡고 하나님을 조수석으로 밀어내는 근본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마음, 즉 하나님 대신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자기 맘대로 살아가려는 마음입니다. 이처럼 ‘자만’은 스스로 자기를 높여서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는 모든 죄의 시작이자 뿌리가 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 있는 사람이 어떻게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자만이라는 죄의 뿌리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거, 탐심이라는 죄의 열매들은 계속해서 맺힐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인간 내면 깊이 뿌리내린 ‘자만’이라는 죄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부모 공경 계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죠. 이처럼 우리는 부모님을 통해 우리의 한계와 연약함을 자연스럽게 배웁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권위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자만을 내려놓는 첫걸음입니다.
때로 부모님의 의견이 내 생각과 달라 순종하기 어려울 때, 바로 그 순간이 나의 고집과 자만을 꺾고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복종하는 법을 배우는 영적 훈련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인 ‘자만’으로 나타나는 ‘자기중심성’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부모 공경의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살인 금지 계명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열매들을 다루시기 전에, 먼저 죄의 뿌리인 우리의 자만을 다루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자만이라는 완고한 본성을 꺾고 우리에게 겸손과 순종을 가르치기 위한 가장 자연스러운 훈련의 장으로 ‘가정’을, 그리고 그 안에서 ‘부모님’이라는 권위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배워야 할 ‘순종’이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라고 권면합니다. 엡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주 안에서’라는 말씀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모든 순종과 공경에는 거룩한 기준과 경계선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나를 낳고 기른 부모라도 하나님의 뜻에 명백히 어긋나는 죄를 강요하거나, 자녀의 영혼과 육체를 파괴한다면, 이것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주 안에서’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모든 부모가 공경받을 만한 분이 아닐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했거나, 사랑이 아닌 폭력과 무관심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부모님으로 인해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는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계명은 다른 방식으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부모 공경’은 나 자신을 지키는 거룩한 경계선을 세우는 것일 수 있습니다. 부모의 죄에 동참하거나 학대의 희생자로 계속 남아 있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건강한 거리를 두고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죄를 끊어내고 하나님의 형상인 나를 지키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때론 ‘부모 공경’은 용서를 향한 힘겨운 발걸음일 수 있습니다. 이때의 용서는 부모의 잘못을 없던 일로 하거나 관계를 예전처럼 회복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증오와 복수심의 사슬을 끊고, 그들을 하나님의 심판과 긍휼에 맡겨 드림으로써 내가 먼저 그 상처의 감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용서는 가해자를 위한 것이기 이전에, 상처의 감옥에 갇힌 자신을 해방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더 나아가 ‘부모 공경’은 악의 대물림을 내 세대에서 끊어내는 결단입니다. 내가 받은 상처를 나의 자녀나 이웃에게 결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건강한 가정을 세워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과거의 아픔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공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는 것은, 그분들이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설령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을지라도, 그 관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을 배우고, 자만을 내려놓게 됩니다. 용서할 수 없는 이를 용서하려 몸부림치고, 사랑할 수 없는 이를 위해 기도하며, 아픈 과거를 딛고 새로운 삶을 세워나가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사랑 많고 지혜로운 부모님을 만나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분들은 어떨까요? 그런 분들에게 이 계명은 어떤 의미일까요? 바로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이라는 또 다른 자만과 싸우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기도와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분들의 삶을 통해 일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그 지혜를 다음 세대에 겸손히 전수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분들을 향한 최고의 공경이 될 것입니다.
부모 공경에 관한 축복으로 주신 ‘네 생명이 길리라.’라는 하나님의 언약처럼, 부모 공경으로 인한 유익은 부모가 아니라 철저하게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명이 길다'라는 것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관계의 회복을 통해 얻는 마음의 평안, 불필요한 갈등과 미움에서 오는 정신적, 육체적 소모를 줄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은 관계의 생명이 길어지는 축복을 뜻합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겸손을 배운 사람은 다른 모든 인간관계, 즉 부부 관계, 자녀 관계,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서도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이처럼 건강한 관계 속에서 누리는 평안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축복일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가 부모 공경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존재에서 벗어나 이웃을 향해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는 이웃을 위한 다른 계명을 지킬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 번째 계명은 우리를 옭아매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우리의 가장 뿌리 깊은 죄인 ‘자만’을 깨뜨리고 우리를 참된 자유와 구원으로 이끄시는 은총의 통로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여정에서 끊임없이 겸손과 순종을 훈련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나아가 모든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존귀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