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인가?
출애굽기 20:12 에베소서 6:1-4
십계명 강해 열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지난주에 이어 계속해서 다섯 번째 계명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는 제5계명은 부모에 대한 효도를 유달리 강조한 유교의 영향을 받은 한국인들에게 새삼스러운 것이 없는 명령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기독교는 임금도 부모도 섬기지 않는 종교라고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사회의 근간을 무너뜨린다며 배척하고 박해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매우 심각한 오해입니다. 십계명을 보면 하나님에 관한 계명 바로 다음으로 가장 먼저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가운데 그것을 지키면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계명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무엇입니까? 부모 공경에 관한 계명입니다.
지난주 우리는 부모 공경의 계명이 왜 살인 금지 계명보다 먼저인가라는 주제로 다섯 번째 계명의 독특한 위치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 번째 계명은 왜 하나님에 관한 계명이 끝나고 이웃에 관한 계명을 시작하는 맨 앞에 놓여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에게 부모님은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한 분이십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은 아닙니다. 또한 '나'는 아닌 타인이기에 이웃과 같지만, 세상 어떤 이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혈육 관계입니다. 이처럼 부모는 하나님과 이웃의 경계에 서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과의 관계를 통해 신앙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배웁니다. 첫째는 나를 낳아주신 권위를 존중하며 나 중심적인 자만을 내려놓고,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웁니다. 둘째는 나와 가장 가까우면서도 다른 인격체인 부모님을 사랑으로 섬기면서, 나와 다른 이웃을 어떻게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는지를 훈련하고 배우게 됩니다.
이런 의미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5계명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이 끝나고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이 시작하는 맨 처음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동시에 이웃에 대한 사랑을 배우고 훈련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님을 진정으로 공경하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까? 아마도 많은 분이 부모님을 모시고 살거나, 따로 사시는 분들은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거나 선물을 사드리는 것 정도로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도 대단히 중요한 부모 공경의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이 부모 공경의 전부라고 한다면 이미 부모님이 돌아가신 분들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더는 필요가 없는 계명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부모를 공경해야 할까요?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입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 공경의 계명은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계속 지켜야 하는 계명입니다.
성경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단순히 육신의 부모에 대한 부양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믿음의 조상이라며 저들을 통해 전해진 믿음의 유산을 지키고 보전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중요한 신앙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부모 공경이란 단순히 나이 드신 부모를 부양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부모님께서 생전에 소망하셨던 선한 삶의 가치나 신앙을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세대를 넘어 계속되는 살아있는 부모 공경이라 믿습니다.
우리 말 성경이 ‘공경하라’라고 번역한 말씀의 히브리어는 '카베드'입니다. 히브리어 ‘카에드’는 무겁게 ‘여기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가볍게 볼 때, 우리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고려할 때도 그 사람은 우선순위에서 빼버립니다. 그러나 무겁게, 중하게 여길 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부모님을 삶의 소중한 자리로 모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을 중요하게 듣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소중하게 모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부모를 귀하게 여긴다고 하면서 부모의 뜻을 가볍게 여기고 멸시한다면 부모를 공경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가르치는 것, 부모가 원하는 것을 해 드리려고 할 때 부모를 공경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부모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맹종하는 것이 부모를 잘 공경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이 아무리 나에겐 좋으신 분이라고 할지라도 부모님의 모든 말씀이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부모님도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부모님의 말씀과 행동에도 실수가 있고 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엡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부모의 가르침에 맹목적으로 따르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은 자녀들이 분별력을 가지고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부모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면 아무리 부모님의 가르침이라도 거절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님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보다 더 높은 권위이신 하나님 앞에서 부모님과 자기 자신 모두를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녀들에게는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고는 부모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부모들은 자녀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속상해하거나 한탄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내가 하는 말이 주의 교훈과 훈계로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모든 부모는 자기가 하는 말은 모두 내 자식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내 자식 잘되라고 하는 부모 말 그대로 살기만 하면 자식들이 잘살까요? 아니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이 저에게 자기는 ‘하나님 아버지’라고 기도하거나 고백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자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자신이 어렸을 적 보았던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어머니와 자식들을 두들겨 패는 분이셨다는 것입니다. 한 번도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순간 하나님마저 미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분의 고백처럼 모든 부모가 다 좋은 부모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좋은 부모에게만 지켜도 되는 계명일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자녀의 공경을 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부모들도 분명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런 부모라 할지라도 주안에서 공경하라고 하십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단순히 부모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오해하니까 목사의 말도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잘못된 신앙에 빠지는 것입니다. 물론 아무리 잘못된 부모님의 말씀이라도 함부로 여기거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말씀이 부모의 욕심에서 나온 말씀인지 주님의 교훈에서 비롯된 말씀인지 분별하여 옳은 말씀에만 순종하는 것이 부모님을 진정으로 공경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감정 표현에 서투셨다면, 우리는 자녀와 배우자에게 ‘사랑한다’, ‘고맙다’라고 아낌없이 표현하는 세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부모님께서 가난 때문에 이웃을 돕고 싶은 마음만 있었지 실제로 도우며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나눔의 기쁨을 가르치는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부모님의 기도를 열매 맺게 하는, 살아있는 공경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공경은 무엇일까요?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을 힘입어 부모님보다 더 성숙한 사람, 더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부모님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님의 헌신과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가장 깊은 감사와 공경입니다.
제가 아들에게 가끔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들아 아빠는 네가 하루라도 빨리 아빠를 뛰어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제 아들이 지금까지는 제 말을 전혀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저를 뛰어넘어 저보다 더 성숙한 사람이 되면 비로소 그때 서야 아빠인 제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이해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부모님 세대보다 모든 면에서 더 성숙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자녀들도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신들의 부모보다 더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갈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가 나보다 더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가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부모 공경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언제 철이 들었다고 말합니까? 부모님의 마음을 알아차리기 시작할 때입니다. 저는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비로소 저를 낳고 기르신 부모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을 결혼시키고 나서야 비로소 저를 결혼시킨 부모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팔순을 훌쩍 넘기신 부모님 마음은 다 알지 못합니다. 아마 저도 팔순이 되어봐야 지금의 부모님 마음을 이해할 것입니다.
이처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님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좋은 기억과 사건만 아니라 나쁜 기억 나쁜 사건도 마음 깊이 이해하고 헤아리는 것입니다. 좋던 싫든 우리는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으로 지금의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향한 부모님의 아픔과 기쁨, 실수나 잘못까지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의 공경은 비로소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가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 여정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철드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철드는 신앙인이란 신앙의 연수가 많아질수록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 아파하시는 일에 나의 마음도 함께 아파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나의 마음도 함께 기뻐할 수 있을 때, 우리의 믿음은 성숙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단순히 부모님을 잘 부양하는 효도를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를 내 삶의 무거운 존재로 여기는 태도이며, 그분들의 유산을 힘입어 더 큰 영혼으로 자라나는 거룩한 성장이고, 마침내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성숙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깊은 공경의 의미를 깨달아, 부모님께는 영광이 되고 하나님께는 기쁨이 되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