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십계명21-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


출애굽기 20:13 마태복음 5:21-22

 

십계명 강해 스물한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살인하지 말라는 여섯 번째 계명을 가지고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여섯 번째 계명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깨닫고 새로운 삶을 결단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살인하지 말라"는 여섯 번째 계명이 살인을 저지르는 흉악범에게나 해당하는 계명이 아니라 우리와도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계명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은 단순히 단순히 다른 사람의 육체적 생명을 해하지 말라는 의미를 넘어서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우리에게 주신 가장 결정적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따라 지음 받은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살인은 단순히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넘어서 그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하나님에 대한 영적 도전이자 신성모독입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육체적 살인에만 제한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육체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인격과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의 본질을 하나님의 형상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의 인격과 영혼을 파괴하는 존재론적 살인으로 확장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존재론적 살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의 인격과 영혼을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을 공동체로부터 단절시키고 소외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눈에 보이는 폭력보다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은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살인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인격과 영혼을 죽이는 끔찍한 일들이 너무나 쉽게 그리고 너무나 자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런 일들이 아무 생각이나 의도가 없이도 무심코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무심코가 무슨 뜻입니까? ‘아무런 의도나 생각이 없이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너무나 많은 존재론적 살인이 의도치 않게 무심코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무엇입니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입니다. 돌은 던지는 사람은 개구리에게 상처를 주거나 해를 끼치려고 돌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무심코 던졌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돌을 맞은 개구리는 어떻게 됩니까? 죽습니다. 시인 정현종은 살인자라는 시에서 사람을 실제로 죽인 사람만이 살인자인가. 아닐 것이다. 예컨대 말 한마디, 눈초리 하나도 살인적일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산상수훈의 말씀에서 무심코 일어나고 있는 존재론적 살인에 대해 분명하고 확고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형제를 향해 라가(바보)’라고 하거나 미련한 놈이라 부르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갈 것이라고 단호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왜 욕설 한마디가 이토록 무서운 죄일까요? 그것은 상대방의 인격, 즉 그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향해 너는 무가치하다라고 선언하는 말의 살인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이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어떻게 말해도 상대방이 자기의 말을 잘 이해해 줄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이해해 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왜 이런 착각을 합니까? 부부 사이니까! 부모 자식 사이니까! 친구 사이니까! 상대방이 내 마음을 잘 알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은 칼로 상대방을 찌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 말은 "네가 제대로 하는 게 뭐 있어?"라고 합니다. 반면에 부모가 자녀들로부터 가장 많이 상처받는 말은 "나한테 해 준 게 뭐 있어요?" "엄마 아빠 때문에 창피해 죽겠어요."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이 무엇 때문에 시작됩니까? 부주의한 말 한마디, 무책임한 말 한마디, 정직하지 않는 말 한마디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싸움이 나게 만듭니다. 심지어 부주의한 말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경고하기를 타락한 사람의 말은 독과 같아서 사람을 죽이게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140:3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이러한 존재론적 살인은 오늘날 디지털 공간에서 더욱 교묘하고 잔인하게 자행됩니다. 익명의 가면 뒤에 숨어 던지는 악성 댓글, 확인되지 않은 가짜 뉴스나 소문을 카톡으로 확산하여 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행위, 이런 것들이 현대판 돌팔매질이며 무심코 살인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죽임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에베소서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성경의 가르침은 단순히 욕하지 말라는 소극적 명령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파괴하는 말 대신 세워주는 말을, 경멸의 돌멩이 대신 은혜의 손길을 내밀라는 적극적인 살림의 명령입니다.


우리의 관계 맺는 방식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살인이 있습니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거나 소외시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과 영혼을 죽이는 일이 됩니다. 사람을 함부로 여기는 것은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을 함부로 여기는 신성모독의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을 함부로 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함부로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그의 외모, 재산, 학벌, 지위와 같은 조건으로 판단하고 차별하는 것 역시 그 사람에 대한 존재론적 살인을 저지르는 악한 일입니다. 이것은 세상과 사람이 만들어 낸 기준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거부하는 악한 일입니다. 자녀의 성적이 부모의 체면이 되고, 배우자의 성공이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수단이 될 때,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영혼을 도구로 전락시키는 살인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냉혹한 관계의 살인을 어떻게 멈출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장에서 판단과 차별의 낡은 옷을 벗고,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라고 권면합니다. 3:12-13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사도행전 9장을 보면, 교회를 박해하고 스데반을 죽이는 데 앞장섰던 살기등등한 청년 사울이 극적으로 회심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은 아무도 그의 변화를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울의 과거를 기억하며 그를 두려워하고 피했습니다. 과거의 행적을 근거로 그의 새로운 존재를 거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를 영적으로 고립시키는 관계의 살인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누가 나서서 사울을 품어주고 변호해 주었습니까? 바나바입니다. 그는 모두가 외면하던 사울의 손을 잡고 사도들에게 데려가 그의 회심이 진짜임을 증언하고 변호해 주었습니다. 그는 비난과 의심이라는 돌을 던지는 대신, 신뢰와 용납이라는 따뜻한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이 위대한 살림이 없었다면, 교회를 죽이려 했던 사울이 온 세계를 살리는 위대한 사도 바울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을까요?


존재론적 살인의 칼날은 다른 사람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향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실패, 약점, 상처에만 집착하며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야.”, “나는 패배자야”, “나는 살 가치가 없어라고 끊임없이 자신을 비하하고 정죄합니다. 세상의 기준과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판단하며 끊임없이 영혼을 갉아먹는 것, 이것이 바로 자기소외이며 자기 살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 살해의 칼날을 멈추게 하는 힘은 우리의 노력과 결심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은 선언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의 성과나 무엇 됨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정체성에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와 수치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를 자기혐오와 자기 비하의 감옥에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지금까지 우리 일상에 감추어진 여러 가지 존재론적 살인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직접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살인자는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무심코 던진 경멸이나 모욕의 말로, 생각 없는 비난으로, 차가운 차별의 시선으로, 그리고 자기 자신을 비하하고 경멸하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를 소외시키고 죽이는 일에 가담해 오지는 않았는지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누구에게 주어졌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며 생명의 존엄성을 짓밟혔던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사람을 인격이 아닌 소유물이나 도구로 여기던 이집트의 억압적인 문화에서 신음했던 고통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신 후 가장 먼저 주신 계명들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여섯 번째 계명은 단순히 정죄와 심판을 위한 계명이 아닙니다.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은 단순히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라는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입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될 때 자신도 살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너무 거창하게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가정에서, 직장에서, 온라인 공간에서 상처 주는 말 대신 격려하고 위로하고 말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사람을 치유하고 살릴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교회에서 사람을 소외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기 비하에 빠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 말 가운데 북돋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혹시 무슨 뜻인지 아세요? 밭고랑에 심은 작물의 뿌리가 드러나면 흙을 긁어 덮어주는 것을 북을 돋운다고 합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실수하거나 상처를 드러낼 때, "괜찮아, 내가 옆에 있잖아"라며 따뜻한 말로 감싸주는 것, 그것이 살리는 길입니다. 바라기는 누군가의 연약함이 드러났을 때, 비난보다 위로로, 외면보다 품어주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살인하지 말라"는 준엄한 하나님의 계명 앞에서 우리의 일상에 만연했던 '존재론적 살인'의 죄를 고백합니다. 익명의 가면 뒤에 숨어 말로 사람을 죽이고, 이기적인 기준으로 관계 속에 벽을 쌓았으며, 남들과 비교하여 자신을 미워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했던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의 능력을 의지하여, 죽이는 자의 길을 버리고 살리는 자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우리의 입술이 은혜를 끼치는 통로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시선과 손길이 비난이 아닌 격려로 북돋우는 자가 되게 하소서. 오늘도 시간을 구별하여 예배의 자리로 모인 성도들과 물질을 구별하여 봉헌한 손길 위에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길 바라며 우리를 살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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