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신 것인가?
출애굽기 20:15, 에베소서 4:28
십계명 강해 26번째 시간으로 오늘은 "도둑질하지 말라"라는 8계명을 가지고 “무엇을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오늘도 전하는 말씀 가운데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주시는 깨달음과 변화된 생각과 삶에 대한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도둑질하지 말라."라는 8계명은 아마도 십계명 중에서 가장 간결하고 명확하게 들리는 계명일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은 다른 사람의 재물이나 소유를 부당하게 빼앗는 모든 행위를 금하는 명령입니다.
하지만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은 단순히 개인의 소유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이 계명은 훨씬 더 근원적인 죄의 뿌리를 겨누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이용당했다'라는 느낌을 받고 마음 아파한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반대로 나도 모르게 나의 필요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한 적이 있으신지요?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는 '도둑질'은 단순히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라는 8계명은 다른 계명과 다르게 구체적인 목적어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무엇을’ 도둑질하지 말라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도둑질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일까요? 이 질문을 통해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계명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합니다.
8계명에서 사용된 도둑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가나브’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21장 16절에서 ‘사람을 납치하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도 8계명의 도둑질과 똑같은 ‘가나브’입니다. “출21:16 사람을 납치한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히브리어 ‘가나브’가 단순한 절도뿐만 아니라 인신매매까지 포함하는 개념임을 볼 때, 하나님께서 금하신 도둑질은 단순히 물건을 훔치는 것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대교 랍비들과 구약학자들 중에는 8계명을 단순히 물건을 훔치는 것에만 한정해서는 안 되며, 그보다 훨씬 더 근원적이고 심각한 죄인 ‘사람’을 훔치는 행위, 즉 인신매매를 금지하는 것이 이 계명의 핵심적인 의미라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십계명의 전체적인 구조 안에서 8계명을 살펴보면 더욱 설득력을 얻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라는 6계명은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는 명령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라는 7계명은 결혼이라는 인격적 관계의 거룩함을 지키는 명령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뒤따르는 8계명 역시 단순히 재산이나 소유에 관한 문제로만 여기기보다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가치를 다루는 계명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이 주어졌을 당시 인류사회는 사람을 노예로 삼아 노예를 사고파는 일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물건보다 노예의 값이 가장 비쌌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납치하여 파는 일이 큰 이익이 되었기에 이런 일들은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8계명을 통해 사람을 훔쳐서 노예로 만들어 사고파는 행위를 금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하나님의 엄중한 금지 명령에도 노예제도를 통해 다른 인간을 사고파는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심지어 지금도 인신매매가 완전히 근절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예전과 같이 공공연히 사람을 사고팔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은밀하게 장기밀매나 성노예로 사람을 사고파는 일들이 횡행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 도둑질’을 금지할 것을 엄중히 경고하신 것일까요? ‘사람 도둑질’이야말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엄한 인간을, 내가 마음대로 값을 매기고 처분할 수 있는 사물, 즉 나의 이익을 위한 소유물로 전락시키는 가장 사악하고 폭력적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도둑질이라는 관점에서 8계명을 이해하고 이것을 우리 삶에서 적용하려면, 노예제도가 사라진 오늘날 ‘사람 도둑질’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문명화된 우리 사회에서는 예전과 같은 인신매매나 노예제도는 사라졌기에 ‘사람 도둑질’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없는 일처럼 여겨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태가 바뀌었을 뿐, 인간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 전락시킨다는 점에서 그 죄의 본질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늘날 ‘사람 도둑질’은 훨씬 더 교묘하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우리 삶 깊숙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사람 도둑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의 위대한 신학자이자 성인으로 존경받는 어거스틴은 우리가 다른 존재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향유’와 ‘이용’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합니다. 향유란 그 존재 자체를 기뻐하며 누리는 것이라면, 이용이란 그것을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의 '사람 도둑질'은 다른 사람의 존재를 '향유'하지 않고 그 사람의 쓸모, 즉 그가 가진 재능이나 능력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모든 행위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친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함께하는 것은 향유입니다. 그러나 그 친구를 ‘내게 도움이 되니까’, ‘인맥 관리에 필요하니까’라는 이유로만 대한다면, 그것은 친구의 존재를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쓸모를 ‘이용’하는 것일 뿐입니다. 사람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대하는 것, 이것이 바로 8계명이 경고하고 있는 사람 도둑질의 숨겨진 본질입니다.
이런 일은 우리의 가정에서도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많은 부모가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기보다,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녀의 '존재' 자체를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학업 성적, 장래성, 공손함과 같은 것을 통해 자기의 만족을 채우려 합니다. 이런 것도 자녀를 주신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이용하려는 일종의 사람 도둑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직장과 사회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람을 존재 자체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가 가진 재능이나 실력으로만 사람을 평가하고 취급합니다. 노동자를 나와 같은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내가 언제라도 돈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 그들의 시간과 재능과 삶을 나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만 이용합니다. 이것 역시 사람을 도둑질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며 서로의 기능적 도움이 필요한 것은 당연합니다. 직장 상사가 부하에게 업무를 지시하고, 친구에게 운전을 부탁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8계명이 경고하는 죄악된 '이용'이란, 그 사람의 인격과 존엄성을 완전히 무시한 채, 오직 나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만 여기는 비인격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친구를, 배우자를, 이웃을 그 존재 자체로 기뻐하며 '향유'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나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그들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는 것, 이런 것들도 8계명이 경고하는 도둑질의 숨겨진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왜 이토록 다른 사람의 존재를 훔치고 그를 이용하려는 유혹에 빠지는 것일까요? 이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지, 사람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8계명은 단순히 인간의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계명이라기보다는 사람을 포함하여 이 세상 모든 만물의 소유권이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있음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레위기 25장 23절을 보면 “레25: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이 말씀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토지를 통해 천하만물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 원리는 단지 토지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건강, 재능, 시간, 재물, 심지어 우리의 자녀까지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도록 사명을 부여받은 '청지기'일 뿐입니다. 청지기는 단순히 창고를 지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것을 가지고 주인의 뜻대로 이웃을 섬기고 생명을 살리는 데 사용해야 할 거룩한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28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도둑질의 반대는 훔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고 나누는 청지기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도둑질은 청지기의 본분을 망각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교만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 것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며 움켜쥐고,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할 몫을 나만을 위해 쌓아둘 때, 우리는 하나님 것을 도둑질하는 자가 됩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내 소유물처럼 취급하고 이용하는 것은, 그 사람의 유일한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내가 그의 삶의 주인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신성모독의 죄가 됩니다.
우리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이 단순히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는 소극적인 금지를 넘어,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적극적이고 무서운 명령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둑질을 금하신 이유는 단순히 개인의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우리 모두가 서로의 필요를 채우며 더불어 살아가도록 창조된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다른 존재를 소유하고 이용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을 바꿀 수 있을까요? 우리의 결심과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을 힘입을 때만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당신의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셨고, 사람들이 비천하다고 여겼던 이들조차 존귀하게 여기시고 몸소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바로 그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움켜쥐려던 소유의 손을 펴서 나누는 청지기의 손이 되게 합니다. 다른 사람의 쓸모를 계산하던 '이용'의 마음을 내려놓고, 그의 존재 자체를 기뻐하는 '향유'의 마음을 갖게 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결단합시다. 나는 내 곁의 사람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향유'하는 청지기입니까, 아니면 나의 필요를 위해 그를 '이용'하는 도둑입니까?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모든 관계 속에서 빼앗는 자가 아니라 살리는 자로 서기를 결단합시다.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참된 주인이신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합시다. 그래서 빼앗고 상처 주는 삶이 아니라, 살리고 세워주는 거룩한 삶을 살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저와 여러분의 신앙 여정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든 인생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 아버지, "도둑질하지 말라"는 준엄한 명령 앞에서 나의 이익을 위해 사람을 도구로 삼고 이용하려고 했던 우리의 죄를 고백하오니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를 채워주사, 소유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사람과 세상을 섬기고 보호하는 청지기의 마음을 품고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관계와 삶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서로를 살리고 세우는 거룩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시간을 구별하여 예배의 자리로 모인 성도들과 물질을 구별하여 봉헌한 손길 위에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길 바라며 우리를 탐욕으로부터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