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선을 허무시는 예수님8-가이사의 동전, 하나님의 형상

가이사의 동전, 하나님의 형상

마태복음 22:15-21, 빌립보서 3:20

 

우리는 선을 허무시는 예수님이라는 주제로, 우리 내면의 차별과 미움, 적대가 그어 놓은 수많은 경계선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정치적으로 전혀 달랐던 열심당원 시몬과 세리 마태가 예수 안에서 한 식탁에 앉는 기적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가이사의 동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제목으로 정치 이념이 그어 놓은 견고한 선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식탁 위에 그어지는 선


주말에 교우들이나 친구들과 한 식탁에 앉아 음식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외로운 이민 생활에 활력과 위로가 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화기애애하던 식탁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정치 이야기가 나올 때입니다. 누군가 정치 기사를 공유하면 보이지 않는 선이 식탁 위에 그어집니다. 심지어 밥숟가락을 놓는 분이 생기고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합니다. 대화는 어색하게 끊기고 맙니다.


목회자인 저에게도 이 선은 늘 팽팽한 긴장입니다. 어떤 분은 저에게 설교 시간에 정치 얘기는 절대로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십니다. 그런데 또 어떤 분은 나라가 이 모양인데 왜 강단에서 바른 소리를 안 하느냐고 묻는 분도 있습니다. 이처럼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공동체 안에서도 우리는 정치라는 선 앞에서 첨예하게 갈라섭니다.


이번에 한국을 다녀오면서 한국 교회의 이야기를 친구들을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친구 교회의 장로님 한 분은 나라가 위태로운데도 목사가 여기에 대해 일언반구 아무런 설교도 안 한다며 교회를 나가셨다고 합니다. 이게 비단 한국에 있는 그 교회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이민교회 대부분이 이런 일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물론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설교를 통해 특정한 정당이나 이념을 지지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제가 정치적 소신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목사 이전에 시민으로서 저에게도 사상의 자유가 있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제 양심을 따라 진보적이며 평등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목사가 설교를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교인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는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정치 이념에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교회 안에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로 교인들을 나누는 일들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왜 신앙보다 정치가 교회 공동체를 더 크게 갈라놓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왜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내가 지지하는 진영의 승리를 더 갈망하게 된 것일까요? 과연 어디까지가 정당한 정치 참여이고, 어디부터가 정치 우상숭배일까요?

 

완벽한 함정 질문-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의 말씀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담고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제거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완벽한 함정을 준비합니다. 마태복음 22:15-16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연합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충격적인 일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로마 제국에 저항하는 민족주의자들이었고, 헤롯 당원들은 로마에 기생하는 친로마파였기 때문입니다. 적의 적은 동지라고 물과 기름 같은 이들이 예수를 넘어뜨리기 위해 손을 잡은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던진 질문입니다. 마태복음 22: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이들의 질문은 그야말로 완벽한 함정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예라고 대답하면? 바리새인들이 달려들 것입니다. 로마 황제를 섬기는 배신자, 민족의 적이라고 비난할 것입니다. 아니라고 대답하면? 헤롯 당원들이 당장 예수님을 로마 제국의 반역자로 당장 고발할 것입니다.


어떻게 대답하든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는 질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교회를 향해, 혹은 저 같은 목회자에게 던지는 질문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목사님, 그래서 어느 편이십니까? 진보입니까? 보수입니까? 민주당입니까? 아니면 공화당입니까?”

 

하나님은 어떤 진영 안에 가두어지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저들의 속셈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저들에게 세금 낼 돈을 보여달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22:18-19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당시 로마의 데나리온에는 황제 티베리우스의 얼굴과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신의 아들 티베리우스 가이사한 마디로 로마 황제가 신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단순한 화폐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우상의 형상이었습니다. 그들이 로마 제국의 동전을 보여주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묻습니다. 마태복음 22:20-21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예수님의 말씀은 정치와 신앙의 영역을 완전히 분리하라는 이분법적 명령이 아닙니다. 정치가 우리 삶과 아무 상관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세상 정치가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모든 시도를 엄중히 막아 세우는 선언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가이사의 동전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우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동전은 가이사에게 주지만 너희의 마음과 충성만은 가이사에게 주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치적 이념에 매몰되어 형제자매를 미워하고 증오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고귀한 우리 자신을 고작 가이사의 동전이라는 좁은 틀 속에 가두어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 정당의 도구가 되기 전에, 우리가 누구의 형상을 입은 하나님의 소유인지를 먼저 기억하라고 요청하고 계십니다.


로마 제국의 동전에는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존재에는 누구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까? 창세기 1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성경은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동전을 가이사에게 돌려주듯,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물론 현실 정치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나의 구원자로 여기거나,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이 당선되면 당장이라도 나라가 망할 것처럼 절망한다면, 이것은 우리 영혼을 가이사에게 넘기는 일입니다. 정치는 우리가 숭배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책임 있게 사용해야 할 소중한 도구입니다. 따라서 정치를 구원자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세상을 돌보는 소중한 사명으로 정직하게 참여하십시오.

 

하늘의 시민권


빌립보는 로마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문화가 가장 강했던 로마 식민도시였습니다. 그 한복판에서 바울이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빌립보서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이것은 단순한 신앙고백이 아니라, 당시로서는 목숨을 건 정치적 도전이었습니다.


바울이 선포한 하늘 시민권은 우리를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높이 올라가면 땅 위에 그어진 복잡한 경계선들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정치라는 좁은 울타리에 갇혀있을 때는 원수처럼 보이던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나와 똑같이 은혜가 필요한 연약한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하늘 시민이 누리는 여유이자 사랑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많은 교회가 정치라는 거센 파도 앞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가장 큰 유혹은 교회가 특정 정치적 색채에 매몰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강단에서 특정 진영의 논리를 대변하고, 교인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쪽만이 절대적인 정의라고 믿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진보든 보수든 양쪽 모두가 빠져 있는 똑같은 함정이 있습니다. 자기만 옳고 남들은 틀렸다는 자기 의(Self-righteousness)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엄중하게 경계하신 죄가 바로 자기 의에 빠지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묻는 질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상의 정치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어느 당이냐? 어느 진영이냐? 세속의 이념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진보냐 보수냐? 너는 좌파냐 우파냐?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누구를 사랑하느냐? 너는 약자의 편에 서고 있느냐? 너는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품기 위해 기도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물론 진보가 강조하는 정의와 평등도, 보수가 소중히 여기는 생명과 전통도, 각각 복음과 맞닿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세상의 이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체를 다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교회는 양쪽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제3의 중립 진영이나, 양쪽을 적당히 섞어 놓은 회색지대가 아닙니다. 세상의 눈에는 중립으로 보일지 모르나, 사실 교회는 복음이라는 기준으로 세상의 모든 이념을 살피는 예언자적 공동체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경제적 불의를 정면으로 고발했습니다. 미가는 가난한 자의 땅을 빼앗는 권력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결코 정치적으로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웨슬리는 노예무역이 합법이던 시대에, 노예제라는 명백한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웨슬리가 윌버포스에게 보낸 1791224일 편지에서 그는 노예제를 가리켜 인류 역사상 하늘과 땅 아래 존재했던 가장 추악한 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언자들은 어느 당을 지지하라고 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권력이 정의를 짓밟을 때 하나님이 심판하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 말씀이 결과적으로 특정 권력자를 향한 직접적인 도전이 되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은 살아 있어야 합니다. 불의가 명백할 때, 약자가 짓밟힐 때, 거짓이 진실로 둔갑할 때, 교회는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그 선포는 특정 진영의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언제나 내 편을 먼저 불편하게 만들 것입니다. 자기 진영의 불의에는 눈을 감고 상대편만 비판하는 것은 예언이 아니라 정치 선전입니다.


우리가 진보의 자리에 있든 보수의 자리에 있든, 그리스도인은 내가 지지하는 진영의 목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먼저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내 편이 잘못했을 때 누구보다 먼저 회개를 외치고, 상대편이 하나님의 공의를 행할 때 기꺼이 박수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바로 교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전혀 다른 차원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그어 놓은 선을 허무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구체적 실천들


그렇다면 정치 이념으로 날카롭게 갈라진 선 위에서 구체적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나와 다른 정치 성향의 글도 의도적으로 읽어 보십시오. 그 불편함은 내 생각의 한계가 깨어지는 성장의 통증입니다. SNS나 카톡에서 정치 글을 공유하기 전에 한 번만 더 물어보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말인지, 아니면 특정 진영의 주장인지. 누군가를 조롱하는 내용이라면 공유 버튼을 누르지 마십시오. 그리고 나와 다른 정치 성향의 교우를 만날 때, 그 사람의 정치적 정체성보다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임을 먼저 기억하십시오.

 

십자가는 위를 가리킨다.


말씀을 마칩니다. 진보냐 보수냐? 좌파냐 우파냐? 정치 이념의 선은 이 땅의 모든 나라와 시대를 갈라왔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 모든 선보다 앞서 있습니다. 십자가는 단순히 좌우를 잇는 다리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와 교만과 적대감이 죽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어느 진영에 속해 있든,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의지하여 나와 다른 편도 형제자매로 품을 줄 알아야 합니다.


정치는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치 참여는 시민의 마땅한 책임입니다. 그러나 정치가 복음을 삼키도록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되, 우리 자신은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 어떤 대통령이나 정당도 우리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 삶의 끝에서 '너는 내 형상을 입은 자답게 살았느냐'라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질문만이 남을 것입니다.

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 시민권이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줍니다. 어느 편에 서든 복음의 기준으로 살게 하시고, 형제를 형제로 볼 수 있는 자유를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정치의 벽을 넘어 서로를 형제로 품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든 사람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우리 안에 있는 정치적 우상을 보게 하옵소서. 내가 지지하는 것이 곧 정의라고 믿으며 하나님마저 내 편으로 만들려 했던 우리의 교만을 용서하옵소서. 가이사의 동전에 마음을 뺏기지 않게 하시고 내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신앙이, 우리 교회가 정치와 이념으로 갈라지기보다 복음으로 하나되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내가 속한 진영의 죄를 먼저 회개하게 하시고 다른 진영에 속한 형제자매를 미움이 아닌 긍휼로 바라보게 하옵소서. 이념의 선을 넘어 십자가의 사랑으로 하나 되기를 바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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