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선을 허무시는 예수님9-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출애굽기 3:6, 말라기 4:6

 

1. 들어가는 말세대의 장벽, 가장 아픈 선

우리는 선을 허무시는 예수님이라는 주제로, 우리를 갈라놓는 차별과 배제와 미움의 선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국적과 민족, 인종, 성별, 이념의 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선을 허무시는 예수님 시리즈 9번째 시간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마음을 가장 힘들고 아프게 하는 선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와 자녀 사이에 세워진 세대(Generation)의 차이라는 선입니다. 오늘도 전하는 말씀 가운데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리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의 지평이 넓어져서 더 많은 사람을 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시길 축복합니다.


부모와 자녀 세대가 서로 사랑은 하는데, 잘 모르는 사람처럼 느끼는 관계, 필요한 일 있을 때만 연락하는 관계, 신앙 이야기나 마음 깊은 속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 않는 관계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오늘날 부모와 자녀 세대에 깊게 그어진 세대의 선입니다. 특별히 이민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이 선은 때로 거대한 절벽과 같습니다.

 

2. 세대 차이와 이민의 장벽사랑이 번역되지 않을 때

세대 차이는 어느 시대, 어느 가정에나 있습니다. 비록 부모와 자녀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미 살아온 시간과 경험의 결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대 차이는 이상한 현상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취향 차이를 넘어 언어와 가치관의 장벽이 될 때입니다. 이렇게 되면 가정은 안식처가 아니라, 한 지붕 아래 있어도 각자의 섬처럼 느껴지는 집이 됩니다.


이민 가정에서는 이 장벽이 더 두껍습니다. 일반적인 세대 차이에 언어의 단절, 문화의 단절, 정체성의 단절이 겹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한국어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말합니다. 자녀는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말의 문제가 아닙니다. 언어가 다르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고, 사랑을 전달하는 문법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부모가 밥 먹었니?”라고 묻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한국 문화에서 이것은 너를 걱정하고 있다라는 사랑의 언어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자란 자녀에게 이 말은 그냥 식사 여부를 묻는 말일 뿐입니다. 언어의 차이 문화의 차이로 부모의 사랑이 자녀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합니다. 발신은 되었는데 수신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민 가정 자녀들만이 겪는 외로운 싸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은 집 안에서는 한국인으로, 집 밖에서는 미국인으로 살아야 하는 이중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자랐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마주한 세대의 장벽입니다. 부모님께는 한국적인 순종을 요구받고, 학교에서는 서구적인 독립성을 요구받는 사이에서 자녀들은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표류하곤 했습니다. 이것은 누가 나쁘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처한 이민의 현실이 남긴 깊은 자국입니다.

 

3. 부모의 상처, 자녀의 상처만나지 못하는 두 마음

대부분 이민 1세대 부모는 자신의 꿈을 접고, 경력을 포기하고, 자녀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입니다. 그 희생을 자녀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의 서러움은 정말 큽니다. 그러나 그 희생이 자녀를 향한 무기가 될 때, 사랑은 폭력이 됩니다.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희생했는데.” 이 말은 자녀에게 죄책감을 심어줍니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반드시 갚아야 하는 빚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자녀는 부모를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로 대하게 됩니다.


부모가 미처 알지 못하는 자녀의 상처도 있습니다. 자녀의 마음은 이렇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위해 희생한 건 안다. 그런데 나는 그 희생을 요청한 적이 없다. 부모님은 늘 나를 위해서라고 하셨지만, 정작 내가 원한 건 학원비가 아니라 부모님과의 진솔한 대화였다. 학교에서 힘들었을 때, 너 많이 힘들었겠다는 따뜻한 격려의 한마디였다. 그런데 부모님은 늘 바빴고, 집에 오시면 너무 피곤해하셨다.”


비극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부모의 상처와 자녀의 상처가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이렇게까지 했다는 상처를 안고 있고, 자녀는 내 마음을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는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두 상처 모두 진짜인데, 서로의 상처를 볼 수가 없습니다. 각자 자신들이 느끼는 자기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이민 2세대인 정이삭 감독은 영화 미나리를 통해 부모 세대의 희생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런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며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것은 나에게 창피함이나 거리감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부모가 되고 나서야 그분들이 보낸 시간이 사랑이라는 단어 대신 노동으로 쓰여진 편지였음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이민 가정에서 반복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민 1세 대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대신 12시간의 노동으로 자식에 대한 사랑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들은 그것을 부모의 사랑이 아닌 부모의 부재로 받아들입니다. 이 소통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에서부터 부모와 자녀의 화해가 시작됩니다.

 

4. 세대를 이어가시는 언약의 하나님-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모세가 호렙산 떨기나무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3:6 나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야곱의 하나님이라고만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세 세대의 이름을 나란히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족보만이 아닙니다. 세대를 이어가며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이 세 세대의 가정사를 자세히 보면 오늘 우리 이민 가정의 모습과 놀랍게 겹칩니다. 아브라함은 고향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에 정착한 아버지였습니다. 이민 1세 부모의 모습과 겹칩니다. 그는 용감했지만, 불완전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해 하갈을 통해 자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무엇보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한 사건 이후, 성경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함께 대화하는 장면을 거의 기록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위대한 신앙적 결단이, 아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이민 가정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부모 세대의 지나친 신앙적 열정이 자녀 세대에게는 심각한 상처가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아버지의 그늘에서 자란 아들이었습니다.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이삭은 비교적 조용한 인물입니다. 어떤 면에서 이삭은 아버지의 엄청난 기대와 유산을 짊어진 세대였습니다. 이민 가정의 자녀들이 부모의 희생이라는 무거운 유산을 짊어지고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삭을 아브라함의 부록쯤으로 취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삭에게도 자신만의 고유한 신앙, 고유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은 이름부터 속이는 자라는 뜻입니다.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러자 자신도 외삼촌 라반에게 속았습니다. 야곱은 순종적이지도, 모범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거칠고 집요한 이삭의 아들 야곱도 품으셨습니다.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밤새 씨름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내어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습니다. 하지만 야곱의 자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거짓과 갈등이 대물림되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이 가정은 결코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가정은 아니었습니다. 상처를 주고받으며 갈등이 대물림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불완전하고 문제 많았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세 세대를 당신의 이름에 함께 넣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가정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상처 속에서도 세대를 이어가시는 분이심을 선언하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5. 탕자 비유성인 자녀와 부모의 이야기로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탕자의 비유입니다. 성인이 된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독립을 선언하고 자신이 받을 유산을 챙겨서 집을 나갑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의 선택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을 강제로 붙잡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비록 둘째 아들이 자신의 유산을 챙겨 집을 나갔지만, 아버지는 문을 닫고 아들과의 관계를 끊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했습니까? 문을 열어놓고 날마다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아들이 떠나 있는 동안, 아버지의 마음은 늘 내 아들이 어디서 어떻게 지낼까? 살아는 있을까? 돌아오면 뭐라고 말해 줘야 할까?”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이 집안을 옆에서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둘째 아들은 저 집안의 망신이야. 저 아버지는 자식 농사에 실패한 아버지야.” 아마도 이런 말로 이 집안에 대해 쑥덕거리며 비아냥거렸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부모가 자녀의 성공에 목을 매는 이유는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고 남들에게 체면 깎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클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크게 실패하고 돌아오자 수치와 체면을 내려놓고 가장 먼저 달려가 아들을 반깁니다. 작은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이제부터는 아버지 말대로 살아라.”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그저 아들을 반기고 맞이하는 아버지로 서 있습니다. 이것은 성인 자녀를 둔 부모 세대가 성경에서 배워야 하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부모는 누구나 마음속에 내가 바라는 자녀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 이런 신앙생활을 하면 좋겠다. 이런 배우자를 만나면 좋겠다. 그러나 성인이 된 자녀는 부모가 꿈꾸던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만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 독립된 존재입니다. 여기서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갈등과 충돌이 일어납니다.


내 자녀가 아이였을 때는 부모가 방향을 정해주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자녀에게는 부모는 인생의 방향을 가르쳐주는 나침반이 되기보다 함께 걸어주는 부모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보다 넌 지금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묻는 부모, “그건 틀렸어라고 지적하고 책망하기보다 함께 고민하고 기도해 보자고 말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상상했던 아들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이 빚어 가시는 아들의 모습을 보게 해 주세요.” “제가 기대하던 딸의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딸의 인생을 믿고 맡기게 해 주세요.” 이 기도가 가능할 때, 비로소 자녀를 나의 소유나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 독립된 존재로 볼 수 있게 됩니다.

 

6. 누가 먼저 돌이켜야 하는가?

구약성경의 마지막 절인 말라기 46절은 우리에게 놀라운 회복의 청사진을 제시합니다. 4: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성경은 자녀의 마음이 먼저 돌아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먼저 자녀를 향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부모가 먼저 마음을 돌이키는 것, 이것이 성경의 순서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먼저 마음을 돌이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정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왜 부모가 먼저입니까? 부모가 더 잘못해서가 아닙니다. 관계의 구조 때문입니다. 관계에서 힘을 더 가진 쪽이 먼저 마음을 여는 것, 이것이 은혜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먼저 돌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먼저 자녀의 세계를 궁금해하고, 그들의 언어와 아픔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자녀의 마음도 부모를 향해 열리기 시작합니다.


한국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던 고() 이어령 박사, 그는 수많은 지식과 언어로 시대를 주도했지만, 정작 예수를 믿으라는 딸 이민아 목사의 간곡한 권면 앞에서는 자신의 지식과 철학으로 딸의 전도를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파도가 딸에게 몰아쳤을 때, 아버지는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진리를 목격하게 됩니다. 그것은 무참한 고통 속에서도 원망 대신 감사와 평안으로 자신의 신앙을 꿋꿋이 지켜내는 딸의 모습이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지식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 초월적인 평안 앞에서, 아버지는 비로소 자신의 이성이 교만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딸의 고통 앞에서 그토록 자랑하던 지식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 그는, 결국 지성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딸을 향해 자신의 영적 무지와 교만을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과는 끊어졌던 부녀의 마음을 잇는 사랑의 다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딸의 신앙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영적 회심의 문이 되었습니다.

 

7. 말씀을 마치며

하나님은 아브라함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삭만의, 야곱만의 하나님도 아닙니다. 세 세대를 관통하는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 세대의 가정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이삭은 자녀를 편애했습니다. 야곱의 가정에서는 형제들이 서로 죽이려 했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모범 가정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이민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가정은 하나도 없습니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부모와 자녀도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가정을 요구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불완전한 우리가 서로에게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의 담을 허무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우리 가정의 세대 갈등은 단순히 성격 차이나 언어 장벽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자기중심성이라는 죄의 결과입니다.


자녀에게 이건 이래야 한다.”라고 가르치기 전에, 5분만 자녀의 일상을 묻고 가만히 들어보십시오. 자녀의 서툰 한국어나 영어 속에 담긴 그들의 고단함을 먼저 안아주십시오. 자녀에게 상처를 준 말이 기억난다면, 부모의 권위를 잠시 내려놓고 미안하다, 그때는 아빠도(엄마도) 너무 힘들어서 네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했구나라고 먼저 손을 내밀어 보십시오.


정직한 부모의 사과 한마디가 백 마디의 훈계보다 자녀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인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의 서툰 사랑 뒤에 숨은 눈물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가정을 둘로 나누고 있는 세대의 선은 점점 더 희미해질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정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맡기십니다. 믿음의 유산을 지켜내십시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정의 세대와 세대를 잇는 사랑의 띠가 되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세대를 이어가시는 언약의 하나님, 오늘 우리 가정을 갈라놓은 세대의 장벽을 허물어 주옵소서. 부모에게는 먼저 마음을 돌이키는 용기를 주시고, 자녀에게는 부모의 서툰 사랑을 이해하는 넓은 마음을 주옵소서. 우리가 서로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는 대신, 불완전한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하옵소서. 아브라함의 가정도, 이삭의 가정도, 야곱의 가정도 완벽하지 않았지만, 주님은 그 가정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불완전한 가정도 주님의 손안에 있음을 믿습니다. 세대의 장벽을 허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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