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금요일-몸은 경계를 넘었지만, 마음은 아직
요한복음 4:27
요 4: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1. 한 주간의 일상을 마무리하는 금요일 아침입니다. 우리 마음의 숨은 경계를 비추시는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우리 안에 그어진 편견과 차별을 극복해 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어제 묵상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메시아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신 놀라운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3. 바로 그때 음식을 사러 동네에 갔던 제자들이 돌아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말씀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고 놀랍니다.
4. 요 4:27a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5. 요한복음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여성과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기록합니다. 더욱이 그 여인은 유대인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6. 게다가 당시 유대 종교 문화에서 공적인 장소에서 남성이 낯선 여성과 길게 대화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었습니다.
7. 이처럼 제자들의 놀람에는 자신들이 익숙하게 배워 온 성별과 민족의 경계가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8.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사마리아 땅을 걸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몸이 경계를 넘었다고 마음의 경계까지 곧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9. 예수님의 길을 따라 걷는 것과 예수님의 시선으로 사람을 보는 것 사이에는 긴 배움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10.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제자들이 입 밖에 내지 않은 두 질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1. 요 4:27b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12. 요한복음은 제자들이 왜 이 질문을 하지 않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존중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뜻밖의 장면에 당황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13. 그러므로 그들의 침묵 자체를 지혜라고 칭찬하거나 차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14. 그러나 요한복음이 제자들이 하지 않은 두 질문을 기록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행동을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음을 보여 줍니다. 몸은 사마리아에 와 있었지만, 마음속 경계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15. 사회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편견의 본질』에서 편견을 잘못되고 굳어진 일반화에 기초한 적대감으로 설명했습니다. 편견은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기 전에도 마음속 판단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16. 그러나 이런 적대감이 언제나 노골적인 미움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익숙하게 여긴 질서를 정상으로 여기고, 그 질서에서 벗어난 사람과 행동을 이상하게 보는 데서도 나타납니다.
17. 우리는 노골적인 차별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편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바라보는 표정, 누가 말할 때 귀 기울이는지, 누구에게 책임을 맡기는지를 통해서도 편견이 드러납니다.
18. 친절하게 인사하면서도 중요한 결정은 자신과 가깝거나 비슷한 사람끼리 내릴 수 있습니다. 그 사람도 환영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강단과 회의, 재정과 리더십의 자리는 열어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19. 편견은 한 사람의 얼굴과 이야기를 보기 전에 그가 속한 범주를 먼저 보게 합니다. ‘여성’, ‘노인’, ‘청년’, ‘이민자’, ‘저런 정치 성향의 사람’이라는 표지가 이름보다 먼저 보입니다.
20.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여자와’ 말씀하신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성별과 민족의 범주로만 보지 않으시고, 한 사람의 인격과 질문을 지닌 대화의 상대로 대하셨습니다.
21. 제자의 성숙은 처음부터 편견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예수님 곁에서 자기 안의 낯선 물음표를 발견하고, 그 시선이 변화되도록 계속 배우는 과정입니다.
22. 우리는 자신 안에 있는 편견을 발견할 때 수치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은혜는 그것을 보게 하여 더 자유롭고 정의로운 관계로 이끕니다.
23. 예수님은 편견 없는 사람만 제자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의 시선이 완전히 바뀔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먼저 경계를 넘어 여인과 대화하셨습니다.
24. 그리고 아직 성숙하지 못한 제자들이 그 모습을 곁에서 보며 편견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선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25.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국 그 사람에게 어떤 자리를 허락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누군가를 부족한 사람으로 바라보면 그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책임과 결정권에서도 배제하게 됩니다.
26. 그러므로 “나도 편견이 있다”라는 고백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누구의 목소리가 배제되었는지 살피고, 발언할 기회와 책임질 자리, 그리고 결정에 참여할 권한을 실제로 나누어야 합니다.
27. 오늘 사람을 만나며 마음에 떠오르지만 말하지 않은 질문을 살펴보십시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하지?”, “저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어?”라는 판단이 있는지 정직하게 바라보십시오.
28. 그 질문을 곧바로 상대에게 던지기 전에, 그것이 상대를 이해하려는 질문인지 아니면 내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하려는 질문인지 먼저 살펴보십시오.
29. 정말 이해가 필요하다면 상대가 답하지 않을 자유를 존중하며 “제가 놓치고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까?”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십시오.
30. 편견은 혐오만이 아니라 반복되는 작은 배제에서도 작동합니다. 이름을 자꾸 틀리게 부르거나, 나이나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동역자가 아니라 도움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행동이 상처를 줍니다.
31. 그리고 이런 행동을 지적받으면, 그런 뜻이 아니었다며 해명하기보다, 상처를 주어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배우고 바꾸겠다고 응답하는 것이 진정한 배움의 시작입니다.
32. 편견을 회개하는 일은 내 말과 시선을 바꾸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부당한 차별을 받을 때 그의 곁에 서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33. 가해자와의 관계가 불편해질까 침묵한다면, 그 침묵은 결국 기존 질서를 돕게 됩니다.
34. 예수님의 낯선 행동과 모습을 발견할 때 우리의 놀람에서만 멈추지 말고 편견을 극복하는 배움의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35. 말하지 않은 편견까지 성령께 내어 드리고, 주님께서 존중하시는 사람을 우리도 동등한 이웃과 동역자로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우리 마음을 비추시는 하나님 아버지, 차별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 안에 숨겨진 편견을 보지 못했던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람을 범주보다 얼굴과 이름으로 바라보게 하시며, 교회 안에서 말할 자리와 결정에 참여할 권한을 공평하게 나누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낯선 사랑 앞에서 계속 배우며 모든 사람을 동등한 동역자로 맞이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