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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 수요일-남의 말에서 우리의 고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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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 수요일-남의 말에서 우리의 고백으로

요한복음 4:42
요 4: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1. 오늘도 요한복음 묵상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의 귀와 마음으로 듣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된 하루를 살아 내시길 바랍니다.

2. 어제 묵상에서 우리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 머물러 달라고 간청했고, 예수님이 그들의 환대를 받아들여 이틀 동안 함께 계시며 말씀을 나누신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3.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시작된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이 ‘세상의 구주’라는 공동체의 고백으로 확장되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4. 요 4: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5. 처음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여인의 담대한 증언은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6.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그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심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여인의 증언이 틀렸거나 불필요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7. 여인의 말로 시작된 믿음이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며 사마리아 공동체의 고백으로 깊어진 것입니다.

8. 건강한 증언의 아름다움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을 자신에게 묶어 두지 않고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듣게 합니다.

9. 우리의 믿음도 대부분 다른 사람의 말에서 시작됩니다. 부모의 기도, 교사의 가르침, 목회자의 설교와 친구의 간증이 예수님께 가는 길을 열어 줍니다.

10. 그 모든 증언은 귀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다른 사람의 확신을 빌려 쓰는 데 머물 수 없습니다.

11. 결국 자신이 말씀 앞에 앉아 질문하고, 기도하며, 실패와 선택의 순간에 예수님을 신뢰하는 관계로 깊어져야 합니다.

12. 부모는 자녀에게 신앙의 이야기와 길을 전해 줄 수 있지만, 자녀 대신 예수님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믿어야 한다”라는 명령만으로는 살아 있는 고백을 만들 수 없습니다.

13. 다음 세대가 질문하고 스스로 말씀을 읽으며, 부모와 다른 언어로 기도하고 예배할 공간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14. 질문을 부모의 신앙에 대한 거부나 불신앙으로 단정하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남의 말에서 자신의 고백으로 가는 길에는 의심과 탐색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15. 교회도 교인의 믿음을 목회자에게 의존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설교는 마지막 답을 대신하는 권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도록 돕는 길잡이여야 합니다.

16. 성경 공부와 기도, 성찬과 공동체의 대화는 각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고 책임 있게 응답하도록 돕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17.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친히 들은 믿음은 ‘나의 구주’라는 개인적인 고백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18. 사마리아 사람들이 직접 듣고 알게 된 예수님은 한 민족이나 집단의 구주가 아니라 ‘세상의 구주’였습니다.

19. 당시 ‘세상의 구주’라는 말은 로마 황제들에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제국의 통치자가 아니라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하는 구주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20. 이것은 현실 정치권력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어느 국가와 지도자도 구원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21. 다른 사람의 증언을 통해 시작된 믿음은 내가 직접 예수님을 만나 고백하는 믿음으로 깊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고백이 고립된 개인의 확신에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22. 사마리아 사람들의 고백은 여인의 증언과 공동체의 환대,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믿음은 개인적이지만 결코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23. 예수님은 유대인의 구주만도, 사마리아인의 구주만도 아닙니다. 특정 민족과 교단, 정치 진영의 소유가 될 수 없는 세상의 구주입니다.

24. 세상의 구주를 믿는 교회는 세상을 정죄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사람들과 세상으로 바라봅니다.

25.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님은 구원의 이름으로 다른 문화와 사람을 강제로 지배하지 않으셨습니다.

26. 예수님은 우물가에 앉아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요청하고 여인의 질문을 들으셨습니다. 또한 사마리아인들의 초대와 환대를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머무셨습니다.

27. ‘세상의 구주’라는 고백은 우리의 시야를 넓힙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세상에는 우리와 다른 종교와 문화,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이웃도 살아갑니다.

28. 우리는 그들을 정복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존귀한 이웃으로 만나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강요와 지배를 거부해야 합니다.

29. 이 고백은 오늘의 권력 질서에도 질문을 던집니다. 경제 성장과 군사력, 민족주의와 정치 지도자가 궁극적인 안전을 약속할 때 교회는 구주가 누구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30. 세상의 구주를 따르는 사람은 권력의 거짓을 비판하면서도 그 비판을 새로운 혐오로 만들지 않습니다. 우물가의 대화와 십자가의 사랑, 부활의 소망으로 편견과 배제, 차별과 혐오를 넘어섭니다.

31. 예수님은 사람들이 그어 놓은 경계를 넘어 사마리아 땅을 지나 야곱의 우물가에 앉으셨습니다.

32.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마을 사람들에게로 돌아갔고,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아왔으며, 경계 밖에서 시작된 대화는 세상의 구주를 고백하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33. 이제 우리도 그 물결 안에 서 있습니다. 남의 말로 시작된 믿음이 우리의 고백이 되고, 우리의 고백이 다시 세상 속 또 다른 한 사람을 예수님께 초대하는 생명의 물결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세상의 구주를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 다른 사람의 믿음을 빌려 말하면서 예수님의 음성을 친히 듣지 않았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말씀과 기도와 성찬 안에서 주님을 직접 만나 자신의 고백으로 응답하게 하시며, 다음 세대가 질문하고 주님을 만날 공간을 넉넉히 열어 주게 하옵소서.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복음이 우리를 통해 세상을 살리는 사랑과 정의의 물결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