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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야 할 길8-잃을 수 있는데도, 사랑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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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야 할 길8-잃을 수 있는데도, 사랑할 수 있습니까?

룻기 1:11-18
룻1:11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룻1:12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룻1:13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룻1: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룻1: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룻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1: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함께 가야 할 길 시리즈 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잃을 수 있는데도, 사랑할 수 있습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깨달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 깨달음이 우리의 삶을 바꾸는 도전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지난 두 주 동안 우리는 사랑에 대한 오해를 살펴보았습니다. 좋아하는 감정이 생겨야만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좋아하는 감정이 없이도 우리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한 사람에게 내 행복의 모든 책임을 맡겨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서로를 돌보며 함께 자라가는 사랑을 배워 갑니다.

그런데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도 사랑하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려면 익숙한 내 방식을 바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게 되면, 그 사람 때문에 아플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스캇 펙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사랑에는 노력과 함께 용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두려움에 맞서서 사랑을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두려움을 안고서도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자리로 걸어 들어가는 모험입니다. 사랑에도, 영적 성장에도 이 용기가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사랑을 주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입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다가도 예전에 겪었던 아픔이 떠오르면 연락하려던 손을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적당히 알고 지내는 편이 훨씬 안전해 보입니다.

우리는 잃고 싶지 않아서 사랑하는 사람을 꽉 붙잡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서 처음부터 가까워지지 않기도 합니다. 두 행동은 달라 보이지만 그 밑에는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다시 아파지는 일을 막고 싶은 것입니다.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가정에서도 이런 모습을 자주 봅니다. 미국 문화 속에서 자라는 자녀와 말과 생각이 통하지 않을 때, 부모는 자녀를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자녀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하며 내 방식대로 꽉 붙잡으려 합니다. 아니면 정반대로 어차피 말해도 소용없다며 아예 입을 닫고 거리를 두기도 합니다. 상반된 두 행동 모두에는 자녀와 멀어지지 않으려는 두려움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두렵다고 해서 오늘 나눌 사랑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두려움이 남아 있어도 누군가에게 곁을 내어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잃을 수 있는데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입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룻기의 말씀은 상실을 겪은 두 여인이 함께 걸어가는 길에서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룻기는 흉년을 피해 이방 땅 모압으로 이주한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나오미는 모압 땅에서 남편을 잃었고, 두 아들까지 차례로 잃었습니다. 그러던 중 고향 베들레헴에 흉년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이방 땅에서 얻은 두 며느리에게는 친정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찾으라고 거듭 권합니다. 자신을 따라와도 그들의 앞날을 보장해 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가 베푼 사랑을 기억하며, 그들의 앞날을 축복합니다. 그러자 두 며느리 가운데 하나였던 오르바는 눈물로 작별하고 돌아갑니다. 물론 그녀가 친정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지금까지 나오미와 나누었던 사랑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룻기는 오르바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또 한 며느리 룻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가기로 선택합니다.

“룻기 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의 고백을 읽을 때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룻도 남편을 잃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아픔을 이미 겪은 사람입니다. 그런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고향 모압을 떠나 유다 땅으로 향합니다. 룻에게 유다 땅은 낯선 곳이었습니다. 모압 출신의 이방 여인으로서 어떻게 먹고살지, 어떤 대우를 받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너무나 잘 알기에 시어머니 나오미는 룻에게 돌아가라고 권한 것입니다. 하지만 룻은 끝내 시어머니를 따라나서기로 선택합니다. 자신도 남편을 잃은 룻이, 상실의 아픔을 안고 사는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룻의 고백을 들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룻기 1: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나오미는 더 이상 룻에게 돌아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슬픔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을 안고, 함께 살아갈 길을 시작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미 겪은 이별과 배신이 있습니다.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 줄 용기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상실의 아픔 속에서도 서로의 곁을 지킨 룻과 나오미의 걸음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훗날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었고, 그 계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가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진짜 용기의 원천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배신하고 흩어질 줄 아시면서도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지만, 며칠 뒤에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외침을 들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향한 사랑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사람의 거절과 죽음도 하나님의 사랑을 끝내지 못함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오늘 우리에게도 먼저 주어진 사랑입니다. 주님은 상처 때문에 마음을 닫은 우리 곁에도 찾아오십니다.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두려워하는 우리를 먼저 품어 주십니다. 그래서 요한일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군가에게 다시 마음을 내어 주었다가 아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우리를 붙드시는 주님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사랑할 용기는 우리의 굳센 의지나 결심만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믿고 그 사랑을 의지할 때, 우리는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여전히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힘을 얻듯, 우리도 다시 사랑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상처 입은 이에게 섣불리 마음을 열라고 재촉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 아프다고 말해도 외면당하지 않고, 당장 밝게 웃지 못해도 곁에 있을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합니다.

오랜 이민 생활에서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분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분도 있습니다. 거듭된 실패로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된 분도 있습니다. 그 거리는 다시 무너지지 않으려고 자신을 지켜 온 방식일 수 있습니다. 왜 아직도 마음을 열지 못하느냐고 재촉하지 맙시다.

교회는 늘 씩씩한 간증만 요구하는 자리가 아니라, 아직 힘들다고 말해도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사랑의 위험을 감수한다는 이유로 폭력이나 착취를 견디라고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존엄과 안전을 지키는 일도 매우 중요한 사랑에 속합니다.

신분 문제로 부모님의 장례식에 참석조차 못 한 교우들이 있습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떠나보내고도,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지 못한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품고 살아가는 아픔을 제가 다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이런 분들에게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고인을 함께 기억하며 기도하고, 시간이 지난 뒤에도 안부를 이어 갑시다.

기독교 철학자 니콜라스 월터스토프는 등산 사고로 스물다섯 살 된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는 아들을 떠나보낸 슬픔을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라는 책에 담았습니다. 그는 책에서 눈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합니다.

그의 고백은 오늘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아픔이 남아 있는 우리도 다른 사람의 아픔에 눈을 열 수 있지 않습니까? 남편을 잃었던 룻이 자기 눈물을 통해 나오미의 아픔을 보았듯이, 우리도 내 아픔이 남아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의 곁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다시 사랑할 용기는 상처를 안고도 서로에게 곁을 내어 주는 가운데 자라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곁을 내어 준 사람이 언제까지 함께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특별히 이민교회에서는 정이 들 만하면 다른 곳으로 떠나는 분들도 있습니다. 몇 번의 빈자리를 겪고 나면 어차피 떠날 사람에게 깊이 마음 쓰지 말자고 계산하게 됩니다. 새로 온 교우를 보며 얼마나 오래 다닐 사람인지 살피게 됩니다.

그러나 언젠가 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오늘 나누는 식탁과 안부를 헛되게 만들지 않습니다. 누군가 떠난 뒤에도 함께 울고 웃은 시간은 그 사람이 다음 광야를 건널 힘이 됩니다. 그리고 사랑을 내어 준 우리 안에는 또 다른 나그네를 맞이할 더 넓은 마음의 방이 남습니다.

이번 한 주간, 내가 거리를 두었던 한 사람을 떠올려 봅시다. 다시 아플까 봐, 혹은 곧 떠날 것 같아 다가가기를 주저했던 사람을 떠올려 봅시다. 그 사람에게 아직 상처와 슬픔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당장 반갑게 반응하지 않아도 재촉하지 맙시다. 계산을 내려놓고 먼저 안부를 묻고 식탁의 자리를 내어 줍시다. 이야기를 들어 주며 사랑의 작은 모험을 시작해 봅시다.

말씀을 마칩니다. 룻과 나오미는 슬픔이 모두 사라진 뒤에 함께 길을 나선 것이 아닙니다. 아픔이 남아 있는 채로 함께 살아갈 길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동행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어 가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상처와 배신, 그리고 상실로 인한 두려움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먼저 찾아오신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한 걸음 내디딜 수 있습니다. 우리도 작은 용기를 내어 서로에게 곁을 내어 주는 사랑으로 서로의 삶을 살려내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상처 입은 우리 곁에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 아버지, 거절당하고 배신당하실 줄 아시면서도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다시 잃고 다칠까 두려워합니다. 그 마음을 주님 앞에 내어놓습니다. 오래 머물 사람과 떠나갈 사람을 계산하며 외로운 이웃을 지나쳤던 우리의 좁은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상실의 아픔으로 마음이 얼어붙은 교우들을 주님의 품으로 안아 주옵소서. 서둘러 괜찮아지라고 다그치지 않고 말없이 곁을 지켜 주는 성숙한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고된 일상 가운데 시간을 구별하여 예배의 자리로 나아온 성도들에게 새로운 한 주를 살아갈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이 시간 우리의 땀과 눈물이 담긴 삶의 열매를 예물로 구별하여 드립니다. 우리가 드린 예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는 일에 아름답고 소중하게 쓰이게 하옵소서. 그리고 삶의 무거운 짐과 육신의 연약함으로 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교우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임하게 하옵소서. 우리보다 먼저 사랑의 길을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