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야 할 길9-사랑하면서도 다른 길을 갈 수 있습니까?
누가복음 10:38-42
눅10: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눅10: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눅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눅10: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눅10: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함께 가야 할 길 시리즈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사랑하면서도 다른 길을 갈 수 있습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깨달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주에는 사랑하며 살기 위해 상실의 위험을 무릅쓰는 모험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숱한 상실이나 거절의 아픔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사랑의 모험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힘입어 우리는 또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곁을 내어 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다르게 살아가는 독립이라는 사랑의 모험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쉽게 꺼내지 못합니다. 부모님이 실망하실 것 같습니다. 배우자가 서운해할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도 다른 생각이 있지만, 조용히 넘어갑니다.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기 때문입니다.
반대편의 마음도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위해 많은 것을 내어 주었습니다. 시간을 쓰고, 수고를 감당했습니다. 때로는 내 꿈도 미루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 생각과 다른 길을 가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서운한 마음에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생각이나 말이 나옵니다.
스캇 펙은 자신의 저서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사랑의 모험 가운데 독립의 위험을 언급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대와 다르게 선택하면 그 사람의 인정을 잃을까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내 삶의 모든 결정을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며 살 수는 없습니다.
스캇 펙에게 독립적인 삶을 사는 것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랑과 연결됩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랑은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자기 삶을 끝없이 미루지 않는 것입니다.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스스로 자기 삶을 선택하고 감당할 수 있는 존재로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주장하는 사랑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누가복음 말씀에는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한 마르다와 마리아가 등장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 일행을 집으로 영접했고, 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0: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당시 사회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 속에 있었습니다. 여성에게는 집안일과 돌봄의 역할이 주로 요구되었습니다. 스승의 발치에 앉는 것은 남자인 제자들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마리아의 모습은 대단히 파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마리아는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전통적인 역할 대신, 주님 앞에서 말씀을 듣는 제자의 자리를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일행을 초대한 언니 마르다는 손님을 잘 대접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마르다는 동생 마리아도 자신이 준비하는 일을 함께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마음이 분주해진 마르다는 예수님 발치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 동생을 보고는 주님께 다음과 같이 부탁합니다.
누가복음 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예수님에게 동생이 자기를 돕도록 부탁하는 마르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마르다는 동생의 도움이 절실했습니다. 혼자 일하는 것은 힘듭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은 앉아 있는데 나만 바쁘게 움직이면 서운할 수 있습니다. 지친 사람이 도움을 청하는 일은 잘못이 아닙니다.
하지만 마르다의 요청은 단순히 도움을 청하는 것을 넘어섰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 동생이 자기를 돕도록 명해 달라고 했습니다. 마르다의 요청대로라면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 듣는 자리를 떠나 부엌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누가복음 10:41-42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동생 마리아를 일으켜 세우려는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손님을 맞이하여 마르다 혼자서 준비해야 하는 이 집의 상황을 생각하면, 음식 한 가지만 내어도 충분하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대접을 간단히 하면 마르다의 짐이 가벼워집니다. 마리아도 주님의 발치에 앉아 계속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왜 내 방식대로만 하려 합니까? 내가 해 온 방식만이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서로의 다른 선택을 존중하려면 함께하는 일의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마르다에게는 예수님을 잘 대접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마리아에게 가장 좋은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입니다. 마리아는 가장 좋은 것을 위해 사람들의 시선과 기대를 뒤로하고 주님의 말씀을 먼저 듣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르다와 같은 봉사와 헌신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웃을 돌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주님을 위해 일한다면서 정작 그분의 말씀을 놓칠 수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일하면서 가족의 이야기를 듣지 못합니다. 교회를 위해 봉사하면서 교우들의 사정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리아의 좋은 선택을 지켜 주시면서 마르다도 돌보십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이름을 두 번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녀의 염려를 짚어 주시면서 그녀에게도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그 말씀에는 남을 통제하려는 요구를 바로잡으시는 책망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다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에는 책망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분주함에 사로잡힌 마르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돌봄도 있습니다. 마르다는 주님께 무엇을 드려야 하는 사람인 동시에, 동생 마리아처럼 주님께 은혜와 사랑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정과 교회를 위해 애쓰는 우리에게도 주님의 돌봄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야만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지친 마음을 아시고 말씀 앞으로 우리를 불러 주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의지할 때, 우리는 자기 생각을 정직하게 말할 용기를 얻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다른 선택을 받아들일 여유도 얻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이 스캇 펙이 주장하는 사랑의 모험으로서 독립과 어떻게 연결됩니까? 예수님은 마리아가 주님의 말씀을 배우는 선택을 지켜 주셨습니다. 언니 마르다에게는 그 선택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동생이 내가 원하는 자리에 있지 않아도 그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기대와 다른 선택을 할 때는 그 사람이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자기 선택을 정직하게 설명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반대로 상대방이 나와 다른 선택을 할 때는 내가 서운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 서운함을 앞세워 상대방의 선택을 꺾는 이유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나의 기대와는 다른 상대방의 선택이 곧 나를 향한 거절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내 뜻에 맞추어 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동안 내가 쏟은 수고와 사랑이 부정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가 서운하다고 언제나 상대방이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실망했다고 언제나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물론 우리 모두 주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선택을 살펴야 합니다. 그 선택이 누구를 살리고 누구에게 짐을 지우는지도 함께 물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각 사람이 주님 앞에서 듣고 응답할 자리를 서로 지켜 주는 것입니다.
이민 가정에서 부모 세대가 감당한 희생은 참으로 큽니다. 서툰 영어로 일하며 자녀를 양육했습니다. 자신의 필요를 뒤로 미루고 자녀에게 더 나은 기회를 주려고 애썼습니다. 그 수고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에 자녀가 안정된 길을 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남다릅니다. 내가 겪었던 고생을 자녀는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자녀에게도 자기 삶을 분별하고 책임질 몫이 있습니다. 자녀를 위한 부모의 헌신과 희생은 분명 귀하지만, 그것이 자녀의 인생을 대신 결정하는 권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자녀가 주님 앞에서 자기 삶을 스스로 분별하고 선택할 자리를 빼앗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는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자녀에게 들려줄 수 있습니다. 염려되는 점도 정직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가 부모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녀가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자녀도 자기 생각을 정직하게 설명하고 선택의 책임을 감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묵묵히 헌신해 온 분들의 손길이 있습니다. 예배를 준비하고 식탁을 마련하며 교우들을 돌보아 온 분들입니다. 그 수고 덕분에 우리가 함께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공동체는 그분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지쳤다고 말하면 우리가 함께 그분들의 짐을 나누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지쳤다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맡았던 역할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어도, 믿음이 식었다는 오해를 받을까 두렵습니다. 그동안 받은 사랑까지 잃을 것 같아 계속 괜찮다고만 말합니다. 그럴 때 자기 형편을 정직하게 말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제는 이 일을 계속 감당하기 어려우니 다른 방식으로 함께할 길을 의논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해 온 방식만을 기준으로 삼는 태도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도 이렇게 섬겨 왔으니 다른 사람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면, 형편이 다른 교우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렵습니다. 섬기려는 마음은 같아도 시간과 여건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익숙한 방식 대신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거나 다른 의견을 말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다른 의견이 나왔다고 해서 평화가 깨진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들리지 않던 삶이 비로소 들리기 시작한 것일 수 있습니다. 저 같은 목회자부터 제 생각과 다른 목소리를 믿음이 부족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그동안 누구의 침묵 위에 지금 우리의 편안함이 세워져 있었는지도 함께 성찰해야 합니다. 다른 선택을 했다는 이유로 사랑받을 자리를 잃지 않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마리아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일을 계속 떠맡겨서도 안 됩니다. 늘 같은 사람이 교회 봉사를 도맡아 한다면 일이 너무 많지는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공동 식사를 조금 간소하게 준비할 수도 있습니다. 역할을 나누어 늘 일하던 분에게도 말씀과 교제에 머물 시간을 드릴 수 있습니다. 서로가 주님께 받을 수 있는 자리를 함께 지켜 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염려를 헤아려 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마르다의 요구에 따라 마리아를 일으켜 세우지는 않으셨습니다. 마리아가 주님 앞에서 선택한 그 자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선택을 할 때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존중합시다. 그래서 서로 다른 선택 앞에서도 사랑하는 관계를 끝까지 지켜 갑시다.
바라기는 우리 자유교회가 다르게 선택할 용기와 다른 선택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랑을 배워 가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의 삶을 세우며 함께 자라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를 주님의 말씀 앞으로 불러 주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분별할 지혜를 주옵소서. 주님의 사랑을 힘입어 나의 기대와 다른 선택을 하는 이들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시며 주님 앞에서 내 길을 정직하게 선택하는 용기를 주옵소서. 오랫동안 공동체를 위해 수고한 교우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그들의 지친 마음을 알아주고 실제로 짐을 나누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작은 목소리도 귀하게 듣고, 다른 의견 속에서도 함께 주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고된 일상 가운데 시간을 구별하여 예배의 자리로 나아온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이들에게 새로운 한 주를 살아갈 힘과 평안을 부어 주옵소서. 우리의 땀과 눈물이 담긴 삶의 열매를 예물로 구별하여 드립니다. 우리가 드린 예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고 이웃을 살리는 일에 귀하게 쓰이게 하옵소서. 삶의 무거운 짐과 육신의 연약함으로 함께하지 못한 교우들에게도 하늘의 위로와 치유가 임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