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금요일-은혜가 삶의 자리를 묻습니다
요한복음 4:16-17
요 4: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요 4: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 한 주간의 일상을 마무리하는 금요일입니다. 한 주간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도 말씀 묵상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하루 되기를 바랍니다.
2. 어제 묵상에서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수를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런 물을 내게 주십시오"라고 부탁하는 모습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3. 오늘 묵상하는 말씀에서 예수님은 그런 물을 달라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뜬금없어 보이는 말씀을 하십니다.
4. 요 4: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5.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가 갑자기 생수에서 남편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여인의 숨겨진 죄를 드러내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6.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께서 생수의 약속을 추상적인 종교 언어에만 머물지 않고, 여인이 실제로 살아온 관계의 현실로 가져오시기 위해 하신 말씀입니다.
7. 네 남편을 불러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미 여인의 삶을 알고 계심을 드러내고, 여인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아보게 하는 전환점이 됩니다.
8. 예수님은 여인의 삶을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여인이 자신의 현실을 스스로 말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님과 진실한 대화를 시작하도록 물으신 것입니다.
9. 따라서 예수님은 대화의 주제를 바꾸신 것이 아닙니다. 생수가 흘러가야 할 여인의 구체적인 삶의 자리로 대화를 이끄신 것입니다.
10. 네 남편을 불러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여인은 짧고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11. 요 4: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2. 여인이 왜 그렇게 짧게 대답했는지, 그 순간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는 오늘 묵상하는 본문이 말하지 않습니다.
13. 경계심이나 수치심, 회피 때문이었다고 함부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여인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입니다.
14. 이어지는 18절에서 예수님은 여인의 짧은 대답 뒤에 놓인 복잡한 관계의 역사도 이미 알고 계셨음을 드러내십니다.
15. 그러나 오늘 묵상하는 본문에서 예수님은 여인의 말이 옳다고 하십니다. 현재 남편이 없다는 여인의 대답은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16. 예수님은 여인의 말을 꼬투리 잡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남편이 없다는 여인의 짧은 대답 안에 담긴 진실을 그대로 인정하셨습니다.
17. 따라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여인을 망신 주기 위한 폭로가 아니라, 자신의 현실을 정직하게 바라보게 하시는 예수님의 초대였습니다.
18. 기독교 신앙의 은혜는 진실을 감추지 않지만, 진실을 이용해 사람을 정죄하거나 파괴하지도 않습니다.
19. 우리는 때때로 신앙을 현실에서 도망치는 도피처로 사용합니다. 예배에서는 은혜와 평안을 말하지만, 가정의 폭력과 중독, 우울과 관계의 단절에 대해서는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덮어 둡니다.
20. 특히 작은 이민교회에서는 서로 가까운 관계가 돌봄의 힘이 되기도 하지만, 좋은 교인과 좋은 가정으로 보여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자신의 문제와 상처를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21. 목회자의 가정, 직분자의 가정, 오래 믿은 사람의 삶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도움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 막상 도움을 구하지 못하고 오래 침묵합니다.
22. 그러나 복음은 남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잘 꾸며 놓은 거실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문을 닫아 둔 방과 대화가 끊어진 관계, 말 못 할 고민으로 밤마다 뒤척이는 자리까지 찾아옵니다.
23. 예수님께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신 것은 사마리아 여인을 망신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생수가 실제로 흘러야 할 상처와 갈증의 자리를 함께 마주하기 위해서입니다.
24. 예수님은 여인의 현실을 영적인 말로 얼버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여인의 삶을 한 가지 도덕적 판결로 축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25.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공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26. 상처의 이야기는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 자신의 속도와 선택에 따라 나누어야 합니다. 교회가 고백을 강요하거나 들은 이야기를 소문으로 퍼뜨린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27. 또한 교회 지도자는 상담이나 기도를 통해 알게 된 이야기를 사람을 지배하거나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영적 돌봄이 아니라 종교적 통제입니다.
28. 야고보서는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고 권합니다.
29.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책임 있게 고백하는 것과 피해자에게 상처를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30. 교회는 피해자에게 고백을 강요하지 말고 안전과 치유를 위한 신뢰의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31. 전문적인 치료나 법률적 보호가 필요한 때에는 목회적 선의만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적절한 기관과 전문가에게 연결해야 합니다.
32. 아픔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해결사가 되기보다 동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 그랬는지를 캐묻기보다 지금 안전과 회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먼저 물어보아야 합니다.
33. 예수님은 우리를 수치스럽게 하려고 찾아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생수를 흘려보내기 위해 우리가 실제로 울고 관계 맺는 삶의 구체적인 자리까지 찾아오십니다.
34. 생수를 흘려보내시는 주님께 우리의 솔직한 심정을 내려놓고,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우리의 삶을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신앙의 말 뒤에 상처와 두려움을 감추고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진실을 정죄의 무기로 사용하지 않게 하시며, 안전하게 말하고 책임 있게 듣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아픔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보호와 전문적인 도움의 길을 열어 주시고, 삶의 구체적인 자리마다 생수의 은혜를 흘려보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