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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 화요일-과거가 꼬리표가 되지 않게 하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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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 화요일-과거가 꼬리표가 되지 않게 하시는 주님

요한복음 4: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 오늘도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아시면서도 우리에게 새로운 은혜를 부어주시고, 과거에 갇히지 않은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복된 하루를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2. 지난 묵상에서 우리는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수와 무관한 요구가 아니라, 은혜가 여인의 실제 삶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한 것임을 살펴보았습니다.

3. 오늘 묵상하는 말씀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복잡한 관계의 역사를 이미 알고 계셨음을 드러내십니다.

4. 요 4: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5. 요한복음은 여인이 왜 다섯 번이나 결혼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의 남편들이 죽었는지, 그가 이혼당했는지, 어떤 강요와 경제적 사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6. 당시 가부장적 사회에서 많은 여성은 결혼과 이혼을 결정할 권한과 경제적 자원이 제한되어 있었으며, 사별이나 이혼은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 있었습니다.

7.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사마리아 여인의 과거를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우리에게 주지 않습니다.

8. 요한복음이 기록하지 않은 사연을 제멋대로 상상하여 여인을 함부로 정죄하는 것은, 성경이 전하려는 은혜의 메시지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일입니다.

9. 예수님은 여인의 삶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공개적인 망신거리로 만들거나, 여인의 과거를 이용해 그를 복종시키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10. 오히려 예수님은 남편이 없다는 여인의 고백에 "네 말이 참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짧은 고백에 담긴 진실을 인정하시고, 그 진실에 기초해서 여인과의 대화를 계속 이어 가셨습니다.

11. 여기에서 우리는 복음의 놀라운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지만, 아시는 것으로 우리를 위협하지 않으십니다.

12.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앎은 우리를 감시하는 카메라의 차가운 시선이 아닙니다.

13.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신앙 고백은, 그분이 우리의 상처와 아픔의 깊이까지 아시고 치유와 회복으로 이끄신다는 사랑의 고백입니다.

14.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과거를 모두 아셨지만, 여인의 과거로 여인을 규정하지 않으셨습니다.

15. 하지만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는 종종 사람을 한때의 실패나 가장 아팠던 사건으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이름 대신 '실패한 사람', '중독자', '전과자', '문제 있는 자녀의 부모'라는 꼬리표를 붙입니다.

16. 헨리 나우웬은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세상이 우리의 과거 실패를 가지고 치명적인 꼬리표를 붙이려 할 때 단호히 그것을 떼어 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17. 우리의 진짜 정체성은 세상이 부르는 과거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내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18. 교회 안에서도 한 번의 잘못이나 오래된 가정사가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해도 소문은 그보다 오래 남습니다.

19. 이민 공동체는 관계망이 좁고 서로의 삶이 가까이 보이기에 개인의 이야기가 빠르게 퍼집니다. 심지어 기도 제목으로 시작한 말이 평가와 호기심의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20. 이것은 단순한 말실수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안전을 빼앗고, 공동체 밖으로 숨어들게 만드는 영적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21. 교회는 모든 것을 알아내는 공동체가 아니라, 알게 된 것을 사랑으로 지키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22. 물론 비밀을 지킨다는 이유로 학대와 범죄를 숨겨서는 안 됩니다. 보호가 필요한 사람을 안전하게 하고 적절한 기관에 알리는 책임과 동시에 불필요한 소문을 막는 신중함을 함께 가져야 합니다.

23. 진실과 자비는 서로 반대가 아닙니다. 책임을 묻되 사람을 과거 하나로 환원하지 않고, 잘못을 바로잡되 회복의 가능성을 닫지 않는 것이 예수님의 길입니다.

24. 우리 자신도 과거의 이름에 갇힐 때가 있습니다. 실패한 사업, 깨어진 관계, 부모로서의 후회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판결이 됩니다.

25. 하지만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우물가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대화를 멈추지 않고 더 깊은 생명의 자리로 여인을 이끄신 것처럼 우리도 인도하십니다.

26.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죄와 고통의 진실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면서도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신 표지입니다. 부활은 과거의 판결보다 하나님의 새 창조가 더 크다는 선언입니다.

27. 혹시 내가 누군가의 과거를 그 사람의 이름처럼 부르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시고 상대방에 대한 성급한 판단을 멈추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8. 호기심으로 사마리아 여인의 과거를 함부로 재구성하기보다는, 예수님께서 여인의 과거를 아신 일이 어떤 열매로 이어졌는지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29. 이어지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예수님의 앎은 정죄나 판단이 아니라 진실한 만남과 한 마을을 향한 새로운 증언으로 이어졌습니다.

30.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기독교 신앙의 교리는 감시와 정죄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지하심은 우리의 숨은 눈물과 억울함까지 놓치지 않는 사랑의 약속입니다.

31. 은혜는 책임을 없애지 않습니다. 따라서 피해자의 안전과 정의를 먼저 지키면서, 잘못한 사람은 진실을 인정하고 오랜 시간 실제적인 변화의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32. 용서는 잘못이나 죄의 결과를 지우는 면허가 아니며, 한 번 깨진 신뢰는 반드시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도 아닙니다.

33. 누군가의 과거를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이 허락하지 않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마십시오. 대신 그의 현재와 가능성을 말해 주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새 이름을 함께 기다리십시오.

34. 은혜는 과거를 지우개로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가 우리의 전부가 되지 못하게 하고, 진실 위에 새로운 관계와 미래를 세우는 것입니다.

35.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따라, 우리 교회가 과거와 상처를 안전하게 말해도 버림받거나 비난받지 않는 예수님이 계신 우물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우리를 온전히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다른 사람의 과거를 낙인으로 만들고, 듣거나 알게 된 이야기를 함부로 떠들었던 우리의 실수와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진실과 책임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한순간의 실패로 규정하지 않게 하시고, 상처 입은 이가 안전하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다 아시고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 안에서 새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