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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 수요일-오래된 상처가 묻는 예배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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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 수요일-오래된 상처가 묻는 예배의 자리

요한복음 4:19-20
요 4: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요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1. 요한복음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묵상의 자리로 나아오신 모든 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도 말씀 묵상을 통해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어제 묵상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여인의 복잡한 과거를 아시면서도 그 과거를 정죄하거나 낙인으로 사용하지 않고 여인과 대화를 계속하신 사건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3. 여인은 자신이 말하지 않은 과거에 대해 정확히 아는 예수님을 향해 말합니다.

4. 요 4:19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5. 처음에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지나가는 낯선 유대인으로만 보았습니다. 이어서 정중하게 '주여'라고 불렀고, 이제는 선지자로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6. 믿음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깨닫는 일이 아니라, 진지한 만남과 대화를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조금씩 새롭게 알아 가는 여정입니다.

7. 선지자를 만났다고 생각한 여인은 사마리아 공동체가 오랫동안 논쟁해 온 신앙의 질문을 꺼냅니다.

8. 요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9. 여기서 여인이 말한 "이 산"은 그들이 대화를 나누던 야곱의 우물가 가까이에 솟아 있는 그리심산을 가리킵니다.

10. 사마리아인들에게 그리심산은 단순히 고향에 위치한 산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11. 사마리아인들이 경전으로 받아들인 사마리아 오경은 신명기 27장 4절에서 제단을 쌓을 장소를 에발산이 아니라 그리심산으로 기록합니다.

12. 반면 유대인은 다윗과 솔로몬의 역사와 성전 전통을 따라 예루살렘만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예배의 중심이라고 믿었습니다.

13. 사마리아인과 유대인 공동체는 같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어느 장소를 선택하셨는지를 서로 다르게 이해했습니다.

14. 그리심산에는 사마리아 성전이 세워졌지만, 기원전 2세기 말 유대인 통치자였던 요한 히르카누스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15. 하지만 사마리아인은 자신들의 성전이 사라진 뒤에도 그리심산을 거룩한 산으로 여기며 그곳에서 예배의 전통을 지켰습니다.

16. 따라서 여인의 질문은 단순한 장소에 관한 호기심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공동체가 참된 이스라엘인지, 누구의 예배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지를 둘러싼 오랜 논쟁이 담긴 질문이었습니다.

17. 여인이 "우리 조상들"과 "당신들의 말"을 구분한 표현에서도 여러 세대 동안 굳어진 '우리'와 '당신들'의 경계가 드러납니다.

18. 오늘의 언어로 바꾸면 여인의 질문에는 "하나님은 어느 편에 계십니까?", "우리의 예배도 받아 주십니까?"라는 물음까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 이처럼 사마리아 여인은 여러 결혼 관계를 거쳐 온 개인의 역사뿐 아니라, 사마리아 공동체가 물려준 역사도 품고 있었습니다.

20. 따라서 한 사람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입 밖으로 나온 문장뿐 아니라, 그 질문을 낳은 삶과 공동체의 역사까지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21. 한인 이민교회에서도 예배를 둘러싼 갈등이 있습니다. 한국어 예배와 영어 예배, 전통 찬송과 현대 찬양, 한국 교회 방식과 미국 교회 방식이 부딪힙니다.

22. 겉으로는 음악과 언어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상실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옳은지를 섣불리 결정하면 그 말 아래 놓인 상실과 두려움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23. 정치와 사회 문제를 둘러싼 교회의 갈등도 비슷합니다. 한쪽의 주장을 반박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떤 경험과 상처, 어떤 두려움을 통해 그 자리에 섰는지 물어야 합니다.

24. 경청은 모든 의견이 똑같이 옳다고 말하는 상대주의가 아닙니다. 차별과 거짓, 혐오와 폭력은 분명히 비판해야 합니다.

25. 하지만 한 사람을 설득하기 전에 그의 인간됨을 존중하고, 질문의 뿌리를 들으려는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진리가 사랑 없이 무기로 사용되면 사람을 생명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26. 예수님은 여인의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시고, 예배에 관한 요한복음의 가장 깊은 가르침으로 이끄셨습니다.

27.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자신의 책 『신도의 공동생활』에서,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을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봉사는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8. 쉽게 꺼내기 어려운 질문을 존중하고 진지하게 들어 줄 때, 우리는 그 사람과 함께 더 깊은 진리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29. 이처럼 교회는 질문이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상처와 의심을 가지고도 하나님께 말할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30. 많은 신앙적 질문에는 개인의 삶의 경험과 공동체가 물려준 기억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누가 거룩한 장소를 결정하는지, 누구의 예배가 정통으로 인정되는지는 권력과 소속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31. 따라서 이러한 신앙적 질문을 단순한 불신앙으로 취급하며 무조건 믿고 순종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32. 교리가 기득권을 지키는 방식으로 잘못 해석되고 적용되어 차별과 침묵을 만들었다면, 성경과 전통을 진지하게 다시 살펴 공동체가 남긴 상처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33. 또한 교회 지도자는 어려운 질문을 자신의 권위에 대한 공격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 질문이 하나님께서 공동체를 더 진실한 예배로 부르시는 예언자적 목소리일 수 있습니다.

34. 예수님은 여인의 질문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질문을 아버지께 나아가는 더 깊은 예배의 문으로 바꾸십니다.

35. 우리의 질문보다 먼저 우물가에 찾아오신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질문을 숨기지 않고 진실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36. 정답을 말하기 전에 먼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래된 상처가 던진 질문이 우리를 갈라놓는 돌이 아니라 더 깊은 예배로 건너가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우리의 질문을 들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정답을 안다는 교만으로 다른 사람의 상처와 역사를 듣지 않았던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대와 언어, 전통과 문화가 다른 이들의 두려움을 존중하게 하시며, 차별과 거짓에는 담대하되 사람에게는 온유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질문을 감추지 않고 함께 더 깊은 진리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