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 금요일-구원은 뿌리 없이 오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4:22
요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1. 한 주간의 일상을 살아 내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오랜 구원의 역사 안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2. 어제 묵상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리심산과 예루살렘의 경쟁을 넘어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온다고 말씀하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3. 예수님은 장소의 경계를 넘어서는 말씀을 하신 다음에 오늘 묵상하는 말씀에서는 다소 불편하게 들릴 수 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4. 요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5. 예수님은 모든 차이를 없었던 일처럼 만들지 않으십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예배가 역사적으로 똑같다고 말씀하지도 않으십니다.
6. 사마리아 공동체는 모세오경을 유일한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심산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예배의 중심으로 여겼습니다.
7. 반면 유대 공동체는 모세오경뿐 아니라 예언서와 성문서도 정경으로 받아들였고, 그 전통 안에 예루살렘 성전과 메시아의 소망이 폭넓게 전승되었습니다.
8. 그렇다고 사마리아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 역시 모세오경을 따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서 보내실 모세와 같은 예언자이자 회복자를 기다렸습니다.
9.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의 신앙 전체를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과 유대 민족의 역사 속에서 이어진 메시아의 약속을 통해 구원이 왔음을 밝히는 말씀입니다.
10. 물론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인이 다른 민족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11.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아브라함과 사라의 부르심, 이스라엘의 역사, 예언자들의 증언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어졌고 예수님도 유대인의 몸과 문화 속에서 오셨다는 뜻입니다.
12. 예수님은 자신의 유대적 정체성을 감추지 않으시고, 사마리아 여인의 정체성도 지워 버리지 않으십니다. 다만 두 전통의 차이를 진실하게 말씀하신 뒤 더 깊은 예배로 초대하십니다.
13. 차이를 지우는 것이 경계를 뛰어넘는 화해는 아닙니다. 서로의 역사와 정체성을 존중하면서도 차이가 차별과 적대의 근거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것, 이것이 복음이 보여 주는 경계를 넘어서는 사랑입니다.
14. 따라서 이 말씀을 “그리스도교가 유대교를 대체했으므로 이제 유대인은 필요 없다”라는 주장의 근거로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15. 교회는 유대인의 성경과 기도, 메시아의 소망을 통해 복음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뿌리를 멸시하면서 그 열매만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16. 인류 역사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을 배척하고 박해한 죄를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반유대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은 유대인으로 오신 예수님을 부정하는 일입니다.
17. 바울은 이방인 신자들에게 이스라엘의 뿌리를 향해 자랑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가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가지를 지탱하기 때문입니다(롬 11:18).
18. 우리는 유대교를 지워 버리고 그 자리를 차지한 승자가 아니라, 먼저 주어진 언약의 은혜에 접붙여진 사람입니다.
19. 그러나 유대의 뿌리를 존중한다는 것이 오늘날 특정 국가나 종교 권력의 모든 행동을 무비판적으로 승인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20. 어떤 종교적 뿌리나 민족적 배경도 불의와 차별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예언자들이 자기 민족의 불의를 꾸짖었듯이,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정치와 종교 권력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21. 물론 구원의 근원으로서 유대의 뿌리와 우리가 물려받은 한국 교회의 전통은 같은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22. 다만 이 말씀에 비추어 우리는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을 어떻게 기억하고 오늘의 삶으로 이어 갈 것인지를 물을 수 있습니다.
23. 한인 이민교회도 뿌리와 가지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한국어 찬송과 새벽기도, 부모 세대의 눈물과 헌신은 귀한 신앙의 뿌리입니다.
24. 그러나 그 뿌리를 유일한 정답으로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강요한다면 대화가 막히고, 귀한 신앙 유산도 생명보다 부담으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25. 반대로 미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한국적 유산을 낡고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 버리면 뿌리 없는 가지가 됩니다.
26. 교회사학자 야로슬라프 펠리칸은 “전통의 옹호”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전통은 죽은 자들의 살아있는 신앙이고, 전통주의는 산 자들의 죽은 신앙이라고 말했습니다.
27. 건강한 나무는 죽은 전통주의에 갇혀 뿌리의 모양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습니다. 뿌리에서 받은 생명의 기운을 통해 새로운 잎을 내고 열매를 맺습니다.
28. 이민 1세대는 한국에서 받은 신앙 유산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만 머물지 않고, 인종차별과 이민자의 불안, 미국 사회의 상처에 응답하도록 그 유산을 확장해야 합니다.
29. 우리가 물려받은 감리교 신앙 전통 역시 완성된 박물관의 전시물이 아닙니다. 웨슬리 시대의 말씀과 성찬, 자비와 정의의 실천이 오늘의 가난과 차별, 외로움 속에서 새롭게 살아나야 합니다.
30. 오늘 우리 신앙의 뿌리 가운데 감사할 것 한 가지 떠올려 보십시오. 그것은 우리를 위해 기도한 사람, 익숙한 찬송, 어려울 때 붙든 말씀일 수 있습니다.
31. 동시에 새롭게 해야 할 것도 한 가지 살펴보십시오. 권위주의와 성차별, 성공주의와 배타성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지키고 있지는 않은지 물어보십시오.
32. 뿌리를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의 모든 모습을 이상화하는 일이 아닙니다. 성경이 이스라엘과 교회의 실패를 감추지 않듯, 우리 전통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고백해야 합니다.
33. 구원은 유대의 뿌리에서 왔지만, 그 열매는 어느 한 민족에게만 갇히지 않습니다. 유대인으로 오신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지나 마침내 많은 사람에게 세상의 구주로 고백되어 집니다.
34. 오늘 우리도 뿌리를 감사히 품고 가지를 넓게 펴기를 바랍니다. 받은 은혜가 우월감의 담장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그늘과 열매를 나누는 나무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역사 속에서 구원을 이루어 오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유대의 뿌리와 앞선 세대의 신앙을 전해 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소중한 전통을 우월감과 배제의 도구로 사용했던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 안의 생명이 오늘의 언어와 정의로운 실천으로 열매 맺게 하옵소서. 다음 세대가 자기 목소리로 주님을 사랑하도록 기쁨으로 그들의 길을 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